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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닐 Jun 11. 2024

홍콩의 마지막 밤, 루프탑과 친구들

드디어 진짜 끝 ! 홍콩 여행기 마지막 !

https://youtu.be/JEsWJJbO7-0?si=3RIs0rsywUXzOsQp 
유튜브에 업로드한 홍콩여행 기록영상.. 


1. 앤지의 쪽지 2. 역사 박물관으로 가던길. 홍콩 시내엔 꼬불꼬불한 육교가 많다.

- 아침 눈떠보니 내 침대에 이런 사소한 쪽지를 남기고간 앤지. 너무 귀여운 기분이 들었다. 


- 이 날은 줄서서 사야하는 제니 쿠키와 홍콩섬에 있는 토마토 라면으로 유명한 싱흥유엔을 포기함으로 인해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홍콩 역사박물관에 갔다. (노상에서 토마토 라면 먹어보고 싶긴 했는데 더위에 지칠게 뻔했고 루트상 멀었다..)


- 가는 길에 배고파서 손님이 꽤 많은 큰 식당에 들어가서 매운 소고기 쌀국수 같은걸 먹었다. (홍콩에는 유명한 식당도 크기가 작은데 어쩌다 가끔씩 한국식당처럼 큰 식당이 있었다) 맛집을 찾아가는 것에 지쳐서 아무렇게나 간 건데 여기서 먹은 음식이 제일 내 입맛에 맞았던것 같다.. 역시 한국인은 얼큰한게 필요한것인가.. 메인+토스트+음료 세트로 시켰는데도 만원이 안넘었고 배부르게 잘 먹었다. 

그런데 식당 이름은 전혀 모르겠다. 한자로만 되어있었던 기억..


- 홍콩 역사 박물관은한 전시관안에 시대별로 장르별로 다 연결되어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어둠의 시간'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일제강점기도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전시관의 끝즘에 다다르면 중국으로 반화되는 시점까지.. (전시는 '중국으로의 반환이 이상적으로 처리되었으며 이는 아름다운 결말이다'라는 식의 늬앙스를 열심히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결말과 함께 전체 전시 루트가 끝나는데 참 기분이.. 묘했다.) 


- 강대국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아픈 역사를 많이 가진 곳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이 동한다. 한국인이어서 그럴지도, 같은 아시아권이라서 더 그럴지도. (개인적으로 세계사에 무지한탓에 홍콩도 일제강점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이 박물관에서 처음 알게되었다) 

- 홍콩의 역사는 특색있다. 중국 광둥지방에서 떨어져나와 영국의 지배를 오래 받으면서 중국 본토와는 또 다른 사회와 문화를 가졌고, 전쟁과 수탈로 고통받기도 했지만 80년대를 지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다 90년대에는 동아시아에서 제일 잘나가는 나라가 된.. (전범국은 제외함) 그리고 97년 반환을 전후로 홍콩사람들이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과 방황하는 시대분위기가.. 정말이지 그것이 얼마나 지대했던지 그 즈음의 모든 홍콩의 문화 컨텐츠에도 그 불안과 격동의 감정선이 요동친다. 홍콩이 거쳐온 이야기를 듣다보면 왜인지 모르게 내가 그 속에 섞여있는 것 같고, 그와 동시에 그다지도 찬란하게 꽃피던 홍콩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더 안타깝고 먹먹해진다. 솔직히 그 시절 홍콩 영화와 음악, 배우들이 숨쉬던 홍콩을 안 사랑할 수 있었나요.. 모두가 사랑했잖아요 ㅠㅠ 

- 외쳐 프리홍..ㅋ.. (아 이런말 하지마까) 

 지나다니다 자주 본 건물인데 길치라서 이게 어디쯤인지, 무슨 건물인지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 그냥 예뻐서 찍은게 답니다


- 홍콩의 저녁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저녁에 딩딩카를 마음껏 타면서 캠코더에 담아야겠다고 전날 생각했었다. 그럴려면 홍콩섬에 다시 갈 명분이 필요해서 내가 주로 갔던 곳들보다 좀 더 동쪽에 있는 빈티지 샵으로 갔다. 그러고보니 다른 나라에 가면 빈티지 샵을 가던게 예전 내가 즐겨했던 건데, 최근들어 해외를 잘 안갔다보니 잊고있었다. 

- 딩딩카를 타고 왓슨 로드에 내려서 조금 걸으면 있었는데, 찾아가는 거리가 이게 맞나 싶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고, 상권이 활발해 보이지 않아서 여기에 그런 힙한 빈티지샵이 있다고? 싶었지만 곧 내앞에 구글로 봤던 그 간판이 나타났다. 이름은 America Vintage Shop, 틴하우샵이라고도 불리는것 같았다. 외관부터 실내까지 온화한 우드로 둘러쌓여 생각보다 넓고 (2층까지 있었음) 잘 갖추어져있었다. 역시 뭔가 느낌이 좀 달라보이는 사장님 두분도 친절했다! (중요) 

그 대학교와 너무 비슷한 색과 로고!

- 기념으로라도 하나는 사와야지 했는데 기대보다 질 좋고 귀여운게 많아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 (가격도 비슷한 수준의 서울 빈티지 샵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다.) 

고심끝에 옥스퍼드st 흰셔츠 하나, 교환학생으로 갔던 미국 대학이 생각나는 회색 티셔츠를 구매했다. 내가 부유하고 캐리어도 더 컸으면 많이 샀을텐데,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매장을 나왔다 ㅠ 



- 홍콩에서는 꼭 이런 도로의 모습을 많이 담고 싶었다. 습하고 분주하고 왠지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서 좋다. 촬영한 영상들이 생각보다도 많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자동차들의 불빛과 어둑어둑한 가로등 색들이 그대로 담겨 다행이었다. 


- 그리고 이후에는 그렇게 가고싶었던 Mido cafe 를 가서 늦은 저녁도 먹고 커피도 좀 먹으려 했는데... 게스트 하우스 걸프렌드들이 (ㅋㅋ) 오늘 마지막 모임겸 데니스의 하루 늦은 생일파티를 한다고 언제 오냐는 문자를 받아서.. 미도카페는 다음 여행에 오기로 하고 ㅠㅠ 서둘러 게하로 돌아갔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는 후문.. 또 한국인만 급했지 또.) 



- 이 생일파티의 발단은 피크트램이 있는 곳으로 등산을 하고온 앤지가 덴을 위해 아주 작고 귀여운 생일케이크를 사온 것이다.. (그리고 둘은 등산때문에 너무 지쳐서 내가 있는 박물관으로 오겠다던 오후 계획을 포기하고 게하로 돌아가서 쉬고있었음 ㅋㅋㅋ) 우리는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분위기였던 중앙 테라스에 모여 앉았다. 마트에서 사온 맥주캔들을 하나씩 들었고 이다지도 작고 귀여운 생일케이크를 개봉했다. 완벽한 컵라면의 모양을 하고있는 신묘한 컵케이크였는데, 이때 게하 주인장인 파트리샤가 기다려보라며 진짜 컵라면을 들고와서 둘을 나란히 놓고 인증샷을 남겼다. 홍콩 주인장, 독일 제니, 싱가폴 데니스, 캘리포니아걸 엔지, 한국의 나. 그리고 지나가다 붙잡혀 한입 먹은 일본 친구 (이름을 잘 못들음..) 주먹만한 컵케이크 하나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둘러싼채로 오래고 떠들썩했다.. 


- 우리는 이 날 밤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장만옥의 세월이 깃든 사진을 보고 늙기 싫다고 하던 주인장, 장만옥의 홍콩식 이름을 못알아듣다가 사진을 보고서야 내가 "아~ 장만옥~!" 하자 모두가 따라말하며 웃었고, 내가 뉴진스 뮤비에 나온 모델이랑 닮았다는 이야기(?), 홍콩이 서울보다 창의적인 도시같냐는 질문 (그렇다고 하자 엔지를 제외한 모두가 의아해했음), 내가 부산이 고향이라고하니 갑자기 두팔을 번쩍들며 부산행을 열번도 넘게봤다는 좀비물 애호가의 발언,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묻던 엔지 (이때는 에에올이었다), 결혼을 꼭 하고싶지는 않다는 이야기, ADHD를 가진 아이와 같이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 홍콩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이야기.. 그 중 본인의 아이가 최근에는 초등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hongkong, the part of China, 를 꼭 하나의 단어처럼 붙여말하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다는 주인장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 그렇게 수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도 방에 들어가기가 아쉬워, 주인장은 자기들의 루프탑이 아주 멋지다며 올라가자고했다. (루프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제야 이 건물이 주인장 할아버지가 생전 지었던 건물이고 지금은 본인소유라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나 좋을까.. 홍콩의 건물주라서 평생 예술을 하며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맞이하는 일... 햐..) 루프탑은 하얀 소파들과 테이블, 식물들이 있고, 알전구들이 줄에 달려 반짝였다. 여기서 아슬아슬한 나무 사다리를 한번 더 올라 루프탑의 꼭대기에 가서 해먹에 앉을 수 있었다. 구석에 있는 정체모를 커다란 달모양 조형물을 우리가 궁금해하자 주인장은 자기 남편이 어느날 이베이에서 저런걸 구매했다고 아주 얼척 없어하는 목소리로 말해줬다. ㅋㅋ. 밤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홍콩의 동네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좀 더 홍콩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되었다. 


- 어딜가도 행사에 중국 국기가 대문짝만하게 그리고 홍콩 플래그는 손바닥만하게 반복 배치되어 있음을 발견한 데니스와 나의 이야기. 그 광경에서 보이는 중국의 의도가 너무나 적나라하다고 느껴졌다. 주인장은 평생을 홍콩을 사랑해온 홍콩사람인데, 더 이상 이 곳이 예전의 홍콩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당연한 변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먹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큰 시위가 자주 있었고 특히 2019년의 그 시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며, 주변의 친구들이 그 이후로 홍콩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는 말을 들으며 그녀가 느낄 무력감과 쓸쓸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밖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묻자, 절대, 할수없다고 되돌아온 대답이 마찬가지로 쓸쓸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며 우리는 마지막 홍콩의 밤을 바라다보았다. 지금 보이는 이 풍경이 홍콩의 끄트머리 흔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하루하루 더 희미해지겠지.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니 이 조용한 동네의 야경이 이미 그리워져있었다.


- 홍콩은 사라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것이 변했고 지금 이순간에도 사라지고 있다. 나는 음악이든 영화든 지나간 것을 사랑하게 되는데, 홍콩 역시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이라 그런걸까. 나는 어쩌면 관념적 홍콩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실제 홍콩 여행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홍콩은 그 자체로 그립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껴진다. 


- 그 다음날 나는 공항버스가 계속 안와서 하마터면 출국을 못할뻔했고 (하필 이 항공편은 얼리체크인이 안되는 편이었음) 다행히 체크인 마감시간 5분을 남기고 성공했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며 나와 같이 발을 동동 굴러준 대만 아저씨와 왜인지 엄청 웃으며 (내 상황을 파악한듯..) 친절하고도 스피디하게 체크인을 해준 직원 아저씨가 기억에 남는다. 


떠나기 싫었던 정든 게스트하우스 ㅠㅠ

- 이번 여행 중 가장 소중한건 완탄면 게스트하우스의 일들이다. 나는 이 기억으로 몇년은 먹고 살 것이다. 

- 아 홍콩 여행은 6일 남짓 이었는데 홍콩 여행기는 6년이 걸릴 뻔 했네..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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