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 아빠가 딸을 보러 온다
어린 딸에게 하염없이 목말을 태워주던 사내는 등도 어깨도 작아졌다
젊은 아빠의 꺼슬한 턱수염에 놀라던 소녀는 손등도 얼굴도 거칠어졌다
사내가 소녀 앞에서 가방을 연다
남몰래 돈뭉치를 꺼내며, 남편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너만 쓰라고, 오직 너만 생각하라고
그 말을 여러 차례 남기고, 이국땅에 소녀를 남기고, 돌아선다
‘따가워’ 소녀의 투덜거림이 바다 바닥으로 가라앉고
‘이제 좀 내려가라’ 사내의 핀잔이 파도 위로 떠오르고
푸른 물결에 얼굴이 젖어서 돌아간다
소녀가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딸이 잘살고 있다고 했으니까
토요일마다 아내의 방에 디저트를 넣어주고, 아들과 나누는 대화를 몇 번 엿들으면서 나는 아내의 변화를 느꼈다. 맑아진 목소리와 높이 울리는 웃음소리는 우울함에 잠식되었던 예전과는 달랐다. 지난밤 살며시 들른 아내의 방에서도 불쾌한 냄새는 사라지고 은은한 향기만이 감돌았다.
일 년 전만 해도 나는 그녀의 방문 앞에서 숨을 죽여야 했다. 장지문 틈새로 스며 나오는 젖은 이불 냄새, 묵은 땀이 밴 옷가지의 쩌든 내음, 씻지 않은 살갗의 불쾌한 체취. 한 영혼이 서서히 부패해가는 절망의 악취였다. 그 냄새가 나마저 어둠 속으로 끌어당길 것만 같아, 전염병 환자를 피하듯 나는 그녀의 방을 서둘러 지나갔다.
나는 아내의 우울증이 한결 나아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지난번 의외로 나와의 점심 약속을 승낙했던 것도, 나를 희망 고문하려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 함께 점심을 하려다가 막상 닥치니 부담스러웠던 걸지도. 나는 당시 무척 좌절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녀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는 새로운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아들에게 문을 여는 그 시간, 내가 대신 나타난다면 어떨까.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간식 시간이라는 조건 자극이 문을 여는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토요일 느지막한 오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서재를 초조하게 서성이다 마침내 용기를 냈다. 서랍 깊숙이 묵혀두었던 낡은 서류봉투를 꺼내 아무 도면이나 넣고, 마치 중요한 문서라도 되는 양 정성스레 테이프로 봉했다. 아들의 방문을 두드리고, 자연스럽게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사무소에 좀 갖다줄래?”
“지금요?”
아들은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급한 일이야.”
내가 재촉하자 녀석이 마지못해 봉투를 받아 들었다. 사무소 직원에게는 이미 전화를 해두었다. 아들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봉투를 받으라고. 아들이 낡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나는 아내의 방 앞에 섰다. 손에는 그녀가 좋아하던 꿀 카스텔라와 레몬 마들렌을 들고서. 종이봉투 안에서 달콤한 향이 새어 나왔다.
"빵을 좀 사왔어... 같이 먹을래?"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내 발은 마치 시멘트에 박힌 듯 무거웠다. 심장은 귓가에서 쿵쾅거렸다. 대답이 돌아올까, 또 무시당할까. 나도 모르게 발끝만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침묵이 길어져서 아내가 못 들었나, 아니면 자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좋아."
놀랍게도 대답이 돌아왔다. 작지만, 분명 좋다고 했다. 이렇게 쉽게 성공할 줄이야. 나조차도 예상 못 했다. 목구멍이 바짝 마른 채로,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아내의 방에 허락받고 들어온 건 삼 년 만이었다.
나는 낮은 일본식 차상(座卓)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창가 쪽에서, 얇은 면 담요를 무릎에 두른 채 앉아 있었다. 옆으로는 접힌 잠옷과 몇 권의 일본 소설책이 놓여있었다. 나는 어쩐지 아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종이봉투에서 빵부터 꺼내 건네주었다. 비닐 껍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마들렌을 하나 입에 넣고 조용히 우물거리는 아내를 그제야 살펴보았다. 지난날보다 한결 나아 보였다. 이른 가을의 오후 햇살이 그녀의 윤기 있는 검은 머리칼을 비추고, 그 아래 흰 피부는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동그란 눈매와 앳된 얼굴은 서른아홉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했다. 표정도 부드러워졌고, 시계추처럼 흔들리던 어깨도 이제는 편안히 내려 앉아 있었다.
왠지 감격한 마음으로 그녀를 찬찬히 뜯어보는데, 얇은 면 파자마 너머로 그녀의 젖꼭지가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자꾸만 그곳으로 눈이 향했다. 그동안 각방 생활을 하면서 아내가 브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걸 이제야 알았다. 생각해 보면 방 안에서만 지내니 당연한 일상이었을 텐데.
고작 새끼손톱만 한 작은 돌기가 왜 이토록 강렬한 존재감을 가질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아들도 이런 모습을 봤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가슴 한켠이 불편하게 조여왔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아내가 달라졌다. 초등학생 때까진 마냥 어린애 대하듯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던 스킨십도 줄였고, 집에서도 늘 브라를 챙겨 입었다. 방을 같이 쓸 때도 잘 때만 브라를 벗었던 아내였는데.
이제는 각방을 쓰니 편하게 지내고 싶었겠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엄마를 돌본다며 매일같이 아내 방을 들락거리는 아들… 좀 더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좀 더 두꺼운 옷을 입을래?' 아니면 '머리카락으로 가리는 건...' 입 밖으로 낼 말을 고르는데, 문득 그녀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쇄골 아래까지 찰랑거리던 검은 생머리가 한 뼘은 짧아져 있었다.
"머리 잘랐네... 언제?"
"기억이 안 나."
순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기억이 안 난다니. 분명 얼마 전의 일일 텐데. 아내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손등으로 슬며시 닦아냈다. 그제야 내가 뚫어져라 쳐다본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어색한 정적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아내는 손 안의 빵 끄트머리를 조금씩 뜯어내 뭉치더니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듯 무심결에 반복되는 동작. 유아 퇴행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뇌리를 파고들었다. 가슴 한켠이 무거워졌다.
나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저 내가 일본에 남아주기만 했어도, 이 여자는 결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만간 우리 둘이 일본 여행 갈까?"
나는 목이 메어 작게 물었다. 빵은 한 입도 먹지 않은 채였다.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친구도 엄마도 그립다고 했잖아. 보고 싶지 않아?"
"친구도 엄마도 해줘서 괜찮아."
"누가? 아들이?"
내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응."
아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순간 차가운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래, 천천히 생각해 보자."
입술이 떨리지 않도록 힘주어 천천히 말했다. 최대한 침착한 척하며 방을 나섰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내의 대답이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되새기자, 현기증이 밀려왔다.
출장이 끝났다. 갓난 아들과 아내가 단둘이 보낸 일주일. 문고리를 잡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목덜미를 기어올랐다.
부패와 젖내가 뒤섞인, 달콤하면서도 역한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미동도 없이 누운 말라붙은 몸. 아무것도 없는 눈동자. 마치 오래전에 죽은 사람처럼. 죽은 나무가 늪이 된 것처럼.
샘물이 솟구치는 두 개의 작은 무덤, 그 위에서 아들이 자라고 있었다. 늑골을 기어오르는 손덩굴. 뿌리처럼 빨아들이는 작은 입.
인간의 형상으로 자라나는 식물이었다. 식물의 형상으로 뻗어가는 인간이었다.
탯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젖 빠는 소리와 숨가쁜 탄식은 둘이 아닌 하나의 숨결. 나는 뛰쳐나갔다. 씨앗처럼 땅에 흩뿌려졌다.
도쿄대 후배 정군과 곱창, 막창에 소주를 거하게 마시고 노래방으로 2차를 갔다. 평소 그는 짙은 네이비 수트에 흰 셔츠, 가는 줄무늬 넥타이 차림이었다. 깔끔한 뿔테 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반들반들한 구두까지. 말투마저 격식 있었다. "선배님, 이 부분은 이렇게 검토해보면 어떨까요?" 하며 늘 한 템포 늦게, 신중하게 말을 고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평소의 엘리트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흰 셔츠 깃은 헤졌고, 넥타이는 언제 풀었는지 한쪽으로 늘어져 있었다. 수트 재킷은 이미 의자 한켠에 구겨진 채 놓여있었다.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혀까지 꼬부라져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꼴이었다.
"나는 선배에게 이 곡을 바쳐! 사랑을 바쳐!"
테이블엔 거품 빠진 맥주와 담배꽁초들. 초라한 마른안주가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땅콩을 씹으며 미지근한 맥주를 삼켰다. 대체 무슨 노래를 부르려고.
정군이 고른 곡은 하필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행여 오늘 밤 다시 만날까, 김해원 오지 않고 나를 울리네—"
내 이름으로 개사한 가사를 눈을 질끈 감고 내지르는데,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정군은 내가 좋아서 웃는 줄 알았는지 더욱 신나서 목청을 높였다.
1차에서도 김해원 라인을 만들자며 취기에 젖은 헛소리를 늘어놓더니, 아까는 노래방 아가씨들을 부르자고 하지를 않나. "얌전히 노래나 처불러"라고 했더니 이제는 내 이름을 가사에 넣어 부르길 반복했다.
“아아 그날 밤 만났던 해원—”
이 추태는 분명 내게 어떻게든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까, 이제 막 차린 사무소에 돈 되는 프로젝트라도 하나 따내 볼까, 정부 사업이라도 수주해 볼까 하는 계산된 아부였다. 제발 자기 좀 도와달라는 애원이었다. 나였다면 저런 짓거리를 하느니 차라리 접싯물에 코를 박고 명예롭게 자결했으리라.
탬버린을 찰랑이며 추임새를 넣던 녀석의 시선이 슬쩍 시계를 향했다. 깜빡이는 파란 조명이 취기 오른 정군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췄다. 나도 유부남이어서 안다. 저건 집사람이 문득 생각난 거다. 그러고 보니 제수씨가 둘째 낳은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던가.
"선배! 형! 한 곡만 더! 딱 한 곡만요!"
"집에 가서 애나 봐, 새끼야."
이렇게 또 어물쩍거리다간 서비스로 시간 더 주겠다. 나는 가방을 챙기며 정군을 일으켰다. 몸에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3차 가요, 3차!”
택시를 잡아 문을 열고 녀석의 어깨를 잡아 밀어 넣었다. 이 자식, 아부를 부리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왜 이런 건 저항하는가.
정군을 강제로 태워 보내고 나도 택시를 잡아탔다. 집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옛날 생각이 스쳤다.
아들이 태어나고 첫 두 해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야근에 지친 눈으로 도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마다 날카롭게 울리던 전화벨. 수화기 너머로 어김없이 들려오던 아내의 흐느낌. 젖을 물고 잠든 아들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더는 못 버티겠다고 했다. 나는 그저 침묵 속에 잠겼다. 당시 나는 건축 사무소를 시작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는 생계를 벌어야 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날들이 쌓여갔고, 어느 순간부터 새벽의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정군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시간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막 차린 사무소를 이끌며, 하루하루 벼랑 끝을 걷듯 살아가고 있겠지. 다만, 내가 정군처럼 추태를 부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세계적인 건축가인 장인의 인맥 덕분이었다.
기분이 가라앉았다. 나는 정군에게 소개해줄 만한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시청과 도청의 지인들, 서울에서 사무소를 운영하거나 교수직에 있는 선배들이 떠올랐다. 내가 하려던 작은 프로젝트 몇 건도 던져주고 싶어졌다. 다만 정군이 이걸 자기 아부 덕이라 생각하진 않았으면 했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 방문을 벌컥 열었다. 수험생인 녀석은 늦은 시각에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할래?"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책상을 정리했다. 의자를 건네는 손짓이 조심스러웠고, 옷장 앞에 서서 어색하게 발끝만 바라보았다.
중학생 때는 이렇게 불쑥 들어와 정리 상태를 점검하곤 했었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지났는데도, 옛날 버릇처럼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과 침대, 책장에는 문제집들이 빼곡했다. 평범한 수험생의 방이었다.
"엄마 돌보는 게 공부에 방해되지 않아?"
나는 혀가 꼬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물었다. 아들에게 추태를 보일 순 없었다. 아니, 이미 술 먹고 들이닥친 것부터가 추태였지만.
"공부는 무리없이 하고 있어요."
"대학은 어디로 생각하고 있어?"
아들의 입에서 곧바로 최상위권 대학들이 줄줄이 나왔다. 순간 의아해졌다. 이 녀석이 그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가.
"지금 실력으로 갈 수 있는 거야?"
아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책상 서랍을 열었다. 종이 몇 장을 뒤적이다 성적표 하나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전국 석차 두 자릿수라는 숫자가 눈에 날카롭게 박혔다.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아들을 흘깃 보니 뿌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다. 딱히 사교육을 시킨 적도 없는데.
"엄마는 요즘 어떻게 도와드려?"
나는 드디어 궁금했던 본론으로 들어갔다.
“침구 정리랑 방청소 정도만 해드려요.”
나는 잠깐의 틈도 주지 않고 물었다.
"씻는 건?"
그 순간, 아들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 씻는 건 혼자서도 하세요."
한때 아내의 우울증이 심각했을 때는, 녀석이 대야를 들고 들어가 아내의 얼굴을 닦아주고 머리를 감겨주곤 했다. 겉으로는 침착한 대답이었지만, 어딘가 미세하게 갈라진 듯한 균열이 느껴졌다. 나는 마치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화제를 슬쩍 돌렸다.
"학기 끝나면 일본 여행 갈 생각 있어?"
수년 전이 마지막 일본 여행이었다. 그 후론 아내의 공황 때문에 떠나지도 못했었는데. 당연히 반가워할 줄 알았던 아들의 표정이 미묘했다.
"친구들이랑 부산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일본은 그 뒤에 가야할 것 같아요."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이 녀석에게 그 정도로 친한 친구가 있었나? 입으로는 "그래, 알았어"라고 했지만, 방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자꾸만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부산 여행이라는 말이 자꾸만 걸렸다.
아들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어릴 적에는 '반쪽발이'란 놀림을 받았고, 내성적인 녀석은 덤벼들지도 무시하지도 못했다. 중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조롱이 잦아들었다. 또래보다 훌쩍 큰 키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성적이 무기가 되어준 덕분이었다. 선생님들은 아들을 모범생이라 치켜세웠고, 녀석도 공손한 인사와 적절한 농담으로 화답하는 법을 배웠다. 가정통신문의 '교우관계' 란에는 늘 '원만함'이라는 평가가 붙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는 없었다. 설사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와 가까워졌다 해도, 엄마보다 우선할 리는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튿날, 나는 장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아내가 많이 좋아졌어요."
나는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일본에 가려고 하는데... 아들은 학교 때문에 못 가서요. 먼저 다녀올까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장인의 목소리가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다. 나는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평소라면 '그야 두 번 오면 되지 않는가', '이번에도 오고, 아들이랑도 한 번 더 와'라고 했을 텐데.
장인은 어린 딸을 한국에 시집보내고 늘 애틋해했다. 아내를 보러 올 때마다 현금 뭉치를 건네고, 그 덩치 큰 사내가 애처롭게 얼굴이 젖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식은 딸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나는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틈만 나면 딸을 보고 싶어하던 장인이 이렇게 무심하게 넘기다니. 이상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