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와 멜로디 몇 마디로 전 국민을 흥얼거리게 하는 노래가 있다. 많은 이들로 하여금 '봄'을 떠오르게 하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다. 봄의 캐럴이라고 불릴 만큼 매해 봄이 되면 반갑게도 음악 차트에 잊지 않고 등장한다. 듣기만 해도 설레고 간지러운 느낌은 벚꽃이 만개한 거리를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키는데, 참 사랑할 수밖에 없는 노래이다.
코로나 19로 2020년의 봄이 달라졌다. 한창 꽃놀이를 즐길 시기에 밖이 아닌 안에 머물고 있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싱그러운 꽃 향기의 향긋함은 더 활기차게 보낼 내년에 양보했지만, 아직 봄은 우리 곁에 있다. 2020년의 봄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작품들을 이 봄이 가기 전에 소개해본다.
1. 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푸르고 깨끗한 하늘에 자라난 나뭇가지가 제법 힘이 세다. 굵은 테두리에서는 추운 겨울을 지난 후의 단단한 강인함이 느껴진다. 절대 부러질 것 같지 않은 나뭇가지 위로는 통통하고 새하얀 꽃망울이 폈다. 얼핏 보면 벚꽃과도 같은 싱그러운 이 꽃은, 봄이 오기 전 2월에 피는 '아몬드 꽃'이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아몬드 열매를 맺기 전에 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그래서일까. 이 꽃은 남프랑스에서는 봄의 전령으로 불린다. 보면 볼수록 하얗고 몽글몽글한 꽃망울로 설레게 만드는 이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이다.
고흐가 이전까지 그린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귀를 자르고 그린 자화상이나 거친 붓 터치로 시선을 끄는 작품들과는 다르다. 정성스럽고 소중한 느낌까지 전해진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평생의 후원자이자 동생이었던 '테오'에게 아들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그렸다. 테오는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로 지었다. 당시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짓는 관습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아닌 형의 이름을 따서 지은걸 보면 두 형제의 우애가 얼마나 애틋했는지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고흐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몇 개월 후에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은 이 선물의 주인공이자 동생 테오의 아들인 빈센트가 평생을 소중하게 간직하다가 세상에 내놓으면서 알려졌다. 불멸의 화가로 불리는 고흐의 삶은 참 안타까웠지만,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따스했던 가족의 애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봄의 향기만큼이나 따뜻한 작품이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반 고흐는 4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살았다. 그 기간 동안 약 2천여 점의 작품을 선보일 만큼 예술혼을 불태웠고, 그의 혼은 작품 속에 남아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위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이다. <꽃 피는 아몬드 나무>와 비교한다면 그가 표현하는 시선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붓의 터치나 대상, 표현 방법도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는 강인한 생명력과 따스함이 있다. 긴 겨울잠을 마치고 일어난 봄의 생명력을 만끽하고 싶다면 고흐의 작품을 찾아보자.
2. 이대원, <봄>
이대원 <봄>
향토적인 붉은 갈색과 푸른색과 노란색, 그리고 초록색으로 구성한 밝고 화사한 색감이 눈에 띈다. 짧은 붓 터치에 강렬하게 느껴지는 생동감은 봄이 왔음을 알린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가까이서 볼수록 형태를 뚜렷하게 알아보기 어렵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짧은 터치로 이루어졌으며, 가만히 바라보니 익숙하지만 새롭고 묘하다. 낯설지만 익숙한 새로움을 선물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대원 화백의 <봄>이다.
이대원 화백은 주로 과일과 나무, 들과 산 등의 전원 풍경을 그리며 예술 세계를 펼쳤다. 그의 작품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듯 밝고 유쾌하다. 작품을 창가 옆에 놓으면 다가오는 봄에게 먼저 인사를 전할 것 같다.
조르주 쇠라 <쿠르브부아의 센 강>
그를 설명할 때, 한국 미술사보다 서양 미술사를 먼저 접한 사람들을 위해 '조르주 쇠라'를 예로 든다.
조르주 쇠라는 신인상주의 대표 화가로 점묘법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이대원 화백의 다채로운 색감과 짧은 붓 터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쇠라의 점묘법을 떠올리게 하는데, 쇠라의 <쿠르브부아의 센 강>을 보니 이대원 화백의 작품처럼 밝고 짧은 터치로 이뤄져 있다.
그는 살아생전에 '한국 미술'에 대해 많은 고민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 인터뷰에서 '화랑이 주문하는 그림은 절대 그리지 않습니다. 주문 그림을 그리면 그 즉시 화랑의 노예가 됩니다'라고 할 만큼 소신 있는 인물이었다. 작품을 통해 '우리만의 독창성'을 고민했으며, 그 노력의 결과로 본연의 느낌을 잃지 않은 그만의 작품이 탄생했다.
이대원 화백이 바라본 봄은 민족 고유의 향토성이었으며, 동시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시작을 앞둔 열정으로 보인다. 오늘날 그의 그림은 기억하려는 이들로 하여금 전시뿐만 아니라 경매 시장에서도 종종 등장하며 높은 가격에 낙찰되고 있다. 자연의 인상을 담으려고 했던 그의 작품을 통해 다시금 봄의 생동감을 느껴본다.
3. 클로드 모네, <아이리스가 있는 모네의 정원>
클로드 모네 <아이리스가 있는 모네의 정원>
관광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파리 근교 여행지 중 '겨울'에는 문을 다는 곳이 있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이다. 빛을 담는 작가 모네의 열정과 애정이 담긴 곳이자,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곳이다. 폴 세잔이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고 모네를 표현했을 만큼 그는 작품에 빛을 담는 인상주의 대표 화가이다. 세 번째로 추천하는 봄의 작품은, 클로드 모네의 <아이리스가 있는 모네의 정원>이다.
모네가 지베르니를 발견한 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듯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지베르니를 발견했는데, 이후 주택을 구입하며 정원을 조성하기에 이른다. 연못에 수련을 심었을 정도이니 얼마나 아꼈을지는 눈에 선하다. 곳곳에 깃든 그의 손길로 지베르니와 이곳에서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위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인 <수련>처럼 여러 다른 색을 병합해서 자연을 담았다. 한 가지의 색이 아닌 여러 색의 겹침은, 땅속에서 피어난 꽃들에게 생동감과 무게감을 주었다. 연보라색의 꽃은 5~6월에 피는 아이리스이다. 아이리스가 가득 덮인 정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꽃 내음이 한가득 느껴진다. 꽃과 우거진 나무는 봄 햇살의 따사로움을 받는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아이리스 사이에 조성된 길을 거닐면서 느끼는 봄이 궁금해진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병을 든 소녀(A Girl with a Watering Can)>
모네의 정원은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다. 위의 작품은 지베르니 정원에서 그려진 작품으로, 그의 친구이자 인상주의 대표화가인 르누아르의 <물병을 든 소녀>이다.
르누아르는 야외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인상주의 화가이다. 그의 모델은 주로 여성과 어린아이인데, 이 작품에서도 파스텔의 따스한 색감을 통해 소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곱슬거리는 금발의 머리와 앙증맞은 붉은 리본, 무언가를 응시하는듯한 파란 눈동자, 그리고 싱긋 웃는 입술은 장난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발그레진 통통한 볼은 뒤에 있는 꽃보다도 싱그럽다.
소녀가 입은 푸른 원피스를 바라보니 따뜻한 어느 날에 그린 듯하다. 한 손에는 꽃을, 다른 한 손에는 물병을 들고 있다. 그런데 포즈가 어쩐지 어색하다. 마치, 부모가 아이의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어!'라고 말한듯한 느낌이다. 괜시리 웃음이 나는 포즈의 소녀를 따라가면 따뜻하게 미소 지는 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예술 작품 속의 봄은 오늘도 만개한다.
2020년, 바깥의 공기가 점점 무더워지고 있다. 많은 봄의 장면을 놓쳐서 아쉬운 요즘, 따스한 햇살과 함께 예술작품 속의 봄을 만끽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