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딜러로 일하다 보면 '경매의 낙찰가'를 언급하는 분들을 종종 뵈어요. 그런데 '미술품의 가격이 경매의 낙찰가'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해를 돕기 위해 미술 경매의 A to Z를 풀어봤어요. 원문은 Sharp Spo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sharpspoon.kr/interview_detail?id=36
처음 미술 경매장에 방문했던 건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이다.
대학교를 재학하며 좋아하는 작가의 소식을 꾸준히 찾아보고 있었는데, 국내의 한 미술 경매장에 그 작가의 작품이 등장한다는 소식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음에도 경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내가 그 자리에 가도 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전화로 방문 예약을 했는데, 우려와 다르게 너무나도 친절했던 경매회사의 안내에 용기를 내고 평창동의 경매장을 방문했다. 당시에도 미술 경매는 꾸준히 인기였지만, 지금처럼 대중화가 되기 전이었기에 쭈뼛거리며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비록 학생의 신분이라 억대의 작품을 구매할 능력은 안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서로 차지하려는 광경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오늘날에는 그때보다도 더 쉽게 경매에 대한 소식을 매체로 접할 수 있다. '낙찰 최고가/ 신기록'에 집중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지만, 기자의 의도대로 한동안 이슈가 되면서 경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최고가에만 집중하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경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만 말이다.
미술은 우리의 일상과 가깝게 있다. 그만큼 미술 경매도 활발하게 거래가 진행되며 미술에 대한 구매욕을 이끌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뛰는 스릴과 탄식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술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는 '미술 경매 '란 무엇일까. 경매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이나 알면 좋은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보자.
미술 경매의 시작을 알아보기 전에, '경매(Auction)'의 어원을 살펴보자. 경매는 라틴어 'augeō'에서 유래되었는데, '저지른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조금 더 풀이해보면,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입찰자에게 해당 물품을 매각하는 절차를 뜻한다. 이와 같은 장면은 실제 경매장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다수가 하나의 물품을 갖기 위해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치열한 접점을 벌이는 모습이다. 경매품의 가격은 원래의 주인과 경매회사의 논의로 정해지는데, 인기가 많을수록 여러 응찰자에 의해 가격이 올라간다. 당연히 승자는 마지막에 제일 높게 부른 사람이다.
미술 경매의 역사는 18세기 중반의 런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44년에 영국 런던에서 서적을 팔았던 사무엘 베이커(Samuel Baker)에 의해 '소더비(Sotheby's)'가 창시된 것이 오늘날 경매의 시작이다. 장서를 한 장소에서 사고팔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경매를 고안한 것이다. 오늘날의 소더비는 책과 각종 예술품, 와인, 보석류까지 약 60여 개에 달하는 품목을 다루며, 세부 품목만 수백 개에 달한다. 또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더 나아가 2000년도에는 인터넷을 통한 국제적인 경매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또한 신탁, 재산, 감정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역량을 넓히고 있다.
소더비와 양대산맥인 '크리스티(Chrisrie's')도 대표 경매회사이다. 크리스티는 소더비와 다르게 미술 작품을 중점으로 1776년 12월 5일에 첫 경매를 열었다. 현재에는 크리스티에서도 다양한 품목을 선보이며, 129개의 지사에서 연간 800회 이상의 경매를 기록한다.
이렇듯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전 세계의 경매를 휘어잡는 대표 미술 경매회사이다. 런던/뉴욕/홍콩 등 미술 애호가들을 위해 여러 지사가 뻗어있으며 교육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교육사업이란, 미술 경매를 위한 엄선된 전문 인력을 직접 선발하는 것이다. 미술사부터 작품의 진품을 가리는 방법까지, 체계적이고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있다.
국내의 미술 경매는 일제 강점기에 시작했다. 일본인에 의해 첫 경매가 시작되었으며, 본격적인 시작은 1971년에 한국고미술협회의 주관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미술 경매는 다양한 미술의 세부 분야를 진행했으며, 1998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 경매회사로 '서울옥션'이 가나아트에 의해 설립된다. 서울옥션은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이 된 미술 경매회사로, 1999년 2월에 독립법인이 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경매회사로 입지를 굳혔다. 현재는 미술 경매뿐만 아니라 온라인 생중계, 온라인 전시, 교육 등 경매에 관련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국내의 미술 경매 대부분은 2005년 11월에 '케이옥션'이 등장하기 전까지 서울옥션의 독점이었다. 갤러리 현대가 설립한 '케이옥션'으로 소더비와 크리스티처럼 국내에서도 경쟁체제가 형성되었고, 두 회사의 경쟁은 더 좋은 작품을 출품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는 경매시장의 높은 낙찰률로 이어지며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으며, K옥션도 서울옥션과 동일하게 온라인 경매와 교육사업 등 다각적인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최근에는 두 회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술품 경매회사가 등장했다. 예술작품의 경계가 모호해지듯 '미술품 경매'에 대한 벽도 많이 흐려졌는데, 여러 미술 플랫폼에서 자체적인 미술품 경매를 시행하는 등 쉽게 미술품 경매를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두 회사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서울과 부산, 홍콩 경매 등을 꾸준히 진행하는 중이다. (물론 홍콩 경매는 코로나 19로 인해 잠정적으로 멈춰진 상태이며, 이에 대해 서울옥션은 홍콩 경매에 출품하려고 했던 작품을 서울 경매로 선보일 예정이다)
1) 오프라인 미술 경매
미술 경매는 현장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경매와, 인터넷을 통해 참여하는 온라인 경매로 나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각각의 다른 경매로 출품하는 작품들도 다르다. 주로 굵직한 고가의 작품은 오프라인에,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은 온라인 경매에 나오는데 요즘 들어 그 경계도 많이 흐려진 추세이다. (가끔 깜짝 놀랄만한 작가의 작품이 온라인 경매에도 출품되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두 경매를 함께 주시하자)
오프라인 경매에 참여하는 방법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서면 응찰, 전화응찰, 현장 응찰이다.
먼저, 서면 응찰은 경매회사의 담당자에게 미리 상한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담당자는 응찰자를 대신해서 경매에 참여하는데 현장 응찰자와 서면 응찰자가 같은 가격을 제시할 경우 서면 응찰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다음으로 전화응찰은, 경매회사 직원과 통화를 하며 응찰하는 것이다. 미리 신청서를 제출한 후 담당자를 통해 현장가를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응찰에 참여한다. 일반적으로 경매장의 사이드에 전화 응찰을 맡는 담당자들이 앉아있는데, 특정 작품의 경매가 시작되면 불티나게 전화를 잡고 있는 모습은 경매의 또 다른 재미이다. 마지막 현장 응찰은, 현장에서 직접 응찰에 참여하는 것이다. 패들을 들고 참여가 가능하며, 응찰자들 사이에서 맴도는 미묘한 경쟁과 긴장감을 직접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세 사람이 세 가지의 방법으로 동일한 가격을 제시할 때 누구에게 우선권이 있을까. 정답은 미리 최고가를 제시했던 서면 응찰자이다. 같은 금액을 제시할 경우 서면, 현장, 전화 응찰자의 순서대로 우선권이 주어진다.
2) 온라인 미술 경매
온라인 경매는 회원가입 후 해당 기간 동안 참여하는 것인데, PC와 모바일을 통해서 공간의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다. 소더비, 크리스티, 서울옥션, K옥션에서 모두 온라인 경매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술 플랫폼 사이트에서도 자체 미술품에 대한 온라인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경매는 실시간으로 낙찰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이점으로 미술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 중국의 경매시장
중국 경매시장은 매년 1000회가 넘는 경매와 2만여 점을 뛰어넘는 물량으로 미술업계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미술시장은 1차 시장보다 2차 시장이 먼저 생겼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화랑이나 아트페어가 아닌 경매 회사를 통해 먼저 거래가 되었다는 뜻이다. 중국의 미술 경매는 2000년대 들어서 급성장했는데, 그 덕분에 200여 개를 훌쩍 넘는 경매회사가 설립되었다. 수와 물량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높은만큼 전 세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홍콩은 이미 여러 미술 경매회사가 주목하는 곳이다. 코로나로 대부분의 홍콩 경매장이 잠시 문을 닫았지만, 그전까지는 중국의 경매 중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아시아 미술의 중심지였다. 수출입 관세가 없고 영어가 통용되는 환경이 아시아 미술시장을 선두한 요인으로 생각되며, 우리나라의 서울옥션과 K옥션도 홍콩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경매를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관심 있는 경매사에 회원가입을 한 후 응찰해서 낙찰된 작품을 받는 것이다. 그전에 몇 가지 것들만 미리 인지하자. 먼저 내가 관심 있는 작품의 '실물'을 확인하는 것이다.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은 쉽게 말해 '중고'이다. 작가가 창조한 작품이 바로 출품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소유물로 있던 작품이 경매장을 통해 새 주인을 맞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세한 손상이나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이를 위해 경매회사는 '프리뷰 기간'을 가진다. 누구나 경매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정된 장소에서 해당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응찰자는 관심 있는 작품을 더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다.
다음으로 '수수료'이다. 모든 작품에 대한 수수료는 별도로 진행된다. 수수료는 최종 낙찰가에 붙는데, 금액이 커질수록 수수료도 같이 올라가기 때문에 사전에 수수료까지 포함한 금액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내 경매회사의 수수료는 15%(부가세 별도)이며, 국내 회사가 홍콩에서 경매할 때에는 회사와 낙찰 가격에 따라 15~18%로 상이하다. 덧붙여, 작품 결제는 현금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사전에 수수료 부분까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작품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미술 경매를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술 경매는 앞으로도 점차 활발해지면서 대중화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미술 경매에서의 낙찰가가 '미술품 가격'의 정답은 아니다.
경매시장에서 낙찰받은 가격은 당시 참여한 사람들과 분위기, 그 시대의 유행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보장된 가격'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작품을 소유하기 위해 응찰자가 낼 수 있는 가격'이다. 따라서, 낙찰가는 작품가의 절대가가 아닐뿐더러 작품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기준도 될 수 없다.
미술 경매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예술의 가치를 상업적으로 평가한다는 비판, 신진작가들의 새로운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이 작용한다.
미술 경매, 바라보는 시선에 정답은 없다. 확실한 건 미술 경매도 갤러리와 아트페어처럼 국내의 작가를 세계의 컬렉터들에게, 세계의 작품들을 국내의 컬렉터에게 소개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 경매가 앞으로도 미술시장의 발전에 기여하고, 그 덕분에 여러 예술가가 더 크게 웃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