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페르메이르(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소설과 영화로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법한 작품이죠. 베르메르로 더 많이 알려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원문은 어플 속 작가들의 미술관 [Sharp Spo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sharpspoon.kr/interview_detail?id=41
'영롱한 눈빛', '푸른색 터번', 그리고 '진주 귀걸이'라는 세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그림 너머 관람객을 바라보는 듯한 영롱하고도 오묘한 눈빛, 시선을 사로잡는 푸른색 터번, 그리고 반짝이는 귀걸이가 어떻게 한 번 보고 잊힐까. 그런 마음을 더 각인시키려는 듯 그녀를 위한 조명이 켜졌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빛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대표 작품이다. 페르메이르는 '베르메르'로 더 알려진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빛과 안정적인 구도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작품에 표현했다.
페르메이르는 '풍속화가'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화가이다. 그만큼 일상의 아름다움을 작품에 남겼으며, 뛰어난 실력으로 인정을 받아서 화가로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당시의 평균 자녀 수를 훌쩍 뛰어넘은 11명의 자녀를 그림으로만 먹여 살리기엔 어려웠다. 이에 갤러리스트나 숙박업 등 다양한 일을 하며 가족을 책임졌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매우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그림은 삶의 고단함 대신 따스한 빛과 시선으로 바라본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표현되어있다.
당시 그가 그림을 그렸던 17세기의 델프트는 왕이나 성직자의 통치를 받지 않았다. 이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야 했고, 상인 계급과 같은 새로운 후원자들이 등장한다. 후원자들은 자신을 미술작품에 담고 싶어 했기에, '바로크 시대'의 역동적이면서도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특징을 가진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그 시대의 대표 화가로 렘브란트가 있다.
렘브란트의 <야경>과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을 비교해보면 그 시대의 특징과 두 작품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인다.
먼저 두 작품 모두 명암대비를 통해 작품 내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다. 관람객은 화가의 의도에 따라 조명이 켜진 밝은 부분에 시선을 따라가는데, 사실적인 질감과 인물의 표정에 분위기가 실감 난다.
그런데 두 대가가 그린 인물이 매우 다르다. 렘브란트가 당시의 군인들을 대상으로 그렸다면, 페르메이르는 한 여인을 그렸다. 당시 화가들은 주로 종교/ 신화/ 역사/ 초상화 위주의 작품을 주로 그렸는데, 페르메이르가 그린 모델은 어쩐지 그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 렘브란트가 여러 색을 조화롭게 사용했다면, 페르메이르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강렬하게 등장시켰다. 또한 렘브란트의 <야경>이 시끌벅적하면서도 무언가 분주한 느낌이라면,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은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따뜻함이 묻어난다.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 어느 날에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모습, 페르메이르는 종교와 신화 속 주제가 아닌 일상을 남겼다.
이렇듯 페르메이르의 대상은 당시의 작가들과는 다르게 '부'와 관련이 없는 인물들을 주로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나 피아노를 지도하는 인물 등 왕과 귀족같이 힘을 행사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선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따뜻한 빛을 받고 있다. 그들이 '고상하다'라고 불리는 인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들 스스로의 빛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이들을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처럼 평온한 분위기로 담았다. 네덜란드 서민들의 평범한 삶을 빛이 절정인 순간에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소녀'는 누구일까.
그가 선택한 그림이 '부'를 가져다주는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의 삶 역시 모델을 구할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에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아내, 딸, 혹은 하녀로 추정하고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래서 더 신비하다.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소녀가 작품 속에서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작품 밖을 응시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은 소녀의 눈동자를 밝게 부각하는데,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배경 덕분에 그 눈동자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가만 보니 동작도 특이하다. 뒤돌아 서있는 건지, 돌아서 바라보는 자세인지 오묘하다. 빛과 주름으로 추론해보아 몸을 옆으로 두고 고개를 돌린 것 같은데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저 당시로서는 특이한 동작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어둡고 단조로운 배경이 동작의 입체성을 강조했다.
아랍풍의 파란색 터번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당시 네덜란드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파란색의 터번은 그 시대를 대변하고 있으며, 동시에 소녀를 더욱더 신비롭고 이국적으로 보이게 한다. 여기에 더해 그녀가 착용한 진주 귀걸이는 마치 부의 상징을 보여주는 듯하다.
진주 귀걸이 덕분에 그녀의 얼굴은 조명을 받는 것처럼 밝고 화사하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귀걸이, 그리고 붉은빛이 감도는 입술은 생기가 있다. 확대해서 바라보니 몽환적인 분위기가 매우 신비롭다.
마치 소녀의 눈동자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이컨텍을 하는 듯하다. 응시하는 시선과 살짝 벌린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느낌까지 준다.
페르메이르는 세부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했다는 평을 받는 작가이다. 그 예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눈썹을 그리지 않고 속눈썹을 최소화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생략은 '왜?'라는 물음으로 소녀를 더 신비롭게 만들었으며, 사라진 눈썹은 그녀에게 '북유럽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눈썹이 없음에도 커다란 두 눈을 바라보느라 어색한 느낌이 전혀 안 든다. 흥미로운 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처럼 뚜렷한 윤곽선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스푸마토 기법(회화에서 색깔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부드럽게 하는 음영법)이라고 부르는데, 윤곽선 없는 입술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완성시켰다. 실제 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녀의 표정은 묘하게 미소 짓거나, 놀랐거나,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 아리송하다.
오묘한 표정에 반해 입술 옆의 흰색 점은 매우 선명하다. 무언가 얘기하는 듯한 입술 옆으로 흰 점을 찍어서 반짝이는 느낌을 강조했다. 흰 점으로 강조하는 건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빛의 원리를 잘 아는 만큼 잘 이용했던 작가였다.
입술만 봐도 그의 특징이 도드라진다. 페르메이르는 붉은 입술 안에서도, 그 안에 빛에 반사된 모습과 안쪽의 더 붉게 변한 색상, 그리고 자연스러운 그림자까지 어색함이 없이 표현했다. 단순해 보였던 그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록 감탄하는 이유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도 있는 '진주 귀걸이'도 주목해보자. 진주 귀걸이를 확대해보니 굉장히 맑고 투명하다. 소녀의 얼굴에 들어왔던 화사하고도 강한 빛이 진주 귀걸이도 함께 비춘 것 같다. 그 빛이 어찌나 강했던지 굵은 흰색 점으로 표현되어 있다. 진주 귀걸이 아래로는 흰색 옷도 반사되었다. 사실적인 묘사에 마치 진짜 같은 착각에 빠져본다.
실제로 페르메이르는 이만한 크기의 진주 귀걸이를 살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작은 귀걸이를 과장해서 그렸다는 의견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귀걸이를 진주 귀걸이로 대체해서 그렸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주장이 사실이건, 작품 속에서는 진주 귀걸이로 소녀가 더 화사하게 도드라졌으니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렇듯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모두를 알쏭달쏭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깊이 있는 눈과 표정의 생동감, 응시하는 시선, 그리고 파랑/ 노랑/ 빨강의 조화는 참 우아하면서도 세련되었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작가의 숨겨진 표현 방법들은 그 신비로움을 더욱더 부각했다.
소녀는 이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듯, 그녀를 궁금해하는 이들을 그저 응시하고 있다.
현재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마우리츠호이스(Mauritshuis)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이 작품 외에도 페르메이르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소장하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43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가난으로 인한 질병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따라서 그는 생전에 40점 정도만 그렸으며,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32~36점(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다)이다.
여담으로, 그와 관련해서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만큼이나 몇 가지 이슈가 더 있다.
대표적으로 도난과 위작사건이다. 먼저 도난사건으로는, 그의 작품의 희소성 때문에 정치적 사건의 인질이 되는 것이다. 몇 없는 그의 작품을 지키려고 정부가 최대한 협상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작품으로는 <The Concert>가 있다. 이 작품은 1990년 가드너 미술관에서 경관으로 위장한 강도에 의해 도난당했다.
위작사건도 유명한데, 네덜란드의 화가 한 반 메헤렌(Han van Meegeren, 1889-1947)의 일화이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후 아돌프 히틀러에게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팔아넘겨서, 나치에 협력한 죄로 체포되었으나 이내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바로 그가 팔았던 작품이 그가 그린 위작이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페르메이르의 그림과 비슷해서 아무도 믿지 않았고, 이를 밝히기 위해 법정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림을 그렸다. 결국 위작을 그려서 판 것이 밝혀지며 히틀러를 속인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이렇듯 페르메이르는 그 신비로운 작품들만큼이나 아직까지 안타까운 사건에도 연루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 중이다. 그리고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몇 없는 그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따스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빛을 통해 그 마음을 화폭에 담은 화가, 페르메이르.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남긴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 작품만큼 책과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정도로 여전히 많은 이의 호기심 안에서 사랑과 관심을 한 가득 받고 있다.
그가 담은 소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그러나 감히 짐작해보면, 그는 매우 따스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행복했을 것이다. 작품을 통해 화가의 따사로운 눈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행복으로 전해지길, 함께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