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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Nov 24. 2022

내가 하면 안되는 일에 손을 댔다.

 나에겐 몇 가지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안되는 일이 존재한다. 전자는 공부와 취업, 스펙쌓기 등이고 후자는 청소, 요리와 같은 집안일이었다.




 엄마는 내게 방청소 좀 하고 살라고 늘 잔소리하면서도 내가 청소 좀 할라치면 탐탁지 않게 여겼다.


 "너는 왜 이거 하나 제대로 못 하니? 빨리 가서 공부나 해!"


 청소를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공부를 택했다. 그래서 중곧 내 방 청소는 엄마 담당이었다.




 요리나 빨래, 설거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내게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다며 화내면서, 내가 그 걸하는 꼴을 못 봤다.


 "됐어! 딴짓하지 말고 너 할 일이나 해!"


 그래서 그런 것들은 내겐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내가 해서는 안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집에만 있다보면 비단 그런 것들이 눈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그릇을 깨끗하게 닦고, 빨랫감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일렬로 정리된 물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생전 처음 느껴보는 뿌듯함이 올라왔다.




  요리는 그 중 하나였다. 요리보다는 조리에 가까우려나? 나는 주방에 서서 사소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빼배로나 레몬딜버터, 곶감호두말이와 같은. 가끔씩 엄마의 도움을 받아 갈비찜이나 미역국을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탐탁치 않아했다.


 “너가 왜 이런 일을 해.”


 나는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누가 하는 걸까?’



 하지만 엄마의 그런 말에 개의치 않고 나는 요리-라고 부르고 조리라고 읽는 것-를 계속 했다.


 고기가 다 익지 않은 삼겹살버섯말이 같은 괴작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만들었다. 가족들은 이내 나를 ‘원래 저런 거를 좋아하는 아이’로 받아들였다.








 엄마는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공주처럼 키워놨더니, 갑자기 저런다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싫지 않았던지 차츰 내게 이런 저런 집안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하기 싫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했다. 우리 엄마는 이런 일을 수십년간 했겠구나 싶어서. 집안일을 하면서, 집안일은 사소하고 간단하지만 하기 싫은 것이고, 그 매일 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고,치웠던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계속 하고 완성해야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짝이는 그릇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주방을 깨끗하게 만든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으면서, 나로 인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보는 게 뿌듯했다.


 '나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야.'


 그 사실이 중요했다.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자존감이라고 하기엔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내 삶의 지지대가 되었던.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내가 하면 안되는 일’을 하면서 느꼈다는게. 그게 나를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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