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 끝날까?
2020.9.3 | 229호 | 구독하기 | 지난호보기
때는 1957년 초 여름. 8명의 젊은 청년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클리프트 호텔에 모였어요. 세상에서 가장 높게 자란다는 미국 서부의 명물 '레드우드'를 잘라서 만들었다는 레드우드룸에 떡하고 자리잡은 이들은 칵테일 맥주 양주 등을 주문했지요. 그리고 이들은 (술에 가장 어울린다는 안주) 직장상사 뒷따마를 시작했어요.
"헐. 실화? 저번에는 누가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며 거짓말탐지기 갖고 오더니."
"놀랍지도 않음. 그 양반 우리 통화기록 다 녹음하는거 알고 있었음?"
"지가 노벨상 받았으면 다야! (딸꾹) 맨날 라떼만 마시는 주제에 말야"
이들의 뒷담화 대상은 천재과학자 '윌리엄 쇼클리'.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노벨상을 탔고 당시 실리콘밸리 팔로알토라는 도시에 '쇼클리 반도체'라는 회사를 창업했던 셀럽이었죠.
그런데 알고보니 회사 내에서는 정말 엄청난 꼰대였나봐요. 뒷담화는 점점 고조됐어요. 어느 청년이 이렇게 랩을 했죠.
♂️ "됐어 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이제 족해. 이 시꺼먼 회사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그리고 그들은 노벨상을 받은 위대하신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족한 가르침으로 가득한) 그 분의 품을 떠나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해요.
이들은 제일 똑똑하고 말 잘하는 29살내기 친구 로버트 노이스를 대표로 세워서 '쇼클리 반도체'를 능가할 회사를 만들기로 해요. 그 유명한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시작이에요.
"뭐야? 페어차일드? 그 8명의 XX들은 배신자야 배신자!"
쇼클리 교수는 외치죠. 그래서 이들은 지금까지도 '8인의 배신자'로 불리우고 있어요.
하지만 유쾌한 배신을 날린 이들 8인은 남김없이 잘먹고 잘살았대요. 그리고 오늘날 저널리스트들에게 '실리콘밸리의 아버지' 라는 별명을 얻게 되죠. (실리콘밸리는 아빠가 8명?)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페어차일드 반도체만 만든게 아니라 각자 흩어져서 실리콘밸리의 독특한 생태계를 만드는데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되거든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8명의 배신자들이 만든 회사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일하던 제리 샌더스는 "나도 창업해야지" 하면서 AMD 를 만들죠. 여기서 일하던 임원이었던 돈 발렌타인은 세콰이어 캐피탈이라는 벤처투자회사를 창업하고, 이 세콰이어는 또 GPU 끝내주게 만드는 회사 엔비디아 NVIDIA에 초기투자를 하죠. 세콰이어가 없었다면 엔비디아 또한 없었을지 몰라요. 8명의 배신자들이 INTEL, AMD, NVIDIA를 있게 한 씨앗을 제공한 거에요.
그리고, 이들이 만든 반도체의 진화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래와 같이요.
현재 전 세계 반도체 회사들은 뜨거운 성능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특히 2020년 연말 - 2021년 연초 정도에 신제품들이 대거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 먼저 CPU 쪽을 볼까요?
누가? AMD
언제? 올해 연말 안에
무엇을? 기존 대비 15~20% 성능향상이 이뤄진 새로운 CPU를
신기술이 담겼니? 7나노 공정을 쓴다고 해. 엄청 세밀한 공정이야. 특히 다른 경쟁자들이 못하는 영역이라 AMD의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
인텔은 가만있어? 아니
인텔은 뭘 한대? 걔들도 내년 초 신제품 내놓다고 오늘 발표했어
뭘 내놓는대? 11세대 신제품 CPU인데 비록 10나노 공정이긴 하지만 기존 대비 성능이 20% 정도 향상될 것 같대 (국문기사 참조)
그래서 컴퓨터 업그레이드하려면 뭘 사야 하는거야? 음... 두 제품 모두 기존 컴퓨터에 있는 메인보드에 대부분 호환이 될거야. 인텔이든 AMD든 PC에서 원래 쓰던 CPU만 빼서 헌거는 당근마켓 중고나라 등에서 중고로 팔고 신제품 사서 교체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GPU 쪽도 경쟁이 예상되고 있어요. 먼저 엔비디아가 어제! 8나노 공정의 GPU를 탑재한 신제품 그래픽카드를 내놓았죠. 8K로 게임을 돌리는데 60 프레임이 나오는 무자비한 성능을 보여주는 RTX 3090 이라는 그래픽카드가 나와서 게임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는데요. (가격은 1499달러라는 이 또한 무자비한 현실 ) 관련기사
AMD 또한 그래픽카드를 만들고 있거든요. 이게 또 성능이 그렇게 떨어지지가 않아요. 올해 3분기에서 4분기 사이에 빅 나비 (Big Navi) 라는 이름의 그래픽카드를 내놓을 예정인데, 성능에서 RTX 3080을 뛰어넘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관련기사
CPU의 강자였던 인텔을 AMD가 공정 혁신으로 따라잡았고, GPU의 강자인 엔비디아 또한 따라잡기 위해 AMD가 끊임없는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양상이에요.
그런데, 또 다른 도전자들이 있어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2007년 8월에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죠.
"우리의 목표가 뭐냐고요. 우리는 세계 최고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시장을 돌아보면 제품을 만들어서 그냥 내보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품을 딱 들었을 때 '정말 좋다'면서 집안을 뛰어다니며 엄마와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런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는 쓰레기를 내보낼 수 없습니다."
팀쿡 애플 CEO도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들었어요. 그리고 애플은 지금도 고객들이 딱 들었을 때 자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그를 위해서 자체적인 반도체 칩을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지난 2020년 6월 애플 개발자대회에서 애플은 인텔에 대한 의존을 접고, 맥북과 맥프로에 들어가는 칩을 자체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거에요.
"내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반도체를 내가 만들겠다."
애플의 반도체 독립 선언이었죠.
이런 반도체 독립 선언은 사실 구글도 오래전부터 해 왔어요. 2016년 구글은 딥러닝을 더 잘 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자체적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해요. 고객들을 위해 인공지능 서비스를 더 잘 해 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인공지능에 맞는 반도체를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던 거죠. 엔비디아가 만든 GPU가 딥러닝을 잘 처리해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었지만, 보다 딥러닝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거에요. 게다가 엔비디아가 GPU 제품 하나 팔면 50%가 넘는 엄청난 마진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본 구글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만들면 비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됐죠. (덕분에 엔비디아는 긴장모드로)
심지어 테슬라도 뛰어들었어요. 테슬라는 자율주행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맞는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만드는게 좋다는 판단을 하게 된거죠. 특히 테슬라는 궁극적으로 공정 효율화와 가격하락을 통해 다른 추격자들과 격차를 벌려야 하는 상황이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최대한 빨리 갖추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테슬라가 만든 자체적인 자율주행 반도체는 다른 경쟁자들이 쉽게 따라하기 힘든 테슬라만의 무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처음에는 인텔 AMD 엔비디아 등이 잘 하던 반도체를 왜 애플 구글 테슬라 까지 하게 됐는지 아세요? 이유는 간단해요. 실리콘밸리에는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많거든요. 애플 구글 테슬라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고, 회사에서 주는 대우가 높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의 비전과 문화를 사랑하게 되면서 인텔 AMD 엔비디아에 있던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점차 애플 구글 테슬라로 옮겨가게 돼요. 애플 구글 테슬라 등은 생각하게 됐죠.
"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반도체를 맨날 인텔, 엔비디아 졸라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구지 그럴 필요 없이 엔지니어들 데려와서 우리가 만들면 되겠네-!"
그 결과 반도체는 이제 각자 회사에 맞게 훨씬 다양하게 진화하게 된거죠.
8명의 배신자에서 시작한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생태계는 오늘날 인텔 AMD NVIDIA 라는 걸출한 회사들을 넘어서서 애플 구글 테슬라 아마존 등에게 까지 넘어가고 있어요. 여러분은 연말연초 새롭게 출시되는 반도체에 대한 뉴스들을 계속 보게 되실테고, 보다 많은 실리콘밸리 IT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반도체를 발표하는 뉴스들을 계속 접하게 되실 거에요. 그리고 컴퓨터 핸드폰 뿐만 아니라 스피커 냉장고 선풍기 에어콘 시계 자동차 자전거 등등 수많은 기계와 환경에 딱 들어맞는 더 많은 반도체, 더 다양한 반도체들이 나오게 되겠죠.
쇼클리에서 쪼개져 나온 8명의 제자들이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만들고 그 페어차일드 출신들이 또 인텔 AMD 세콰이어 클라이너퍼킨스 엔비디아 등을 만들고, 이 회사 출신들이 또 애플 구글 테슬라 등으로 흘러들어가서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실리콘밸리. 경쟁과 전쟁을 하면서도 이 생태계는 계속 울창해 지고 있네요.
오늘의 미라클레터는 그 반도체의 삼림 속에서 전해 드렸어요.
Directly Yours,
신현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