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ause

손에 있는 것을 놓을 용기

어떤 문은 모든 문들이 완전히 닫혔을때 열린다.

by Alice in wonderland

그런 시기가 있다. 인생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시기.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고, 많은 것을 이루었고, 만족할만한 것들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만족이 안되는것에 불행하고 괴로워하는 시기. 객관적으로 모든 것은 좋았다. 사회에서 인정해주고, 좋은 동료들로 가득한 직장, 잘생기고 성실하고 번듯한 연인, 나를 지지해주는 친구들과 가족, 모든 것은 더 나아지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다. 나아지기 힘든데 이렇게 불행하면 난 뭘 어떻게 말이지? 난 뭘 원해야하지? 늘 직장과 연인은 내 삶의 가장 큰 두 축이었다. 이 두개는 나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를 주고, 동시에 가장 큰 기쁨을 주기도 한다.


나의 불행은 연인과 직장에서 나왔는데, 내가 아무리 책을 읽고, 마음을 다스리고 해도 불행은 쉽사리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냐면 이는 잔잔한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강점 중 하나는 대단한 실행력이다. 만약 내 불행이 굉장히 명백한 요인에서 왔다면, 나는 바로 무언가 실행을 했을 것이다.


만약 연인이 바람을 피웠더라면, 나에게 단 한번이라도 아주 무례하게 굴었더라면,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했더라면,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헤어짐이 더 쉬웠을 것이다.


만약 회사에서 보스가 나를 괴롭혔다면,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면, 의사결정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면, 휴가를 못가게 했다면, 돈을 잘 안줬다면, 내 인사평가가 나빴다면, 아마 나가는 의사 결정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 객관적으로 너무 좋은 사람과 회사를 '내가 불행하다'는 감정적인 이유로 잘라버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함정은 그 객관적으로 좋은 조건들에 있었다. 난 불행을 내탓으로 돌렸다. 내 연인과 직장은 객관적으로 좋았지만, 나와 핏이 맞지 않는 직장이었고 사람이었다. 각각 4년을 사귀고 3년 3개월을 일하면서, 답답해하고 만족하지 못했으면서도 그걸 참고 견디며, 내 부족함을 탔했다.


'내가 좀 더 노력하면 회사에서 더 잘하게 되면, 내 마음도 편해지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온 방식이 옳은거라고 했고 지난 몇십년간 이게 잘 작동해왔던 방식인데, 내가 못하는 거겠지, 내가 뭘 모르는 거겠지. 중국 소비자는 동남아 소비자와 너무 다르지만, 중국 마케팅 에셋에 투자된 돈과 노력이 얼만데, 어련히 중국팀이 고퀄리티로 만들었겠지. 그 마케팅 에셋이 맞지 않다 생각하면, 우리의 한정된 자원으로 얼마나 좋은 방안을 떠올릴 수 있겠어? 그리고 에셋을 만들다 한들, 그게 잘 작동한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거야?'


'너는 항상 이성적이고, 나보다 성숙한 사람이니까. 부처님도 늘 '현재에 살라'라고 했는데, 너는 현재에 사는 애니까 우리가 아주 심각하게 싸우고, 친구들과 오래전에 한 약속이니까 발리에 가서 다이빙을 하면서도 넌 아마 현재에 살며 물고기와 산호초를 잘 보고 있겠지. 그리고 애들이랑 맥주 한잔씩 하고 현재에 집중해서 웃으면 우리의 이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도 잊게 되겠지. 나는 비합리적인 사람이라 자기 전에 온갖 고민들이 떠올라서 잠이 안와서 너에게 얘기를 꺼내면 너는 그런 진지한 얘기는 일단 자고 낮에 하자고 하겠지. 너의 말은 틀리지 않아. 그런 심각한 얘기를 밤에 자기전에 하는 것은 낮에 그 많은 시간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내탓이다.'

나를 비난하는 것은 쉬웠다. 왜냐면,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를 몰랐으니까. 무엇보다 '나'를 잘 알아야, 내가 그들과 맞는지 안맞는지를 알 수 있는데, 문제는 나는 나 스스로를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만족을 못하는 내 스스로를 계속 비난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었다. 내가 모자란 거겠지.



그러나 나는 본질적으로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 불행을 그렇게까지 오래 갖고 있을 수가 없었다.


먼저 정리된 쪽은 약혼자였다. 나는 이 순간을, 내 전 약혼자가 이성적이고 현명한 사람이었음에 감사한다.


회사와 관계 둘 모두의 불행에 지친 나는 둘 중 하나를 먼저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회사쪽의 불행의 모습이 훨씬 더 명백했기 때문에 나는 회사를 먼저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 원래 항상 이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이 뚜렷이보이던 예전과는 달리 이번엔 가고싶은 산업도, 회사도, 직무도 명백하지 않았다. 마음 한켠은 창업이 하고 싶기도 했고, 다른 한켠은 그냥 여행이 하고 싶기도 했다. 창업을 친구들이랑 준비하고 있었고, 사실 그 창업을 준비하는 것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서 거기에 좀 더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회사를 일단 그만두기에는 무서웠다.


'무섭다'는 감정은 되게 비이성적이다. 400만원들고 싱가폴에 관광비자로 입국했던 7년전에 비해 나는 훨씬 많은 돈이 든 통장에, 유창한 영어, 여러 직무 경험, 훌륭한 회사들에서 얻은 경력까지 도무지 무서울게 없어야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게 되는 그 상황이 두려웠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게 두려웠다.


그래서 약혼자에게, 어차피 우리 약혼한지도 1년이 되었으니 너랑 나랑 둘다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결혼식은 차치하더라도 결혼 서류 등록을 하자고 했다. 왜냐면 내가 직업이 없어서 워킹비자가 캔슬되면, 그래도 배우자 비자로 계속 싱가폴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얘가 비자는 결혼을 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사이에 요새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가 풀리기도 전에 이런 상태로 결혼을 하면 안된다고.


기가찼다. 4년을 만났고, 니가 1년전에 청혼을 해놓고, 혼인신고를 하자고 하니, 비자때문에 하는건 아닌거같다고? 비자만큼 현실적인 결혼 이유가 어딨다고?


이 사건은 나에게 일종의 'wake up call'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 얘기를 한지 2주가 지나지 않아 나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비이성적인 결정일 수 있지만, 난 그것까지 포용해줄 사람과 살고 싶었다.


우리는 그때 헤어지면서도 100% 논리적 확신은 없었다. 왜냐면 둘다 나름 성숙한 사람들이었고, 서로를 존중했기에 큰소리 몇번 안치고 (초반에 내가 도저히 얘가 적응이 안되서 헤어지자 공수표 5번 날린거 빼면) 잘 만났기 때문이다. 헤어진 지 1년이 지난 지금, 이 결정은 우리 둘에게 굉장히 좋은 결정이었다는게 명백해진다. 이건 긴 얘기라 따로 써야지.



나는 내가 헤어지고 후회의 지옥에 살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몇번 오지게 울고 나니, 생각보다 빠르게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살면서 남자친구가 없었던 공백기간이 별로 없었는데, 30대의 솔로는 엄청 신나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양하게 이기적인 도시의 싱글남들을 만나면서 혀도 차고, 친구와 같이 살면서 허심탄회한 수다도 떨고, 전약혼자는 치를 떨었던 김치도 신나게 먹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맨날 끓여먹고, 정말 내 삶에서 가장 잘 놀러다닌 기간이었다.

긴 연애에서 벗어났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다. 사실 연애한 기간보다 그냥 묶여있던 기간이 길었어서, 그래서 나다워지기 위해 망나니 세션을 겪고 있었다.


약혼자와 헤어지고 한 6개월 나는 회사문제는 살짝 덮어둘 수 있었는데, 영원을 약속한 사랑은 가도, 월급은 매달 나의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월급 아멘.


그러나 회사는 내 불행의 또다른 큰 한축이었다. 회사 밖에서의 삶이 신나고 짜릿한다 해도, 회사 내에서의 삶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능성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불만은 계속 풀리지 않고 자리하고 있었다.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은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어느날 몇단계 위의 보스가 나에게 메신저를 보내왔다.


이곳에서 재능 낭비를 하고 있으니, 얼른 나의 열정을 찾아서 다른 일을 하라는 개인적 메시지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무난무난하게 여러가지 역량이 발달해 있는데 난 특정영역에서 퓨욱 치솟아 있다고 했다. 예컨데, 아이디어, creativity, 카리스마, way with people 같은 역량들이 뛰어난데, 이것은 현 회사에서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 직무에서 많이 필요로 되는 역량들 - organizing, planning ahead, structuring 이런 것들은 나의 약점이었다.


나는 지난 3년간 약점을 보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 나의 첫 매니저는 나의 강점을 강화하는데 집중했고 난 조금은 신나게 자율성을 갖고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큰 마켓을 담당하며 모두의 관심이 쏠려있는데서 일하면서 모두의 피드백을 받아 누더기가 된 전략을 하는게 싫었다. 그것은 내가 하루종일 고심해서 나온 내 플랜이 아니니까. 대신 나에게 작은 마켓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안알려주고 날 그냥 거기에 던져놓으면, 난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런데 이제 두번째 매니저는 나를 위로 올려보내기 위해 나를 좀 더 다듬으려는 상태였다. 매니저는 나에게 먼저 동의를 구했다.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고, 너가 승진을 하려면 이런 부분을 보완해야한다. 동의하니?"

나는 동의했다.

"승진은 제 목표가 아니에요. 저는 그렇지만 제 역량을 더 개발하고 싶어요. 승진을 하기위해서 이 역량을 개발하진 않고, 이게 제가 업무를 수행하는데 모자란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걸 개발하고 싶어요. 제가 좋은 퀄리티의 업무를 하고, 그거를 하는 과정에 승진이 있다고 생각해요. 승진은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그렇게 동의 후, 난 몇달간 고통스럽게 매니저의 가르침을 모두 따르고 있었차였다.

폭발한 날은 내가 7년을 일하면서 세번째로 회사에서 울었던 날이다.


첫번째 한국 대기업 다닐 때, 외국 못나갈까봐. 여기서 그냥 주저앉을까봐 무서워서 운것.

두번째 리크루팅 회사 다닐 때 클라이언트가 내가 잘못햇다고 생각해서 날 맹비난했을때

세번째, 이날. 질질 끌려가면서 하고 있는 이 일이 끝나지 않을것 같아서. 일을 해도, 계속 다음이 오는데, 그 모든것을 다 컨트롤하며 내 한몫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는게 내 존재의 가치에 상처를 줘서. 근데 문제는 그렇게 모든 것을 부어서 이걸 해도, 그걸 통해서 이루는 end goal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서.


이제 막 큰 발표를 끝내고, 좋은 얘기를 듣고 한숨 넘기나 했는데, 그날 보스와 1:1을 하면서 보스가 몰아쳤다.


다음 스테이지는 어떡할거야?

계획은 뭐야?

you gotta think ahead

난 오늘 너가 다음 스텝을 얘기할거라고 기대했어.

이건 역량의 문제가 아니야. 플래닝을 하는것의 문제이지.



이 혹독한 1:1을 끝나고 난 생각을 했다.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솔직하게. 내가 하는 이 모든걸 왜 하고 있지?

내 머릿속에는, 내 마음에는 이제 이 제품을 런칭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다.

end goal에 대한 passion이 없으니, 이 모든 절차적 게이트를 플랜하고 나아가는데 너무 힘든것이다.

제품이 shelf에 깔린걸 보고 행복했어? 뿌듯했어? 글쎄

내가 좋았던 모멘트들은, 마케팅 플랜을 짤때, 이 제품을 어떻게 팔지 고민할때,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지 고민할때, 인사이트들을 발견할 때, 좋은 컨셉과 메시지를 생각했을 때, 그럴 때 였다. 그리고 난 제품을 팔면서 빠르게 바뀌고 싶지, 제품을 팔고 하나를 바꾸기 위해 1년 후를 준비하고, 플랜을 대비하고 대비하고 대비하고 하고싶지 않다.


난 근본적으로 이 회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패션이 없었다. 그런데 그걸 자꾸 강요하니까 너무 힘들었고. 일은 일이라고 하지만, 이 일은 나에게 너무나 보람이 없었다. 난 이윤을 남기며 매년 더 많이 파는 것을 계속 해나가는데 지쳤다.


적어도 난 보스앞에서 울지는 않았다. 다만 먼저 퇴사한 친구와 이 내용에 대해 전화를 하다가 눈물이났다. 회사에서 힘들어서 울거라고 생각해본적은 없다. 내가 하는 일은 육체 노동도 아니고, 사람들은 합리적이며 옳은 말만한다. 그리고 그들은 따뜻하고, 동료애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폰부스에서 눈물이 났다. 왠지 모르게 이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감정노동이었다. 친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Alice, it's not your passion and you are not growing the way you want to be. Growth itself is not enough. The direction for the growth is important as well.


Even with the great environment, you are still not happy.

Happiness is the sign from your brain to move.


You've experienced a lot, there must be something that you really like to do when you open your laptop. DO that. If you like coming out the crazy idea, just do that."


그리고 그 크레이지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게 생길 때까지. 왜냐면 난 지금 passion이 바닥난 상태니까. 그래서 난 보스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난 정말 이말이 너무 하고 싶었고, 그 말을 해냈을 때, 한 10kg은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대신 사표는 아니었고, 내가 나가면 지금 안그래도 모두 max로 일하고 있어서 업무가 잘 안될테니 내 후임을 구하라는 거였다. 그 사이에 나도 마음의 준비도 좀하고! 그래서 퇴사의도를 밝히고 실제 퇴사까지는 4개월이 걸렸다. 물론 이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해가 뜨기전 가장 어둡다는 말쳐럼, 퇴사 전까지가 가장 초조하고 두려웠다. 그것을 극복하고 나오고 난 후, 혹은 정말 그냥 회사를 안가기 시작하니까, 그 후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삶이 나를 그렇게 푸쉬했던 데에는, 우주의 플랜이 있었다. 내가 다음에 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이직을 하지 않고 휴식시간을 가진 것은 나에게 다른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결국 4개월 후인 6월 말 퇴사를 하고, 한 3.5 개월을 무계획 여행을, 마음가는대로 다니다가 유럽이 추워져서 싱가폴로 돌아왔다. 갈갈이 갈라진 마음과 머리가 합쳐져 온전하고 안정적인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난 내가 불만할것 없는 환경에서도 행복하지 않을 때,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덜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았다. 문제를 마무리 짓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끝나지 않을 것 같으면, 극복하지 못할 것 같으면 잘라내는 것도 방법이다. 잘라나가서 아플것에 두려웠지만, 견딜만하고 오히려 마음에 자유와 행복이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많이 하는 실수가 지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할 때, 그 문제를 마주하기 보다는 도망을 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 관계가 좋지 않으니까, 결혼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혹은 우리 결혼생활이 좀 무료한데, 애가 있으면 나아지지 않을까? 이 회사가 너무 싫은데, 그냥 같은 산업에 다른 회사로 가면 괜찮지 않을까? 아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괜찮아, 그냥 아무대나 다른데 갈래!


똥 피하려다가 똥통에 빠지는 실수를 많이 저지르곤한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도 그대로 할뻔했다. 관계에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결혼하자고 했고, 하마터면 비슷한 일을 하러 다른 회사에 조인할 뻔했다. 그러나 조상신의 도움으로 결혼도 하지 않았고, 조금 더 작은 회사의 브랜드 매니저가 되지도 않았다. 그 거절당함이 그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이는 나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해주었다. 몸도, 마음도.


때때로 삶이 불안할때는, 어떤 요건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더하는게 아니라 빼야한다. 이미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면 말이다. 그런데 뺄려는 그 요소가 내 삶에서 중요한 축일수록 그게 없을 때의 공백이 불안해서 놓지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 불안감으로 나와 맞지 않는 것을 붙잡고 매달려있으면, 불행해진다. 용기를 내서 그걸 빼내야 더 좋은 것이 들어와 앉을 자리가 생긴다.


어떤 문은 모든 문이 완전히 닫혔을때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걸 놓았을 때, 삶의 다른 문들이 열리는 것을 볼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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