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e in wonderland Oct 30. 2020

한식당에서 부자아저씨를 만난 얘기

취향에 대해서 생각해본 일

“혹시 한국인인가요? 베를린에 authentic한 한국음식점이 좋은 곳 알고 있나요?”

한달만에 찾아온 한국 음식점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의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거셨다. 한국인처럼 생기셔서, 한국어로 말을 걸법도 한데 영어로 물어서 아저씨의 국적이 조금 궁금했다. 나는 베를린에 살고 있지는 않아서 괜찮은 한국 음식점을 잘 모른다고 말씀드렸고, 이런 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어차피 아저씨도 일행이 없어보였고, 나도 일행이 없이 혼밥이라 테이블에 조인해도 되겠냐고 내가 물어서 낯선 아저씨와 같이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의아했다. 화요일 늦은 점심시간 2시. 남들은 다 일하느라 바쁜 이 시간에 중년의 아저씨는 여기서 여유를 부리고 계신겁니까?

궁금해서 나는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저씨는 전 세계 여러곳에 집을 갖고 계시고, 베를린에도 집이 있어서 지금 두달간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이쯤되면 궁금하다. 왜 어쩌다 내가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은 다 부자일까? 나에게는 부자 센서가 있나? 아니면 정말 세상엔 부자가 이렇게 길에 치이게 많은가??  

암튼, 아저씨의 사연이란 이러하다. 아저씨는 한국인 혈통의 카자흐스탄 사람이다. (어쩜. 내가 또 카자흐스탄하면 할말이 많지 않은가? 교환학생으로 6개월 살았으니까! 그래서 얘기할 거리가 많았다.)

아저씨는 대학교를 모스크바에서 졸업했는데, 졸업 후에 취업을 안하고 바로 사업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때가 1980년대 후반이었는데, 그때는 소비에트 연방이 망하면서 연방이었던 나라들이 자본주의가 되어가는 물결을 급박하게 타고 있었던 때다. 그래서 당시 카자흐스탄에서는 물건이 없어서 못팔던 때 였다고 한다. 물건을 가져오기만 하면 팔리는 그 시기를 아저씨는 놓칠 수 없어서 도매상으로 전자제품을 떼와서 파는걸 시작했다고 한다.

첫번째 벤더는 파나소닉이었다. 아저씨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고했다. 그때만해도 일본브랜드들, 그 중에서도 sony가 아성을 떨치고 있고, 삼성은 듣보잡이었는데, 삼성에서 사람들이 와서 자기네가 이제 소니만큼 잘나가는 브랜드가 될거라고, 그보다 더 유명한 브랜드가 될거라고 그랬는데,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고 한다. 참 대단하다.

암튼, 그렇게 물건이 없어서 못파는 시절과 장소에서 아저씨의 도매상은 폭발적으로 커서, 곧 전자제품 리테일 샵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게 Sulpak이라는 지금도 카작에서 제일 큰 전자제품 유통회사가 된다. 비즈니스를 하던 15년만에 매장은 60개로 늘어났지만, 2009년 세계경기가 안 좋았을 때, 아저씨는 러시아 재벌에게 본인 지분을 넘기고 45세의 나이로 은퇴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2009년에 회사를 팔고 받은 돈으로 부동산을 하셨다고 한다. (2009년이면 부동산 들어가기 최고...) 그래서 러시아 포함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여기저기에 집을 사놓으셨고, 지금은 그냥 자본소득을 통해 들어오는 돈으로 라이프스타일이 충분히 유지가 되므로 욕심부리지 않고 재밌게 지내고 있다고 하셨다.

사업하실 때 많이 힘드셨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사업할 때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아저씨네 회사가 카작에서 제일 큰 유통채널 중 하나니까 벤더들이 그렇게 여기저기 여행을 보내주고 재밌는 일에 많이 초대해주었다고 한다. 일이 아니었으면 가지 않았을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여러 나라를 전세기를 타고, 최고급 호텔부터 다양한 경험으로 짜여진 여행을 벤더들이 보내주는 거다. 거기에 사업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니 얼마나 신날까... 주식산거 오르는것만봐도 신나는데 내 사업이 막 그렇게 성장하면 얼마나 신날까...

그래서 그때도 재밌었고, 은퇴를 하고 난 지금도 재밌다고 했다. 요트도 전세기도 없지만, 보수적인 투자를 하면서 살면 삶이 즐겁다고 한다.


진짜 부동산 뒷북인 내가, 베를린은 부동산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정부의 규제가 너무 심해서 수익이 2 -3% 밖에 안나와서 이제 재미를 못본다고 했다. 근데 미국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 대도시의 부동산은 규제가 들어가는 것이 트렌드기 때문에 부동산은 대도시는 수익율이 당분간 계속 좋지 않을거라고. 다만, 요새 보고 있는 부동산은 아직 규제가 잘 정비가 안된 체코와 두바이라고 하셨다. 근데 그나마도 본인이라고 다 항상 투자에 성공하는건 아니라고. 러시아에 자산이 엄청 많은데 러시아 경제가 꼴아박고 있으며, 2000년도에 미국으로 이민가려고 주택을 여러채 사놨는데, 5년동안 살아도 시민권이 안나와서 그거 팔고난게 지금보니 각 채별로 5배가 올라있었으니, 잃은 것도 놓친 것도 많다고 했다.

아저씨랑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어서 사진을 보니까 거의 우리 부모님의 나이이신 분이 찍었다고 안믿길 정도로 감각적인 사진을 많이 찍으시더라. 유럽에 꼴랑 한달이지만 살면서 느끼는건, 역시 감각과 취향은 시간과 돈, 장소 (어디에 사느냐)의 뒷받침인 것 같다. 아저씨는 카작사람이지만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시고, 영어도 잘하셔서 유럽에서 사는데 거의 문제가 없으니까 좋은거 많이 보고 여유있게 사시면서 우아하게 나이드신 것 같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집을 갖고 자기 취향대로 사는 아저씨의 삶이 정말 좋아보였다.

여담인데 아저씨가 한국 부동산도 놓쳤는데, 잠깐이지만 한국도 이민을 고려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혈통은 한국인이니까). 그런데 한국은 사람들이 너무 경쟁적으로 열심히 일해서 마인드셋이 너무 달라서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기는 러시아 사람들은 속속들이 이해가 갔는데, 한국의 마인드셋은 너무 빡쎄서 어려웠다고. 한국 사람들은 심지어 카작같은 나라에 파견 근무를 와서도 한국으로 돌아가느니 여기서 개인사업을 하겠다며 이악물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여윽시, 한국인은 진짜 아시아의 유대인이다. 우리가 반도나마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지고 볶고 있지, 반도마저 뺐겼으면 우리는 진짜 동아시아의 위대한 마피아 민족이 될뻔했다.

아저씨에게 나도 사업을 하고 싶은데, 독일에 한달 있어보니까 여기다가 회사 차리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씀드렸다. 아시아에 비해 너무 덜 역동적이다. 대신 나는 아시아에서 열심히 돈벌어서 여유를 찾아서 유럽으로 넘어오겠지... 활짝 열린 마음과 그보다 더 활짝 열린 지갑으로... 언제쯤이면 우리는 여유와 느긋한 마음을 여행을 가지 않고도 사회 안에서 품게 될까?

암튼, 아저씨를 보면서 나는 내 꿈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나는 행복한 부자가 되고싶다. 딱 이 아저씨처럼! 이름난 사업가 말고, 조용히 돈벌어서 조용하고 소소하게 여행다니고, 여러 나라에 집을 갖고, 사람들 만나고 내가 쓰고싶은 글을 쓰며 욕심 크게 안부리고 사는 그런 부자. 그리고 행복한 부자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자신만의 취향인 것 같다. 아저씨도 옷도 깔끔하게 잘 입으시고, 멋진 베레모를 쓰시고 스카프를 두르셨는데, 이날 샴푸 다 떨어졌다고 머리도 안감고 따뜻하게만 옷을 주워입은 나는 반성을 했다.


나는 물건을 안산다. 그리고 패션은 겉보기에 치중한, 본질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옷은 떨어진것만 안입으면 되지! 신발이 발냄새만 안나게 하고 발만 편하면 되지! 그리고 나는 더 중요한 일을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사니까 친구들이 나를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었는데 난 그게 은근 자랑스러웠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비싼 것이 아니더라도 내 스타일과 취향을 좀 더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살이 쳐지거나 흰머리가 생기는 노화현상을 어쩔 수는 없겠지만, 좋은 취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이나는 것 같다. 깔끔한 스타일, 좋은 향기, 단정한 자세, 몸 가꾸기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안목을 키우고 나와 맞는 것을 찾아야겠다. 예전에는 난 얼굴이 예뻐서 명품 없이도 빛난다고 했는데, 이제는 명품은 아니더라도 더이상 스스로를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면서 막다니는 건 쿨하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을 느꼈다. 이제 싱가폴에서도 크록스 쓰레빠를 신고 회사가는 것은 자제할거다.


남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나를 위해서도 정말 부지런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쁜 사람은 아니더라도, 좋은 취향과 스타일을 가진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면 삶은 꾸준히 재밌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득 수준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