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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Dec 15. 2015

프랑스 망나니, 매튜

가난을 이긴 사람들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함이 있다.

지금의 시니컬함과는 다르게, 싱가폴에 온 초기에 저는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많이 배웠지요. 헤드헌팅을 하던 시절에 프랑스인 동료 매튜에 대해서 써놓은 일기가 있는데, 나름 귀여운 점이 있어서 여기에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회사는 술자리가 잦다. 회식 같은 형태가 아니고, 아주 Fancy한 바에 가고 음악을 즐기는 그런 식이다. 애들도 재밌고 웃겨서 같이 홍콩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아무튼 엄청 화기애애한 그런 문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 나는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술먹고 늦게들어오지 않는지 밤이나 낮이나 걱정하는 남자친구가 한 축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들에 대해 호기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하는일을 내가하고, 그대들이 뭐하는지  뻔히 아는데 우리가 나가 놀아 무얼하겠의 마음이 컸다. (어차피 내 성과는 정치적인것과 전혀 상관없이 영업성과에 따라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 줄탈일도 없고..) 대신 나와 전혀 다른 산업군에 있고, 연령과 국적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저번주 금요일에, 약속도 없고 영국오피스에서 파견온 동료 웰커밍도 할겸 저녁 모임에 참석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동료 매튜와 얘기하게 되었다.


매튜는 나와 동갑인 남자 프랑스인이다. 그때까지 나는 매튜와 인사도 하루에 한번할까말까하는 아주아주먼 사이였다. 내가 매튜에대해서 아는거라고는 프랑스인, 남자, 동갑, 그리고 여자를 위해 돈을 벌고 여자를 위해 산다는 것뿐이었다.


오피스에 프랑스인이 두명 있는데, 점심먹을 때한 얘기가 프랑스 남자들은 자기 아내도 유혹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잡은 고기에게도 스릴을 선사하는 끊임없는 유혹본능! 그들에게 돈을 주고 여자를 사는 것은 자신의 수컷으로서의 무능을 입증하는, 거의 고자수준의 치욕이라고 했다. 여자를 유혹하고 그들에게 만족을 주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말하는 것을 점심에 카레먹으면서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이 회식날 처음으로 매튜와 진지한 얘기를 하게되었던 것이다.

매튜가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한국인, 동갑, 여자, 그리고 화장실 갈때 아이패드 들고 가는 애였다. 그렇다. 한때 내가 회사에서 힘들었을 때 나의 유일한 안식처는 화장실에서 애니팡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튜는 나를 멍청한애라고 생각했었다.


충격충격


마음속으로 '병신아, 내가 이 오피스 통틀어서 제일 똑똑해. 내 영어로는 나의 똑똑함이 60%밖에 표현이 안되서 그렇지..'라고 말할 뻔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역시 외국회사에서는 입다물고 있으면 안됨..

그런데 뭐 말도 잘 안하고, 아이패드만 들고다니고, 다루기힘든 클라이언트인지, 다룰 능력이 없는건지 사고도 많이쳐서 내가오래 못버티고 나갈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 눈에 총기가 애니팡으로 잠시 흐려졌던것일까


아무튼! 내가 이얘기를 쓰는건 매튜의 인생역정을 쓰기 위한 것이었는데, 서론이 대박 길었다.


매튜는 아주아주아주아주 가난한 프랑스의 슬럼에서 태어났다. 높은 범죄율이 자랑인것처럼 여겨지는 갱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전 세계에서 차가 제일 많이 불태워지는 곳이 파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그곳에서 매튜는 13세부터 술, 담배, 약..을했다고 한다. (나는 그때 포켓몬스터딱지를 쳤다.) 매튜는 길거리에서 맞으면서 ‘내가 존중받고 싶은만큼, 다른 이들을 존중하라라는 삶의 원칙을 배웠다고 한다.


망나니도 그런 망나니가 없었는데, 15세에 당시 21세의 누나와 함께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부모님이 이만큼키웠으면 되었으니 나가라해서 쫓겨났고 그 때이후로 부모님과 단한번도 연락한적이 없다고 한다. 그때부터 매튜는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져왔다. 아주 추운 길거리에서 부랑자들과 자기도 했으며, 길에서 자는것이 얼마나 추운지 알기에 나중에 자기집이 생겼을때 아주 추운날 길거리에 널부러져있는 부랑자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재우기도 했다.


맘대로 살았던 매튜를 구제했던 것은 누나. 누나는 매튜에게 누나네 집에서 지내는 것은 허락했지만 매튜가 스스로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굶겼다.(ㅋㅋ이게 나쁘게 들리는데 그게 아니라 원칙을 세우고 애를 독립시켰다는 얘기다.)

지금도 매튜가 제일 좋아하는사람은 누나다. 알고보니 여자를 위해 돈을 벌고 싶은것이 아니라 누나와 조카들에게 잘해주고 싶어서 돈을 벌고있었다.

18세때 통과하는바칼로레아 시험을 16세에 통과하고, 하루를 다녀오면 되는 군대(프랑스에서는 의무가하루)를 1년을 다녀왔다. 거기서 삶을 규칙적으로 사는 것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한다. 대학에 가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공부, 저녁과 새벽에는 공장에서 일했다. 하루에 두시간을 자고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매튜는 마스터학위까지 가지고 졸업을 했으며, 프랑스에서 1년정도 작은 회사의 인사팀에서 공부하다가 돈을 벌기위해 싱가폴로 왔다.


매튜는 말버릇이 있다. “내말 알겠어?”라고 3분 단위로 말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프랑스 인들도 영어를 지지리못한다. 매튜가 싱가폴에 왔을 때영 어가 내 영어 뺨치게 거의 바닥이었다고 한다. 그 때 자기를 뭘보고 뽑았는지 아직도 의아하다고 한다. 매튜는 지금 우리회사에서 1년정도 일했는데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영어도 네이티브인 3년 넘게 일한 사람들을 제치고 매니저를 하고 있다. 그것도 잘하고 있다. 돈도 많이 번다. 처음으로 성과대로 월급을 받았을 때 그 금액에 너무 감동해서 누나한테 전화해서 둘이서 한시간 넘게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매튜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매튜의 꿈은 세일즈일을 하면서 헐레벌떡 돈을 아주아주 많이 번 후, 30세 되기전에 프랑스에 5채의 집을 사는 것이다. 야무진것. (그래서 내가 이 타이밍에 “돈이 너를 위해 일하게하고 싶다는거구나?”하니까 매튜는 감탄감탄을 했다. 그런말을 하는거 처음 들었다고. 너 똑똑하구나라고 나에게 말했다. 다행이다. 니가 나에 대한 오해를 풀어서…) 그렇게 집을 산 후, 은퇴를 하는거다. 그리고 누나와 조카들, 그리고 자기가 꾸리게 될 가족들을 행복하게 돌보면서 사는 거라고 한다. 조만간 매튜는 돈찾아서 어디론가 갈거다. 이제 좀알게 되었는데 아쉽기 그지없다. 배우고 싶은 점이 있었는데


사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20대에 독립과 꽤 많은 돈을 번 애들을 좀더 알고있다. 대부분 외국애들이다. (한국에도 있을텐데 아마 내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바운더리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많이 못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역경을 헤쳐나온 애들이라 그런지, 얘들은 강하다. 20대는 아직 어린나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이에 안주했던 것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20대는 적어도 환경에 불만을 하며 위로받고 살 나이는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나와도 좋은 회사에 취업이 어렵다고 ‘힐링’을 말한다면 좀 부끄러워해도 될거 같다.


하나 더. 사회의 문제이기도하다.


개천에서도 용은 나야한다.

그런데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구조가 고착화되고, 사회에서 다른 방법으로 성취를 할 길들을 다 막아놓고 뛰지않으면 뒤쳐지는, 마치 한길로 난 무빙워크같은 곳에 모든 사람들을 세워놓고,  구조와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사람들에게는 눈치와 고정관념, 편견에 기반해 응원이 아닌 충고 먼저하려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라면, 장래희망을말하는게 무슨소용인가?


세상에, 특히 한국에 개천에서 난 용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수준이 그에 맞물려줘야한다.



우리에게 희망은 가난을 이긴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로 하기 어려운 강함이 있다는 것이다. 고난을 견디면 꼭 금전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성숙한 자기자신의 모습속에 삶이 주는 진짜 보상이 있을거다.


매튜의이야기가 좋은건 바로 매튜가 '자신의 삶'을 살고있기 때문이아닐까하는 생각이들었다. 똑같이 부모님이 부자인데, 인성이 좋은애가 있고 나쁜애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봤을때는 부모님의 부가 자기것이라고 생각하는 애들이 인성이 나빴던  같다. 자기자신이 이룬것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워할 것이지만, 부모로부터 주어진것에 자랑스러하는  쪽팔린거다.


그것은 '독립성'의 문제이다.

얼마나 독립적으로 자기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잘 사는것보다 중요한 !!
그 삶이 니꺼냐는 거다.


지금까지 미친듯한 성장을 하던 한국에서 사람 평가의 척도가 '결과적으로 그사람이 뭐가 되었는데?' 였다면, 앞으로는 정말로 그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더깊게 들어야하는시점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의 삶을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는 있을 수 없으니까.


자기 자신의 삶을사는 것은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한 숙제일거다. 나도 나의 삶을 살고싶다. 아직은 그런 삶을 사는사람들을 동경하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런 사람이고 싶고, 그런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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