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Hunter 타입인가요? 아니면 Farmer 타입인가요?"
이 질문은 서양 문화권에서 특히, 세일즈, 채용 직무에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흔한 질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딱 한명이 제가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저 비슷한 내용의 말을 했준 적이 있어요.
"앨리스,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에는 종류가 있는데, 너는 잘 다듬어진 태권도 마스터라기보다는,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느낌이야. 그런 의미에서 구조가 엄격하게 짜있는 큰 회사 안에서 너는 답답함을 느끼고 능력을 발휘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겠지만, 실제 싸움판으로 가게 되면 너의 역량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을꺼야. 그러니까 니가 하고 싶은 그 일을 해."
사람을 Hunter타입과 Farmer타입으로 나누는 양분법은 그 뿌리가 특수교육 심리학에서 왔다고 합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즉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과다활동, 충동성을 보이는 상태의 아이들이 왜 그런 행태를 보이는지 정확한 원인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던 이론 중 하나로 Hunter VS Farmer가 제시된 거에요. 인간은 몇 만년을 유목민 사냥꾼의 형태로 살아왔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위해 중요했던 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민첩한 능력이었지요. 기민하게 본능적으로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모든 사람들은 농부로 길러지고 적응이 되어온 것입니다. 다만 Hunter의 DNA가 뿌리깊게 박혀있는 사람들이 농경사회가 되어버린 오늘 날 태어나면 ADHD, 즉 통제가 안되는 어린이로 낙인이 찍히게 되는것이지요.
그리고 이 이론을 어른에게 적용시켜 재빨리 받아들인 것이 채용, 세일즈 관련 분야였습니다. 왜냐면 근본적으로 이 질문은 "생존하기 위해 어떤 특성이 더 필요로 되어지느냐?"에 대한 답변이거든요.
Farmer의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점진적으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는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육기관들이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내도록 디자인 되어 있지요. 외국 회사들은 Hunter타입의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장려하지만, 심지어 우리 나라는 회사들조차 이런 Farmer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장려하고 있어요.
반면 Hunter의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부족에게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급변하는 환경, 예측 할 수 없는 정글로 갑니다. 이에, 이 사람들에게는 매일이 같은 하루 일 수 없지요. 환경 변화에 극도로 예민하고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창의적이 될 수 밖에 없지요. 기존에 전해지던 매뉴얼이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런 Hunter 타입의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측불가한 업무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업가, 예술가, 세일즈처럼요. 그런데 이런 Hunter 타입의 사람들이 Farmer들에 의해, Farmer들을 위해 디자인 되어 있는 조직과 사회에서 살다보면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인정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제가 링크드인에 처음 입사했을 때, 정말 전형적인 Farmer 역할로 입사를 했었어요. 그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KPI(제가 평가를 받는 척도)가 제가 잘하는 일이 전혀 아니었거든요. 입사 한달도 안되서 이거 못하겠다고 매니저한테 말했더니, 매니저가 저를 타일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가 지금 하는 일에서 outperform하면, 좋은 평가를 받고 다른 부서로, 니가 잘하는 곳으로 갈 수 있지 않겠니? 니가 현재 부서에서 너 스스로를 입증하지 못하면 다른 부서에 어떻게 어필을 할 수 있겠어?"
그 말이 논리적으로 맞는 말처럼 들리기는 했지만, 저는 이렇게 반박했어요.
"당신 말도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비유를 해볼게요. 저는 검을 정말 잘쓰는 검술 마스터인데요, 지금 이 부서는 저에게 검을 쓰지말고 맨손으로 싸워서 이기라고 하고 있어요. 검을 잡으면 저는 날아다닐 수 있는데, 맨손으로 싸우면 저는 그저 그런 싸움꾼 밖에 안되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제 역량을 입증할 수 있겠어요? 회사는 저를 제가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하지 못한거에요."
그래서 역할을 바꿨냐구요? 네. 6개월만에 바꿨긴 바꿨는데, 이 역할도 semi-Farmer역할이에요.
저는 헤드헌팅을 하면서 제 스스로가 너무 명백하게 헌터타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헤드헌터는 결국 회사를 클라이언트로, 후보자를 제품/서비스로해서 파는 세일즈맨이거든요. 그러려면 일단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했지요. 그렇지만 제가 입사했을 때 저는 클라이언트가 하나도 없었어요. 회사는 저에게 '니가 알아서' 한국 회사들을 클라이언트로 만들어오라고 요구를 했지요.
처음 제가 한 일은 매뉴얼적인, 상식적인 일이었어요.
각 회사의 HR 매니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해서 우리와 일하자고 권유하기.
정말 아름다운 문장으로 1페이지 프로포절을 쓰고, 각 회사의 상황별로 customize해서 이메일을 쐈지요. 혼을 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메일을 쐈어요. 음.. 일주일을 기다려도 답변이 안와요.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담당자와 전화하기도 힘들어요. 워~낙 같이 일하자고 하는 헤드헌터들이 많으니까요. 한국에 오피스도 없고 한번도 들어본적도 없는 영국계 나부랭이 회사의 요청을 받아줘야 할 이유가 없는거죠. 기존의 에이전시도 관리하기가 힘드니까.
저는 이렇게 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HR 담당자가 우리를 고려하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결론이 내부 사람들을 통해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한국인들을 찾아냈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도 많이 배우고 있는 스탠리형님의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스탠리 형님은 역시 Hunter의 성향을 가지고 삼성에서 엔지니어로 근무를 하시다가 끝내 성향을 바꾸지 못하시고 지금은 외국에서 근무를 하고 계시지만 그때는 한국에 계셨었지요. 제가 헤드헌팅을 하면서 즐거워했던 일중 하나는 '듣는 일'이었습니다. 아, 잘 듣는 역량의 중요성은 정말 엄청나요. 이건 언젠가 새로운 글로 써야만 하는 내용이니까 여기에는 자세히 쓰지 않겠습니다. 스탠리 형님은 생면부지의 저에게 그것도 전화로 많이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삼성에서 내 예전 보스였던 분이 지금 상무님이신데, Planning engineer를 급하게 찾는다 하시더라구요. 연락해보세요. 010-xxx-xxxx."
저는 프랑스에 출장가 계신 상무님을 새벽 3시에 깨워서 헤드헌팅 요청을 받고, 2명의 후보에게 offer를 주는 과정을 끌어낼 수 있었죠. 헤드헌터로서 제 첫 success였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HR 담당자가 picture에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들을 고용하려면 공식적으로 계약을 해야하니까요.
매뉴얼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헌터로서 살아남으려면, 시장의 특성상 '한국은 탑다운으로 일해야 일이 된다.' 라는 점을 공략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그리고 그 탑다운은 회사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회사간에도 작용을 합니다. 한국에서 '삼성'을 먼저 클라이언트로 만들면, 그 다음 회사들에 영업이 쉬워지죠. 이것 또한 탑다운이었습니다. 중요한건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제가 그렇게 한거에요. 왜냐면 전 상황에 따라 빠르게 적응하는 Hunter타입의 사람이니까요.
Farmer적 성향의 사람들은 조직을 유지시키기 위한 근간입니다. Hunter만으로는 조직이 운영이 멀끔히 안될테니까요. 그런데 앞으로 변화가 극심한 환경에서는 Hunter타입의 사람들을 조직이 장려하고 도와줘야합니다. Hunter적 성향과 재능도 어떤 역할에 있느냐, 어떤 조직에 있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거든요. 한국의 다양한 직장인들을 만나보면 개개인의 역량이 굉장히 뛰어난데, 회사의 조직 문화, 내부 프로세스에 눌려서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분들을 무수하게 봐왔습니다. 아마 많은 Hunter 타입의 분들이 극도의 농경사회적 조직에서 고통을 받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무서운 건 제아무리 재능과 역량이 있는 Hunter들도, 계속 농경사회적 구조에서 평가를 받고 길들여지다보면 그 동물적 본능을 잃어버리고 중간짜리 Farmer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조직들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조직들에게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Hunter들을 잃고 있는지 몰라요.
그나저나 인간의 적응력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세요?
제가 얼마전에 비행기에서 멕시코 사람을 만나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에 마약 카르텔(범죄조직, 갱)이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농담이 아니구, 길거리에 목이 잘린 시체 5구가 고가도로에 걸려 있는게 매일 아침의 풍경이라고 합니다. 경찰들, 범죄와 싸우기로 한 정치인들이 살해당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곳이라구요. 제가 물어봤습니다. "그 사람들은 왜 다른 도시로 이사를 안가요? 삶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도대체 아직도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뭐에요?"
"사람들은 적응하거든요. 이미 그곳에 익숙해진거에요. 우리가 듣기에는 끔찍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어느 골목으로만 안가면 된다, 어떤 일만 안하면 된다라는 나름의 노하우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Farmer의 시대는 가고 Hunter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느리게 변하는 조직 안에서 일지라도 당신 안의 Hunter적 재능을 그대로 묻히게 두지 마시길.
참, Sales 역할 안에서도 Hunter 타입과 Farmer 타입을 나눌 수가 있어요.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끌어오는 역할이냐 아니면 기존의 클라이언트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느냐가 가장 큰 분류 기준일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