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게 되자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해졌어
대학교때 진로결정을 할때, 내가 무던히도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많이 썼을 때, 자주 상담을 했던 언니가 있다. 우리 학회의 전설같은 E언니. E언니와의 상담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E언니의 상담은 문제가 뭐였든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끝난다. 예를 들면, 내가 "언니, 난 뭐하면 좋죠?" 라고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하면, E언니는 각종 질문과 예시들을 통해 항상 '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라는 결론으로 오게 된다.
E언니의 상담 방법은 많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우린 모두 그녀의 가르침을 받고 난 순간에는 해탈한 기분이 들다가 며칠후면 또 답 없는 멍충이로 돌아가 언니를 보기 민망한 기분이 들곤 했다. 언니는 우리에게 도인 혹은 소크라테스같은 존재였다.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언니가 얘기했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중 내가 깨달은 가장 큰 부분은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자주적이고 만족한 삶을 사는데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때도 언니가 "너가 정말 하고싶은 걸해." 라고 하면 나는 변명처럼 "언니, 근데 부모님이.. 언니, 근데 어떤 사람이 말하길 내가 이걸 잘한다고.." 등등의 핑계들 혹은 동문서답들을 늘어놨었다.
언니는 나에게 많은 책들을 주었는데, 언니가 준 모든 책들은 다 나와 싱가폴에 있다. 그 중 언니가 준 첫번째 책은 칼릴 지브란의 광인이라는 시집이다.
미치게 되자
오히려 자유롭고 평안해졌어.
고독에서 비롯되는 자유를 알게 되었고
또 이해받는 것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난거야.
책에 나온 이 문구가 너무 좋았다. 다만 광인이 '안전하게' 벗어난게 아니고 '완전하게' 벗어났었다면 더 완벽했을 것이다. 광인은 안전한 곳에 잠시 몸을 숨긴 것일 뿐 완전한 자유를 얻은건 아니니까.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해 혹은 인정을 받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가장 큰 고통의 이유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활동을 통해 외치고 있다. '나를 알아봐주세요, 나를 인정해주세요, 나를 좋아해주세요!' 만약 세상의 사람들이 아주 완전하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말한다면 저런 형태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존경을 받게 되면 삶의 위대한 목적은 이루어지고 끝나는걸까? 목마른 갈증을 바닷물로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인정은 다른 사람으로 부터 나올때가 아니고 내 스스로에게서 나올때 그때 부터 나의 삶을 살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서점에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법' 같은 책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언뜻 보기에는 다른 사람의 부러움과 호감을 사는 삶을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결국 행복과 만족으로 가는 길은 다른 사람의 부러움과 호감을 사려는 그 마음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번째 시인 지혜로운 임금에서 보이는 것처럼 모두가 미쳐있는 곳에서 혼자 제정신으로 나의 길을 가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이란 환경은 다수의 의견/집단의 관점이 워낙 강력하게 작용하는 문화라서 마이웨이를 가기 더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특히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부모님의 사랑, 선생님의 애정, 아이들의 부러움은 시험결과, 어떤 대학을 가느냐에 있었고, 그것이 사회를 나오면 그대로 돈, 어떤 회사를 가느냐로 바뀌니까, 즉 '다른 사람들의 선망을 얼마나 받느냐'가 나의 존재의 가치처럼 생각하도록 강요받는데에 익숙할테니까 말이다. 그런 곳에서는 그냥 다같이 미치는 편이 분명 올바르지는 않지만 안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내가 제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그러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는 마음이 분명 들테니까.
마지막 두개의 시는 기쁨과 슬픔에 관한것인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기쁨과 슬픔중 뭐가 더 좋고 나쁜것은 없다. 때로 슬픔에 중독된 사람들도 많이 보니까... 그리고 슬픔이 주는 평안은 분명있다. 그런데 기쁨과 슬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재밌다. 슬픔에게는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건네고 관심을 보이지만 기쁨에게는 무관심하다.
관심과 위로가 받고 싶은가? 슬퍼하라.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심과 애정을 받고싶어서 열심히 노력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더 나아지려고 하고... 그러나 그 길 끝에 내가 원하는 진짜 애정과 관심은 없을것이다.
특히나 대중의 사랑은 더욱더 그러하다. 대중들은 자기손으로 스타를 만들고 자기손으로 끌어내린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마이클 잭슨,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사람들은 스타를 만들었고, 그리고 스타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그 후 그들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다시 전설이 되고 깨지지 않는 사랑을 받는다. 그게 대중의 본성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특히 애정을 받고자 하는 욕심은 얼마나 허무한가?
이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모든 인간 관계에서 나타난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이든, 친구사이이든, 연인사이이든, 가족사이이든... 그리고 그것이 insecurity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래서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중 하나는 'being secured' 가 되어야 맞다. '더 나은 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정없이도 안정적인, 더 예뻐지지 않아도, 더 부러움을 받지 않아도, 그저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괜찮은...' 그것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나는 나의 최선이고 그자체로 완전하다.
아, 그렇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아직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열심히 하고 일을 잘해서 인정받으려고 방향을 잡았다면, 완전히 잘못 잡은 셈이다. 내가 원하는 그 관심과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조건없이' 줌으로써 나는 인정과 존경을 돌려받을 수 있다. '조건없이'가 중요한 이유는, 조건부로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 그 기대가 사라졌을때 무한 회의감으로 돌아와서 그동안 쌓아놨던 노력을 다 날려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걸 대학교때 알고 나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현자 E언니는 잘 지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