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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홍구 Mar 16. 2019

사회인 야구인에게 홈런을 친다는 건

눈으로 캡처를 뜨래도 뜨지 못했을 것 같다. 그만큼 찰나였다.

그 순간이 짧아서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배트를 떠난 공이 외야를 갈랐다. 잘 맞았다는 느낌은 없었다."


'homerun'이라고 구글에 치면 가장 먼저 뜨는 이미지. 'All rise' 사진은 지난해 내 판타지 팀원이었던 양키스의 애런 저지. 끝까지 닫힌 뒤쪽다리가 인상적이다


처음은 2009년 7월 5일이었다. 잊을 수 없는 날짜다. 사실 내 생일이니까.


상대는 무패를 달리던 리그 1위팀. 카렌스에 네댓명이 낑겨타고 경기장을 향하던 길.

그때는 차 있는 팀원이 몇 없어서 여러명이 낑겨가곤 했다.  그 차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사실 나는 좀 다른 생각이었다. 어떻게 내 생일을 큰 거 한 방으로 장식해야 할까란 생각 뿐이었으니까.


야구의 여신이 있다면 사회인 야구 1년차를 귀엽게 봐줬던 걸까.

낮은 공이 맛 좋게 들어왔고. 머릿 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것처럼 그 공을 받아넘겼다.

첫 홈런이었다.


"공을 향해 뛰던 좌익수와 중견수가 달리기를 멈췄다."


두번째 홈런은 2011년 4월 3일 이었다.

사실 이 날짜는 추억의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소환해

가까스로 찾았다. 역시나 두번째는 감흥이 덜했던 걸까.


첫 번째 홈런이 집념이 만들어냈다면

사실 두 번째 홈런은 자신감이 만들었다.


한창 야구에 자신감이 올랐을 때 였다.

직전 시즌엔 타율만 9할을 기록했다.

(물론 상대 수비수에게 감사를 전해야 하지만)


어떤 공이든 때려낸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어떤 투수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공은 중대부고 스탠드를 넘어 그 밖 테니스장에 폭하고 떨어졌고

나는 별 것 아니라는 표정(마음은 아니었고)으로 베이스 한 바퀴를 돌았다.


공이 하늘을 갈랐다. 어느새 사회인 야구도 영상을 촬영하는 시대가 됐다. 비디오 판독이 가능한 리그도 있다고 한다.



"꼴까닥. 공이 담장을 가까스로 넘어갔다. 1루 위에서 나는 폴짝(아마도)하고 뛰었다."


세번째 홈런은 예상치 못하게 불쑥 나를 찾아왔다.


실은 극심한 타격 슬럼프 중이었다. 옆구리 살림은 자꾸 늘어났고. 그만큼 허리 회전은 늦어졌다.

호쾌한 스윙은 커녕 그저 공에 배트를 갖다대기 급급했다. 마음은 더 급해졌고. 정확히 그만큼 몸은 더 나갔다. 어깨는 더 빨리 열렸고 그만큼 자신감은 더 닫혔다.


변화가 변화를 만들어낸 듯 했다.

아무래도 이달 들어 시작한 레슨 덕을 턱턱히 본 듯 했다. '그래 배우면 느는 거였어'


정작 기뻤던 건

이런 즐거움이 때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모처럼 느껴서가 아니었을까.


돌아보는 일이 늘어나고. 무언가 마음은 쫓기는 나날들.


경기, 일상 혹은 인연. 그 무엇이 되건간에 언젠가 또 우연한 홈런을 기다리며

오늘도 거침없이 연습 스윙을 돌린다.

땅볼, 뜬공 혹은 또 다른 무언가가 됐건 간에.


타자의 삶이란 배트에 공이 맞고서야 비로소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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