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에 관하여>
아, 그러니까 이건 지난해 여름 미국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센트럴파크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겠다는 일념 하에 다시 찾은 뉴욕. 보란 듯 나는 매일 아침 그곳에서 (평소엔 하지도 않는) 조깅을 했다. 마치 내가 뉴욕의 일부라도 된 마냥 때론 세수도 하지 않고 선글라스 하나만 뒤집어쓴 채 공원으로 나서기도 했다.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내 차림이 센트럴파크에서 아침에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관광객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거였던 건 아니고. 그렇게 낯선 조깅을 하길 며칠째. 어느 정도 공원 지리가 눈에 있었다고 느꼈을 무렵 내 눈에 회전목마가 들어왔다. 공원 한 복판에 설치된 회전목마는 나를 유혹하듯 넘실넘실 춤을 췄다. 여행이 주는 묘한 해방감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 회전목마에 욕심이 났다. 이곳이 서울랜드, 롯데월드였더라면 감히 품지도 않았을 그런 마음. 혹시나 싶어 챙겨 온 주머니 속 10달러를 내밀고 나는 회전목마에 올랐다.
회전목마가 넘실넘실 달렸고 나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어릴 적 회전목마를 탔을 때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나는 일탈을 누렸다. 세계 최고의 도심 한복판에서의 일탈이라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동영상은 물론 셀카도 찍었다. 아마 흘러나오는 노래도 따라 불렀으리라. 그렇게 난 두 차례 회전목마에 올랐다.
남은 4달러 중 3달러를 내고 세 번째 목마에 오르려던 순간, 뒤통수 너머로 한국어가 들려왔다. 좀 전까지 웃통이라도 벗고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던 해방감은 사라지고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 인간이 됐다. 혹여나 그들이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는 않을까 얼굴이 빨개졌다. 나폴레옹이라도 된 듯 말의 등을 잡고 곡예를 부리던 나는 목마 위 기둥을 다소곳이 잡고, 그렇게 다소곳이 오르락내리락하다 그대로 사라졌다. 평생 다시 볼 일 없는 그 한국인을 보고 내가 잔뜩 움츠러든 건 왜였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규정하는 변수는 무엇일까. 퇴근 시간 19분 전. 광화문 역 인파를 헤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머리가 아뜩해진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나의 간격은 어떤 줄로 연결돼 있는 걸까. 맨해튼을 주 무대로 삼는 스파이더맨이 광화문 빌딩 어딘가에서 나를 정조준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