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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방 Jan 08. 2018

[라면의 新역사] 다시 쓰는, 일본 라멘

일본 하면 라멘이다. 지역별로 종류도 많고, 라멘 가게도 흔하다. 도쿄에 가면 블루라멘과 레몬라멘도 맛볼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아명을 딴 기포시吉法師라는 라멘집은 블루라멘을 낸다. 색소를 푼 듯한 파란 국물로 충격을 안긴다. 보기와는 달리, 흔히 접하는 닭 육수 맛에 충실하다.


라멘 기포시의 블루라멘   ⓒ tabelog.com


도쿄 동북부의 오시마역 근처에 있는 린스주 쇼쿠도りんすず 食堂는 레몬라멘을 낸다. 신맛이 절묘하게 작용해 인기가 많다. 보통은 돈가스처럼 썰어 낸 닭튀김을 함께 주문해서 같이 즐긴다.

   

린스주 쇼쿠도의 레몬라멘  ⓒ tabelog.com


"라면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생각이 들 법도 지만, 우리가 아는 일본의 라멘들은 이런 실험과 도전정신으로 변화를 추구하면서 지역색을 띤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린스주 쇼쿠도의 레몬라멘이 아후리
Afuri의 유자라멘처럼 유명해져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라면의 기억


라면은 궁핍했던 한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맛은 기억이지만, 그 기억은 시대상을 담고 있다.


삼양라면는 언제나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일본의 묘조식품明星食品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1963년에 출시됐다. 묘조식품은 훗날 닛신식품에 흡수된다.


삼양라면의 변천사. 세대별로 포장지와 맛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다르다. 초기에는 소고기 대신 닭 육수로 맛을 냈다.


정작 일본에서 라멘은 중국 음식으로 통한다. 메이지1868~1912 중기에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길거리 음식인 난징소바에서 출발했다. 
라멘이라는 명칭만 해도 '손으로 면발을 늘려 가늘게 뽑는 국수'인 납면拉麵에서 왔다. 그 역사를 짚어보면, 일본에서 라면이 뜨기 시작한 시기는 2차대전 이후의 일이다.

하야미즈 겐로速水健朗의 책 <라멘의 사회생활>을 보면 아주 재미난 대목이 나온다. 전후에 미국의 잉여 농산물 원조로 들여오기 시작한 밀가루를 소비할 방법을 찾다, 라면이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과 한국, 대만이 공유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배급으로 나온 밀가루 포대를 머리에 인 광부 가족, 1964년
한국의 혼분식장려운동(1967~1976년)은 밀가루 소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인스턴트 라면의 아이디어는 일본인이 아닌, 대만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 1958년에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닛신식품
日清食品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회장은 일제 치하의 대만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한 인물. 


그는 오사카 암시장에서 국수를 먹으러 긴 줄이 늘어선 걸 보고, 더 빠르고 간편하게 국수를 먹을 방법을 연구한 끝에 인스턴트 치킨라멘을 개발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치킨라멘
컵라면을 개발할 당시의 안도 모모후쿠 회장  ⓒ nissin.com


일본 라멘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삼사백 년간 대를 이어온 교토나 도쿄의 노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라멘집인 도쿄 아사쿠사의 라이라이겐來來軒은 백 년을 조금 넘겼다. 이름부터가 중국풍이다.
 

라멘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건 일본이 확실하지만, 우리가 흔히 오해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라멘이 "지역의 기후, 풍토, 지혜와 섞여 그 지역에 뿌리내렸다"는 설명이다. 
하야미즈 겐로는 일본 라멘의 이런 정체성을 두고 '날조된 역사'라고 비판한다. 포장지를 여러 겹 덧씌운 셈이다. 



각 지역의 라멘은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풍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융화되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이상한 메뉴를 내놓은 라멘집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그 가게가 미디어 등을 통해 알려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지역의 관광화와 함께 주변 가게들이 따라하면서 같은 메뉴를 내놓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각 지역의 라멘이 탄생한 경위다. 

- <라멘의 사회생활> p.172


삿포로의 미소라멘이 대표적이다. 삿포로에서 처음부터 육수에 된장을 넣은 라멘을 선보인 게 아니라, 1961년에 한 라멘집에서 미소라멘을 내놓고 나서 유명세를 타자 "삿포로=미소라멘"이라는 등식이 생겨난 것이다. 


삿포로에 있는, 아지노 산페이의 미소라멘  ⓒ tabelog.com


스스키노의 라멘 골목에서 미소라멘을 내기 시작했고, 삿포로 여행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으로 조명되면서 그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라멘만큼 삿포로 눈축제와 잘 어울리는 음식은 드물 테니까.




교토의 네기라멘, 도쿄의 토마토라멘


"라면은 이래야 한다"는 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교토의 화끈한 불라멘도, 도쿄의 상큼한 토마토라멘도 라멘이다.


불쇼로 다시 태어난 네기라멘, 멘바카이치다이


교토의 멘바카이치다이めん馬鹿一代는 뜨거운 기름을 부어 순식간에 태우듯 익힌 네기라멘으로 승부한다. 
종이로 된 앞치마를 하고 카운터 석에 앉아 뒷짐을 지고 있으면, 박명수 울고 갈 "퐈이아~"한 불쇼가 시작된다. 
  

불길이 천장으로 치솟는 화려한 이벤트로 주목받는 곳이다.   ⓒ tabelog.com


'라멘에 미친 한 세대'라는 가게 이름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라멘 조리 경력만 40년인 미야지와 씨가 "어떻게 하면 네기라멘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를 연구하다 내놓은 결과물이 불라멘Fire Ramen이다.

열정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불맛을 입힌 파의 단맛을 더해 그만의 네기라멘을 완성했다. 바람이 가게 안으로 들이쳐 팔등의 털이 그슬린 것 말고는 화재 사고가 없었다 하니, 믿고 찾아도 되는 집이다.


이탈리안 셰프의 미슐랭라멘, 듀에 이탈리안
디저트 느낌으로 상큼하게 즐기는 냉 토마토 컬렉션   ⓒ tabelog.com


여섯 종류의 토마토가 들어간 냉 토마토 컬렉션이다. 단맛이 도는 토마토 국물에 쫄깃한 면이 잘 어우러진다. 안에 보면 딸기도 숨어 있다. 

도쿄의 듀에 이탈리안Due Italian은 2015년부터 미슐랭가이드 빕구르망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린 집이다. 별을 못 달았을 뿐, 가성비 맛집으로 통하는 곳이다.
이탈리안 셰프가 개발한 이색 라멘을 낸다는 걸 빼고는 여느 라멘집과 같다. 자판기로 티켓을 뽑아 주문하는 시스템이다. 

사실 이 집의 간판 메뉴는 토마토라멘이 아니라, 햄 프로마쥬 라멘이다.


사진은 프로마쥬 라멘이다. 햄 프로마쥬는 그릇 가장자리에 생햄을 걸쳐서 낸다.  ⓒ tabelog.com


소금으로 간을 한 맑은 닭 육수에 크림치즈를 뭉텅 올려서 낸다. 면을 다 먹고 나서 국물에 밥을 마는데, 이게 딱 리소토 맛이 난다. 

"이게 라면이야?" 할지 몰라도, "이게 라면"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어 보일 뿐, 두 가게 모두 맛으로 인정을 받는 집이다. 




라멘은 요리다


국물 한 모금에 마음을 열고, 어느새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라면의 힘이다.

일본은 어느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자신들만의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들만의 정교한 매뉴얼이 있다.
면의 굵기와 질감, 육수의 종류와 배합 비율, 소스와 토핑, 조리 방법과 시간 등을 깊이 연구해서 특색 있는 라면을 만들어낸다. 일본 라
멘의 명성은 이 토대 위에 세워졌다.


ⓒ 쿠베 로쿠로 <라면 요리왕>


공예 장인이나 승려의 작업복인 사무에作務衣를 입고 한 그릇의 라멘을 탁, 하고 말아 내는 절도 있는 동작에 어떤 기운이 깃들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스턴트 라면이 주류인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그렇다고 양은냄비에 꼬들하게 끓여낸 라면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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