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가 뜨겁다 못해 바삭해지는 느낌.
“어디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지?”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스페인 세비야의 태양이
정수리부터 눌러오던 오후였거든요.
결국 5분 만에 항복하고 말았어요.
백기를 든 채 주변을 둘러보다
신호등 옆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딱 파라솔만 한 그늘. 그 안으로 쏙 들어갔더니,
누군가 “살려는 드릴게”라며 선풍기를 틀어준 느낌이랄까, 정말 살겠더라고요.
그제야 그늘 속 풍경을 알아챘어요.
땀에 젖은 저 같은 여행자, 뽀송한 현지 할머니, 포마드로 반듯하게 머리를 넘긴 아랍인.
그 옆으로 닥스훈트, 테리어, 덩치 큰 울프독과 꾸꾸거리며 다가오는 머리털 빠진 비둘기까지.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이 나무, 진짜 차별 없네.” 싶어졌어요. 나무 아래로 누구에게나 그늘을 내어주니까요. 여권, 피부색, 종 같은 건 묻고 따질 것도 없이.
“너는 강아지니까 안 돼”,
“비둘기는 더럽잖아” 같은 말은커녕,
조용히 쉴 자리를 내어주는 오렌지 나무.
(스페인은 오렌지 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고 해요)
그런 낯선 땅의 나무 아래 모습이 왠지 다정했어요.
몸은 시원한데 마음은 따뜻한 느낌?
이 나라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에
계속 경계 모드였던 게
좀 머쓱해지더라고요.
그 상태로 멍하니 그늘 밖을 응시하다, 엉뚱한 상상이 시작됐어요.
“이 나무가 나처럼 편견쟁이였다면 어땠으려나..”
“현지인 우선입니다. 외국인은 기다려주세요.”
“강아지는 견종별로 줄을 서세요. 믹스는 맨 뒤로!”
“그늘 사용료는 시간당 5유로입니다. 현금만 가능.”
나무가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요.
하지만 스페인의 현자, 오렌지 나무는 말없이 중요한 걸 가르쳐줬어요. '판단하지 말고 먼저 손을 내밀어 보시라' 하고요. 골목길에서 낯선 여행자에게 “¡Hola!” 인사를 건네는 이곳 사람들처럼요.
그늘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널 땐, 다른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경계가 아닌 호기심으로, 내가 먼저 “¡Hola!” 외치며 스페인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