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미치겠다.”
평화롭던 그날 밤.
동생에게 전화가 왔어요.
상기된 목소리였죠.
“나보고 대체 어쩌라는 건지! 죽겠다. 정말.”
그 말에, 반사적으로 대꾸했어요. 파블로프의 개처럼.
“김소장이 또 갈궜어? 그러니까 내가 뭐라 그러디.
그만두라니까. 직장에서 버텨봐야 소용없어요~”
…(적막)
그 순간, 동생이 말이 없어졌어요.
사실 저는, 십 년 전에 회사를 관뒀거든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사업해 볼까?’ 싶어서 훌쩍.
그래서였을까요.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생이 왜 그리 답답하게 느껴지던지.
‘그냥 나처럼 살면 될 텐데’ 싶었던 거죠.
어느 날은 동생이 조용히 말했어요.
“형은 직장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뜨끈해졌어요.
동생을 존중하는 좋은 형이라 자부했거든요.
그런데 은근히 무시하고 있던 거예요.
그런 내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날 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물에 빠진 아이가 살려 달라 외치는데,
지나가던 선비는 호통을 쳤다는 거예요.
“왜 조심하지 않고 빠져 있는 게냐!”
그러자 아이가 숨을 꼴딱이며 말해요.
“일단 구해 주시고 나서 혼내세요…”
그 이야기가 제 얘기처럼 들렸어요.
호통치는 선비가 꼭 저 같았거든요.
상대는 지금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데,
나는 왜 그러고 있냐고 혀나 차고 있는 거예요.
그날 이후로 다시 결심했어요.
뻔한 사람 말고, 편한 사람이 되자.
듣는 척 말고, 진짜 들어보자.
누가 힘들다고 하면 일단 듣기.
호기심을 갖고 끝까지 듣기.
그리고 한마디만 붙이기.
“그럴 수 있겠다.”
그렇게 하면
압력밥솥에 김 빠지듯,
부글부글 끓던 상대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것 같더라고요.
마음의 뚜껑이 살짝 열리는 느낌?
물에 빠진 사람에겐 ‘내가 뭐랬니!’가 아니라,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걸
기억하려 애써요.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른 게 문제지만요.
여전히 “그러니까, 내가 말했지.”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다 입술을 움찔하게 만들거든요.
그럴 땐 숨을 한 번 고르거나 딴생각을 해요.
‘오늘은 냉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같은.
동생 덕분에 나를 다시 돌아봤지만
동생을 위해서는 아니에요.
사실 나 자신을 위한 거죠.
누군가 내게 마음을 터놓을 때,
내 존재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거든요.
얼마 전,
동생이 새 차를 뽑은 기념으로 같이 세차를 했어요.
와, 차를 닦는데 3시간을 쓰더라고요.
기계세차만 해본 저에겐 세차는 5분 컷인데
놀라웠어요.
그래도 아무 말 않고
같이 쓸고 닦고, 광도 냈어요.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고마웠는지 그러더라고요.
“예전엔 나랑 다른 길을 가는 형이 이해 안 됐는데, 이젠 안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싶어. 그래서 편해.”
저는 대답대신 조용히 창문을 내렸어요.
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들면서
“아, 시원하다~”
동시에 말해버렸죠.
어색해서 창 밖을 바라봤어요.
그곳엔 어느새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