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반려, 여유 승인

감정에도 결재가 필요해요.

by 행부

줄은 길고, 마트는 조용했어요.

계산대 앞엔 두 사람이 있었죠.


한 사람은 시계를 보고, 발을 동동 구르더니

앞사람 뒤통수를 뚫어져라 바라봤어요.

서있는 것조차 짜증 난다는 태도.

세상이 나만 억지로 괴롭힌다는 표정으로요.


뒤에 선 사람은 조용했어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죠.


같은 상황, 다른 반응.

생각했어요. 나도 한때는 그랬는데.


저도 예전엔 첫 번째 사람이었거든요.

빨간불에 걸리면 신호를 탓하고,

지하철이 늦으면 세상을 원망했어요.

비라도 오면 하늘에게 짜증을 냈고요.


지금 생각하면 웃겨요.

내가 무슨 세상의 왕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 봐요.


그러다 조금씩 알게 됐어요.

상황은 내게 아무 감정 없다는 걸요.

내가 미워서 빨간불이 켜지는 게 아니고,

내 하루를 망치려고 비 내리는 게 아니란 걸.

세상은 그저 세상이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걸요.


문제는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였어요.


친구 중 하나는 교통체증에 걸리면 이렇게 말해요.

“오늘 좀 천천히 가라는 건가 봐.”

다른 친구는 핸들을 치며 말하죠.

“이 도로 진짜 왜 이래!”


상황은 같은데 마음은 달라요.

누가 마음의 운전대를 쥐고 있느냐의 차이예요.


그래서 마음의 운전대를 직접 잡겠다 다짐해 봐요.

오랫동안 상황이 저의 대리기사였거든요.

좋은 일이 생기면 기분 좋고,

나쁜 일이 생기면 기분 나빠지는 식으로요.

상황이 데리고 다니는 대로 끌려다녔던 거죠.


이젠 알아요. 선택권은 내게 있다는 걸.


매일 아침,

“아, 또 하루 시작이네…“하며

한숨 쉴 수도 있고,

“오늘도 나이스하게~”하며

활짝 웃을 수도 있어요.


똑같은 하루를 완전히 다르게 시작할 수 있는 거죠.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이미 하루가 결정되는 셈이에요.


물론 모든 걸 선택할 순 없어요.

돈은 벌어야 하고,

세금도 내야 하고,

나이는 들어가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내가 정할 수 있어요.


머리를 빗다가

까꿍! 하고 튀어나온 흰머리를 보고

“아, 이제 늙었네” 푸념할 수도 있지만,

“이제 좀 어른 같네” 쓱쓱 쓸어 넘길 수도 있어요.


나이 드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우울해지는 건 막을 수 있죠.

(이게 진짜 저속노화 아니겠어요?)


진짜 자유는

모든 상황을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고를 수 있는 힘 아닐까요?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제멋대로인 마음을 만족시킬 순 없으니까요.


마음을 바꾸는 힘.

이게 진짜 자유죠.


내 마음의 오우너가 되는 것.

내 결재를 받아야 “진행시켜!” 하는

마음의 시스템 구축하기.


오늘도 제 마음에 결재 서류가 올라와요.

‘짜증’이라는 문서가 올라오면,

잠깐 들여다보다 고개를 저어요.

“반려. ‘여유’로 대체 바랍니다.”


‘분노’ 안건이 올라오면,

“비효율입니다. ‘웃자’로 수정 부탁드려요.”

승인 도장 대신, 미소를 하나 찍어 보내죠.


여전히 결재 없이 진행되는 감정, 사건이 많아요.

긴급이라고 그냥 넘어가버리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요.

하루에 하나라도 더 붙잡아요.

결재 올릴 순간을.


내 마음의 진정한 오우너로 살기 위해.

오늘도, 나이스한 하루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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