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만난 TJ는 좀 이상했어요.
어딘가 현실에서 한 끗 어긋난 느낌?
세 살 많은 형인데, 이상하게
제가 좀 챙겨줘야 할 것 같았거든요.
비가 온다. 우산을 안 챙겼다.
그럼 그냥 맞고 다닐 것 같은 스타일.
그런데 그게 또 어울리는 사람이었요.
젖으면 좀 어때, 남이 보면 좀 어때하는 사람.
귀국 한 달 전쯤, 둘이 맥주를 마시다
뻔한 얘기가 나왔어요.
“한국 가면 뭐 할 거야?”
저는 현실적으로 대답했죠.
취업 준비하고, 뭐 그러겠지.
형은 맥주잔을 내려놓더니 말했어요.
“대통령.”
“… 뭐라고?”
“나 대통령 될 거야.”
이건 진심모드였어요.
9살 아니고, 29살이거든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접시를 닦으며.
그 후로도 몇 번 물어봤어요.
“그래서 형, 요즘은 뭐 되고 싶어?”
“대통령.”
그땐 생각했죠.
꿈에도 고장 난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이 형은 그걸 켜고 달리는 중일 거라고.
근데 나중엔 그게 TJ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남들처럼 ‘현실적이고 쓸모 있는 꿈’ 대신
‘그냥 자기가 되고 싶은 꿈’을 말하는 사람.
그게 얼마나 드문지,
사회에 나와서야 실감했죠.
그게 어느덧 십몇 년 전이에요.
사람 하나를 기억 속에 묻기엔 충분한 시간.
갑자기 TJ한테 전화가 왔어요.
번호가 뜨는 순간, 자동으로 떠올랐죠.
‘드디어 대권 도전인가..?’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어요.
“형, 출마해?”
형은 시원하게 웃더니,
“아니야 인마. 베트남에서 사업 한번 해볼까 해서.
태상이 형이 네가 수출해 본 적 있다고 하던데?
시간 되면, 나 일하는 곳으로 한 번 와.”
며칠 뒤 TJ에게 갔어요.
남대문 시장이었죠.
수입과자 판매점들 사이,
정겨운 견과류 가게 하나.
형은 진짜 거기 있었어요.
땅콩 같은 걸 봉지에 담고 있었고요.
딱히 대통령 같진 않았지만 뭐랄까,
국무총리 느낌은 났어요.
아니면 적어도, 견과류 부 장관?
가게는 작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고,
브라질넛 진열장 옆에는
형이 직접 만든 가격표가 붙어 있었어요.
글씨가 삐뚤빼뚤한 게
왠지 TJ 스러웠죠.
“이거, 장모님 가게였는데 내가 이어받았어.
여긴 와이프한테 맡기고 나는 베트남 간다.”
그 말을 듣는데 웃음이 나더라고요.
대통령이 되겠다던 형이
지금은 ’이 견과류, 해외 진출 가능할까?’를 고민하고 있으니.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대통령이 되진 않았지만,
작고 맛있는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으니까요.
사장으로서, 가장으로서요.
그날 형이 강추한 브라질 넛은
처음 먹어봤지만 정말 맛있었어요.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맛.
깊은 맛. TJ 같은 맛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