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5 - pt.1: 렌터카 여행의 추억
2025년 5월, 자동차 종합검사를 마치고 볕이 좋은 하루를 그저 집에서만 보내기엔 아쉬워 무작정 카페를 검색한다. 내가 사는 곳은 남한산성 주변이라 산성 가까이로 가면 나들이 행락객들을 위한 카페가 즐비했지만, 그곳은 나중에 데이트할 때 가기로 하고 독서나 글쓰기에 적합한 곳을 찾다 보니 결국엔 또 별다방이다. 일단 검사소에서 나와 고속도로 방향으로 차를 움직이며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려는 순간, 룸미러를 통해 붉은색 푸른색을 늠름하게 뽐내는 경찰차를 발견했고 이내 내비 조작을 멈춘다. 룸미러에 비쳐 보이는 경찰을 볼 때면 떠오르는 여행의 순간이 몇 가지 있는데, 오늘은 에스콘디도Escondido에서의 그날이 떠올랐다.
여행이 한 달을 조금 넘긴 시점, 캘리포니아 에스콘디도는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고 사이에서 조금은 샌디에고에 가깝게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스톤 브루잉Stone Brewing Co.이라는 양조장 방문을 위해 찾았는데, 아마 그 순간은 양조장 투어를 마친 뒤였을 것이다. 구글지도로 마을에서 가장 저렴한 주요소를 찾아 현금으로 주유를 하고, 영어 발음이 어색한 주유소 사장님이 한국인인 것을 눈치챈 덕에 가벼운 한국어 스몰토크도 하고, 기분 좋게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던 참이었다.
사거리에서 좌측 깜빡이를 켜고 깜빡이는 비트에 맞춰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내 바로 뒤로 어두운 무언가가 가까이 다가온 것을 감지했다. 룸미러를 살펴보니 검은색(실상 블루블랙이 맞지만) 상하의 착장에 거대한 검은색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그는 늠름한 캘리포니아 경찰이었다. 며칠 전 과속으로 경찰에게 한 번 혼쭐이 나본 적이 있는 나는 트라우마인지 순간 잔뜩 쫄았지만,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으면 잡힐 일 없기에 조금은 당당해지기로 마음을 먹고 신호를 기다렸다.
이윽고 녹색 좌회전 신호가 켜졌고, 내 앞에 있던 세단이 먼저 좌회전을 하고 그를 따라 나 역시 좌회전, 내 뒤에 있던 오토바이를 탄 경찰도 좌회전을 했다. 그리고는 아주 잠깐의 직진 중 울려버린 싸이렌 소리…
뭐냐, 나 또 뭐 잘못했냐?
아님 미드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American Crime Story’에서처럼 유색인종이라고 뭐든 꼬투리를 잡아 날 혼내주려는 거냐.. 온갖 걱정에 휩싸인 1초 내지 2초의 시간이 흐른 뒤 오토바이는 내가 아닌 내 앞 세단으로 다가가 차를 세우게 했다. 휴… 일단 나는 아니라 다행인데, 저 세단도 크게 잘못한 게 없어 보이는데? 그 세단 운전석에는 나이 지긋하신 백인 아저씨가 타고 계셨고, 지나며 슬쩍 들린 말소리로 유추해 본 결과, 좌회전하기 전 깜빡이를 켜지 않으셨던 것 같았다. 어이쿠! 정말 우리나라에선 별것도 아닌 일로 여기선 혼쭐이 나는구나. 아주 잠깐이었지만 세단 속 운전자 아저씨가 많이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난 당신을 구원해 줄 능력이 없어요, 미안..
이런저런 사소한 순간들이지만 그 기억들이 하나둘 쌓여 지금의 내가 운전하는 중 좋지 않은 습관들이 자연스레 고쳐진 느낌이 든다. 운전 중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에도 조금은 관대해지기도 했고, 어느 순간 운전 중 내뱉는 욕설은 결국 나 밖에 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입버릇이라는 걸 깨닫게 되어 욕을 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아쉽게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드넓은 미국에서처럼 운전할 수 없는 수도권에서의 운전임에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항상 내 뒤에 미국 경찰아저씨가 따라다닌다는 생각으로 안전과 질서를 생각하며 운전하는 자세를 길들여야겠지. 이렇게 한 번씩 떠오르는 여행의 순간들을 추억하는 재미가 있어 참 다행인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