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새해 첫 날

by hangChiC 항식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병오년의 새해 첫 날, 설날이다. 이는 즉슨 내 나이가 더는 빼도박도 못하는 마흔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썩 기쁜 날은 아니다.


여느 설날과 같이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과 친할머니가 부엌과 거실에서 분주하셨다. 여느 설날과 같이 나는 늦잠을 잤다, 마흔 살의 설날에도 난 늦잠을 잤다. 예년 같았으면 아부지가 직접 내 방 문을 열어재끼며 일어나라고 잔소리 하실 때까지 잠에서 깨지 못했을 터, 올해는 왜인지 모르게 나를 깨우시기 전에 미리 잠에서 깼다. 아무래도 이전날 잠을 충분히 많이 잤던 것이 영향을 줬을테지. 예전처럼 연휴라고 아주 늦은 밤까지 잠들지 않았던 버릇을 접은 덕도 있을 것이다.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차려진 차례상 앞에 아부지와 나란히 선다. 아부지 말씀 따라 절도 두 번 하고(콩이는 절을 올리는 나와 아부지 사이를 헤매이기도 한다), 국그릇을 물그릇으로 바꿔 올리고, 또 절을 두 번 올리고. 누구를 위한 차례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또 그렇게 명절 차례를 마쳤고, 이내 식사준비를 거든다.


이번 설 아침식사에선 돼지 수육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주에서 올라온 돼지 앞다리살을 아부지가 아침부터 통째로 삶아 따끈따끈했던 수육 고기는, 눈으로 보기에도 맛으로 보기에도 훌륭하여 우리 가족 모두가 만족스럽게 식사할 수 있었다. 나는 고기를 남기지 않고자 반찬이고 떡국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그김에 떡국을 안 먹으니 나이 먹는 걸 보류할 수 있나, 싶었지만 떡국 그릇을 비우시려던 엄마는 떡 한 조각만 남겨 다시 내 앞으로 놓으신다. 이내 떡 한 조각을 먹은 나는, 그렇게 마흔 살이 되고야 만다.


여느 설날과 같았다. 할머니는 세배를 받지 않고 댁으로 돌아가셨고, 그런 할머니를 모시고 아부지가 함께 움직이셨다. 집에 남은 엄마는 남은 음식을 정리하기 바쁘셨고, 나와 콩이는 놀고 먹기에만 시간을 쓸 뿐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뒤 나는 낮잠에 빠졌고, 꿈에서는 신나게 미국의 브루펍을 여행하고 있었다.


꿀맛 같은 꿈에서 겨우 깨어난 나는 저녁 약속을 위해 정신을 차렸고, 옷을 갈아입고 아주 오랜만에 망원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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