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를 만나다

by 한빛

정화조 차를 타고 먼 곳으로 출장을 다녀올 때였다. 오전에 정화조에 똥을 잔뜩 싣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을 넘어서인지 배가 고팠다. 나는 늦더라도 집에 가서 밥을 먹자고 했지만 동료는 휴게소에서 먹고 가자고 했다. 그는 천천히 속도를 줄여서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휴게소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들어와 있었다. 주차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 주차장에 한 자리가 보였다. 그곳에 간신히 주차를 했다. 하지만, 내리려고 문을 열려고 할 때, 등산복을 입는 50대 중년의 아저씨가 걸어왔다.


“아니, 눈을 어디에다 두고 다니는 거야! 여기 주차장 바닥에 ‘버스’라고 쓰여 있잖아. 왜 이곳에 더러운 똥차를 대는 거야, 하필이면 우리 버스 옆에다. 밥맛 없게 말이야”

“여기가 아저씨 집 주차장이에요, 우리도 밥 먹으러 여기 왔어요!”


화가 난 동료를 붙잡고 나는 휴게소 식당으로 향했다.


“이런 꼴 보기 싫어서 집에 가서 밥 먹자고 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하잖아요. 어휴!”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계속 뒤로 쳐다보려 하자 나는 손에 힘을 주며 그를 앞으로 밀고 갔다.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야 그는 진정이 되었다. 빈자리에 마주 앉았다.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그는 말했다.


음식을 시켜 놓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건너편엔 조금 전 싸웠던 버스 승객도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겉으론 괜찮은 척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버스 승객 중에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무슨 더 할 말이 있어서일까?’ 나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조금 전에 저희가 죄송했어요. 저 양반 성격이 불 같아서 이해해 주세요.”


아주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과일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머리꼭지를 따낸 빨간 딸기였다. 그분의 사과로 긴장되었던 근육이 풀어졌다. 음식이 나왔다. 동료가 말했다.


“처음엔 저분들 얼굴에 똥이라도 뿌려 주고 싶었는데, 참길 잘한 것 같네요.”

“그래요, 자기 똥 냄새는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 똥 냄새는 싫어하잖아요.”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주변은 온통 깜깜했다. 고속도로 위에는 가로등 불빛만 외롭게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빠르게 지나갔다. 산길로 이어진 고속도로에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 때마다 차가 흔들렸다. 동료는 핸들을 꼭 붙잡았다.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저편에서 희미한 빛이 깜박거렸다. 서치라이트를 켜고 불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나는 숨을 멈추고 말았다.


“앞에 차가…!”


승용차가 고속도로 위에 뒤집어진 채로 깜빡이를 켜고 있었다. 순간, 동료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핸들을 갓길이 있는 우측으로 돌렸다. 차가 심하게 휘청거렸다. 거의 뒤집힐 뻔했지만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우리는 사고 난 차량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동료는 갓길에 차를 세웠고,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119를 눌렀다. 나는 뒤로 돌아보며 뒤집어진 차를 보았다. 누군가 운전석 창문을 통해 빠져나오려고 했다. 안전벨트를 풀고, 나는 차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해요, 차 안에 있어야 해요!”


동료가 말했지만, 앞에 오는 차를 세우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 같았다. 나는 사고 차량으로 뛰어갔다. 겨울이었고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몸이 자꾸만 움츠려 들었다. 가로등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창을 열었다. 작은 불빛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핸드폰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겨울바람이 어찌나 센지 손과 코 끝이 시리고 아팠다.


아직까지 마주 오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돌려 뒤집어진 차를 보았다. 하얀색 소나타 승용차였다. 중앙 분리대에 심하게 긁힌 흔적이 선명히 보였다. 도로 위에는 깨진 유리창이 흩어져 있었고, 차 속에서 튕겨 나온 물품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도로 위를 돌아다녔다. 아마도 졸음운전을 했거나 강풍에 중심을 못 잡고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것 같았다.


동료도 차에 내려서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사고 운전사는 정신을 잃는 상태였다. 우리는 운전사를 함께 끌어당겼다. 둘 다 제정신 아니었다. 마치 슈퍼맨과 아이언맨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잠시 뒤 도로 위에 불빛이 그림자를 길쭉하게 만들었다. 나는 동료에게 그를 맡기고 앞으로 뛰어갔다. 마주 오는 불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두 팔을 흔들었다.


멀리서 브레이크 밟은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검은색 승용차였다. 불빛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눈이 부셨다. 차에서 서치라이트가 몇 차례 켜지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뒤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동료는 다친 운전사를 갓길로 옮겨 냈다.


검은색 승용차 운전자가 창문을 열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죽으려고 작정했어! 도로 한가운데서 서 있으면 어떻게 해. 미친 건 아냐”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고속도로 한가운데까지 들어가 있었다. 그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차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는 다시 소리쳤다.


“앞에 쓰레기를 치워야 내가 지나갈 거 아냐!”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나의 기대는 더러운 쓰레기가 되었다. 검은색 승용차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물품을 이리저리 피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기분 나빠할 여유조차 없었다. 바로 이어서 또 다른 불빛이 다가왔다. 이번 서치라이트 불빛은 더 크고 강렬했다.


나는 다시 핸드폰 불빛을 흔들었다. 하지만, 불빛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조금 전 흔들었던 팔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이 움츠려 들었다. 춥기도 했지만 두려웠다. 더 이상 도로 가운데로 나가지 못하고 갓길에서 손만 높이 든 채 몸이 얼어버렸다. 브레이크 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대형 버스였다. 버스 불빛은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이번에도 버스는 간신히 멈춰 섰다. 조금 전 운전자처럼 욕이 쏟아질 것 같았다.


“괜찮아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버스 기사는 차에 비상등을 켜고 내려서 뒤쪽에 삼각 안전판을 세웠다. 버스에서 승객들도 하나둘씩 내렸다. 낯익은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젊은 양반이 우리 목숨을 구했네. 여보, 휴게소에서 당신이 큰소리쳤던 그분들이에요.”


나에게 욕설을 했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동안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해서인지 더 이상 그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침묵도 잠시 또다시 불빛이 보이자 우리는 함께 뛰어갔다. 모두 슈퍼히어로로 변신한 것처럼 뒤에 오는 차량을 함께 세웠다. 마치 어벤저스의 슈퍼히어로가 모두 힘을 합해 지구를 지키는 것처럼 말이다.


119 차량이 도착했을 때쯤 나는 동료에게 걸어갔다. 우리는 포옹하면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긴장이 풀려서 인지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느낌보다 살아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손과 발이 춥다는 느낌이 이렇게 감사하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경찰이 도착해서 사고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는 버스 승객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정화조 차에 올라탔다. 동료가 말했다.


“조금 전에 차를 세울 때 무섭지 않았어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달려갔던 것 같아요. 처음엔 도로 가운데에 서서 겁도 없이 세웠어요. 하지만, 큰 버스를 세울 때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여럿이 함께 차를 세울 때는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슈퍼히어로 하나쯤은 숨겨 놓고 사는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순간에 모든 것과 연결된 것 같았다. 뒤집어진 차량 속에 운전자, 나와 동료, 그리고 버스 운전기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슈퍼히어로가 마지막 생명까지 끈질기게 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어느 누구라도 그 끈을 놓았더라면 끔찍한 사고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우주 속의 작은 미생물이며, 한낮 작은 씨앗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 내 안의 슈퍼히어로를 끄집어낸다면 그곳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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