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내가 처음 난징에 간 것은 2008년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 준비 중이던 어느 여름날, 나는 난징시 진롱 호텔에 짐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낯선 곳에 새벽 공기를 좋아하는 나는 난징 시내 거리를 걸었다. 출근 시간 차들로 붐비는 큰 도로를 걷다 작은 골목을 발견했다. 조용한 곳을 찾고 싶어 낯선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의 끝에는 작은 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신선한 야채와 해산물, 다양한 물건들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곳의 풍경들이 마음에 들어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흔히 볼 수 없는 동물들, 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았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낯선 누군가가 다가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손목을 잡았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중국어는 간단한 나의 소개 정도였다.
낯선 중국인의 우렁찬 목소리로 주변 중국인들이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에워쌌다. 그가 말하는 중국어 중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르뻔’이었다. '일본'이라는 단어였다. 이 곳에 오기 전에 난징에 대한 역사를 읽었을 때 단어가 연결되었다.
‘난징대학살’
그는 나를 일본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워쓰 한궈른! 워쓰 한궈른!”
간절한 눈빛으로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소리쳤다. 내 진심이 와 닿았을까? 그는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와 떨어지는 순간, 나는 중국사람들 틈을 간신히 비집고 빠져나왔다. 골목을 걸어 나오면서 나는 뒤를 쳐다볼 수 없었다. 계속해서 내 뒷모습을 보는 그들의 눈빛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는 난징의 역사를 다시 찾았다. 도대체 난징대학살이 중국인들에게 어떤 역사이기에 일본 사람들을 싫어하고 증오할까? 나는 노트북을 꺼내 중일전쟁 당시 난징대학살에 대한 역사를 찾아보았다. 끔찍한 흑백사진에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고,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도서관에서 난징대학살에 관한 책을 읽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책이 중국계 미국인 작가 故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이었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왜 이런 비극이 발생했고, 우리가 난징대학살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글을 쓰는 나에게 깊은 의미와 동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남긴 책을 통해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을 변화시켜주길 바랬다. 시가 되었건 소설이 되었건 자신의 책을 읽은 작가라면 자신이 못 이룬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을 깨울 글을 써주길 바랬다.
처음에는 간단히 중국에서 경험한 나의 이야기를 적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계속해서 쓰게 만들었다. 결국 고인이 된 아이리스 장을 추모하며 '난징의 기억'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