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의 기억(1)

by 한빛

(1)

고도 3만 피트 비행기의 좁은 공간에 다카히로는 앉아 있다. 창문 밖 구름을 보면서 얼마나 올라가야 현실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지 생각했다. 아직도 그의 머릿속엔 일상의 고민, 해야 할 업무, 미래의 걱정들이 떠나지 않았다. 삶의 뿌리가 끊어지지 않고 그를 붙잡았다. 고도가 불안정하자 기체가 흔들렸다. 잠시 현실과 분리되어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도시 야경이 보였다. 잠시 뒤에 난징 류커우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가 난징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짙은 안개였다. 난징의 공기는 동료 대신 난징에 출장 왔다는 사실, 얼마 전 가족의 장례를 치른 기억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그는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기 전 동료들의 말이 떠올랐다.

"난징 택시기사는 개와 일본인은 태우지 않는다."

그리고, 난징에서 가서 불편한 일이 없으려면 일본인 티를 내지 말라고 말했다. 택시에 탄 다카히로는 호텔 이름을 말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뒷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도로 위에는 차들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는 난징 도시를 집어삼키듯 그를 따라갔다. 그는 난징이 아닌 전혀 다른 미지의 도시로 가는 것 같았다. 이대로 현실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다. 호텔에 도착한 그는 샤워를 했다. 잠시 내일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서류를 꺼냈지만 몇 글자 읽어 내려가다 그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창밖이 소란스러웠다. 일어나 창문 가까이 다가가 커튼을 젖혔다. 전면 유리창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살을 찌 부리며 밖을 보았다. 어제저녁에 보았던 한적한 도로가 아니었다. 출근길 차들로 도로 위는 빈틈이 없었고, 자동차 엔진과 경적소리는 여기가 얼마나 큰 도시인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커튼을 닫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보지만 소용없었다. 13층에 위치한 호텔방이어서 더 크게 들렸을까? 오후에 미팅이 잡혀 있어서 오전에 느긋하게 호텔 방에 있고 싶었지만, 잠이 완전히 깨버렸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호텔 밖으로 나온 다카히로는 난징 거리를 걸었다. 순두부와 튀김 빵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보였다. 갓 삶은 순두부 향, 갈색 빛깔의 튀김 빵이 그의 식욕을 자극했다. 문득 그는 집에서 아침마다 먹는 토스트와 커피 생각이 났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아침마다 준비한 아침 메뉴였다. 아내가 해준 커피와 토스트가 먹고 싶었다. 그는 아내 생각에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얼마 전 그의 아내는 자살했다. 죽기 직전에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아직도 아내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내의 죽음 뒤로 그는 어두운 숲길을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길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정신을 차리자, 눈 앞에 커피숍이 보였다. 창문 안쪽에는 수많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커피숍이라고 하기엔 서점 같았다. 상점 앞에 네모난 접이식 칠판에 영어로 쓰인 ‘coffee’ 글자가 보였다. 2층으로 된 건물은 큰 건물 사이에 끼어있었다. 멀리서 보면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 건물이었다. 길을 걷다 발견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카히로는 커피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서자 큰 책장이 보였다. 그 앞에 테이블에는 작은 꽃병에 꽃들이 꽂혀 있었고, 그 옆에는 책 속에서 뽑아낸 글귀들이 적힌 메모지가 코팅되어 붙어 있었다. 회사에서 중국어 바람이 불어서 익혀두었던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의 풍경보다 창문가에 앉아 있는 긴 머리의 여자 뒷모습에 시선이 갔다. 죽은 아내의 뒷모습과 닮았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문득 이 곳 서점에서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어서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는 단어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니하오, 니 게이워 투이지앤 요밍더 슈마?"

유명한 중국 책을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다카히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있었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덩이샤"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일어서서 책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책장에서 책 한 권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는 그녀의 호의에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씨에씨에"

그녀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창가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종업원이 두고 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그녀가 추천해준 책 표지를 보았다.

“난징의 진실”

겉표지를 넘겼다. 책 안쪽 표지에 여자 사진이 보였다. 그 사진은 창가에 앉은 여자의 얼굴과 닮았다. 눈 앞에 여자가 세월이 흐른 뒤에 모습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링링"이었다. 다카히로는 책 내용이 궁금했다. 하지만, 몇 장 넘기면서 더 이상 읽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어려운 단어들이 많았다. 책을 덮으려고 할 때 흑백사진들이 보였다. 글만 있는 책이 아니었다. 호기심에 사진들을 유심히 보았다. 끔찍했다. 일본군이 중국인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그는 전쟁 중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보다가는 아침을 못 먹을 것만 같았다.

오래전 부친이 중일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최근에 한국 방송사에서 중일전쟁 관련해서 인터뷰를 했다고 모친에게 들었다.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모친은 부친이 집에 없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부친이 불쑥 방문을 열고 나오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전쟁 당시 입은 상처로 거동은 불편하지만 80살이 넘어서도 기억은 그대로였다. 모친은 구체적인 인터뷰 내용은 다카히로에게 말하지 않았다. 분명 불편한 질문으로 두 사람 모두 기분이 나빴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다카히로는 책을 들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일본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계산을 하고 서점을 나왔다. 그리고, 그는 호텔로 향했다. 조금 걸어가자 골목길이 눈에 띄었다.

이전 01화난징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