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골목 안쪽에 시장 같은 풍경이 보였다. 그는 골목길 앞에 서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다 한 걸음을 떼었다. 골목길 양 옆으로 늘어선 건물에서 페인트 작업이 한창이었다. 건물 위에 밧줄을 매고 내려온 작업자가 빨간색 페인트를 칠할 때였다. 다카히로는 신발끈이 풀린 것이 보여 허리를 숙여 신발끈을 다시 맸다. 빨간색 페인트 방울이 그의 등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순간 페인트는 분수처럼 흩어져 일본 전범기 문양을 만들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시장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다양한 음식들과 채소들을 팔았다.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의 모습도 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개와 고양이, 새도 보였지만 산에서만 볼 수 있는 다람쥐, 너구리 그리고,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작 같은 동물들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이 깜짝깜짝 놀랐다. 개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고. 고양이는 털을 꼿꼿이 세우고 소리 질렀다. 새도 날갯짓하다 새장에 부딪쳤다. 그는 물건을 파는 난징 사람을 향해서도 셔터를 눌렀다. 그는 마치 총방아쇠를 당기듯 셔터를 눌렀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는 희열을 느꼈다.
중국인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갔다. 머리카락이 짧고 반팔 셔츠를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낯선 중국인이 그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니 간마야, 니스르뻔른마?"
다카히로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지금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수많은 중국인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그의 등에 새겨진 붉은 문양이 그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의 머릿속은 큰 파도에 출렁였다.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것처럼 그의 눈동자도 요동쳤다. 그가 손을 뿌리칠수록 중국인은 더 세게 그의 손목을 잡았다. 손아귀 힘이 억셌다. 중국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쳤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있는 사람들도 함께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결국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는 바닥에 떨어져 부서졌다. 그는 직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곳은 난징이고 불편한 일이 발생하면 일본인 티를 내지 말라고 했던 말.
"워쓰 한구어런, 워쓰 한구어런!!"
다카히로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중국인은 그럴수록 더 강하게 손목을 움켜쥐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중국인이 그의 손을 위로 들려고 할 때였다. 그의 손이 기둥에 부딪쳐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피를 보자 그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끌려가서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삶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그가 떨어뜨린 책을 집어 들고 나타났다. 서점에서 보았던 링링 작가였다. 링링은 그를 붙잡고 있던 사내에게 소리쳤다.
"니 송카이러 타더 쇼우"
'손을 놓아주라'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눈빛은 중국 사내의 마음을 움직였다. 중국 사내는 그녀의 눈을 피하고 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그녀는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책을 높이 들어 올리며 다시 말했다.
"워먼 부스 르뻔른"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다', 다카히로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어떤 의미로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녀의 손짓에서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그녀 앞에서 하나둘씩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그녀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또 다른 골목길로 들어서자, 그녀는 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눈빛으로 그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다카히로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골목길이 끊어지기 전에 사각모양의 큰 집이 나타났다. 그녀는 집 안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리고, 둥근 원형탁자 의자를 꺼내 그에게 앉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들어가 차를 준비했다.
중국 전통 주전자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는 작고 하얀 찻잔에 전통차를 따랐다. 따뜻한 차 한잔이 온몸을 녹이는 것 같았고, 긴장한 근육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목을 보여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상처를 보고 나서야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주변에 묻은 피를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다카히로는 링링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 '유끼'를 떠올렸다. 아내가 딸아이 '이예스'의 상처를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주는 모습이었다. 이예스는 늘 상처를 입었다. 평범한 딸 하고는 달랐다. 걸어 다니지 못했고, 휠체어를 타거나 집에선 기어 다녀야만 했다. 아내는 딸의 뇌성마비 장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죄책감으로 살아갔다. 그녀는 15년 넘게 딸아이를 화장실에 눕혀 매일 목욕을 시켰다. 화장실에는 문턱이 없었고, 욕조 대신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목욕이 끝나면 기저귀를 채워야 했고 밥을 먹을 때에는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어야 했다. 잦은 근육 경련으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도 아내는 딸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카히로는 딸아이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고 딸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아내의 죽음 뒤에 그는 딸아이를 장애인 위탁보호시설에 맡겼다. 처음엔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혼자서 키워보려 했지만 회사일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매일마다 딸아이를 보러 가던 횟수가 점점 길어졌다. 그는 매주마다 가지 못하는 핑계를 만들어갔고, 그런 자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눈 앞에 마주 보고 있는 링링을 보면서 집으로 되돌아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순간 고개를 흔들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 전 마신 따뜻한 차 때문일까? 따뜻한 수건 때문에 긴장이 풀려서 일까? 아니면 아침부터 피를 흘린 탓일까? 그는 조금씩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