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사유서

2018 작가의 눈. #杏仁 20180831

by 행인

앞만 보고 달리는 당신을

나 더는 견딜 수 없어요

신호등도 갈림길도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

그 여자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며

직선으로만 내달리는 당신

숨 돌릴 틈도 없이 철책 속에 갇힌 길

단 한 차례 설 자리도 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는 선 안의 경주

굽잇길도 고갯길도 직진만 하네요

언제까지 당신은 경주 하나요

앞차를 놓기 싫어 쫓아가나요

뒤차에 잡힐까 봐 달아나나요

달리는 일이 그렇게도 소중한가요

천천히 걸어가면 안 되는가요

귀밑까지 따가워져서

나 이제 그만 내릴라네요

쉬엄쉬엄 가고 싶네요

길섶에 차를 대고

공중에 날리는 한숨 한 구절

손 내밀어 붙들고 싶네요

낮게 떠가는 하얀 구름과

젖은 나무의 초록 눈빛과

물방울의 투명한 떨림들과

나는 이야기하고 싶네요

눈 돌릴 틈도 없는 불쌍한 사람

지쳐서도 쉬지 못하는 사람

커피 한 잔 마시자고

빠져나갈 샛길도 모르고

백리 길을 내처 달려가네요

차창에 스쳐가는 참새 한 마리조차

멈추어 서서 적어둘 여백이

당신께 어디 있나요

나는 이제 혼자 갈라네요

앞으로 앞으로만 가는 당신의 손을

그만 놓을라네요

당신은 서울을 향해 가세요 나는

조금 전에 지나친 작은 길이 좋아요

길 옆 풀숲에 쪼그려 앉아

네 잎 토끼풀이나 찾을라네요

빨간 뱀에 물려도 나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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