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작가의 눈 26호(201908. 행인)
초가을 오후를 통째로 반납했다
사람들이 나를 찾아줄 번호를, 번호를 그만 잃어버렸으니
어찌할거나
밀린 것 없이 삯도 다 냈건만
이녀러 기지국은 나를 식별할 수 없다 손을 내젓는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어디 갔는지
돌아올 줄 모르는 내 번호를 찾아 헤매었다
이 거리 저 거리 몇 번씩 두리번거려도
날 저물도록 찾을 수 없었다
먹통 된 전화기 확 던져버리고 싶었으나
돈이 아까워 차마 그럴 수 없어
뒷 껍데기를 벗겨내고 유심칩이란 것을
가만히 빼내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는 수 없어 얌전히 도로 넣고 다시 켠 순간
허! 이놈! 이놈 봐라!
그만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다 죽었던 이놈이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닌가
밤늦게 겨우 돌아온 나는
세상을 떠도는 수많은 번호 중 하나가 되어
컴컴한 하늘 어디선가 날아올 신호를 기다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가을 오후는
나에게 부재중 수신 하나 남기지 않았다
숨 가쁜 교신과 교신 속에서
살아 있어도 식별되지 않는 존재 하나가
살아난 번호 앞에서 다시 숨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