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대해
꽃이 피니까 봄이 왔을까,
2009년 개봉된 이 영화는 중국에서는 시간이 좀 흐른 2010년 5월에 개봉되었다. 아마 2008년 쓰촨 성 대지진 2주기 시점에 맞물려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상업적인 것보다는 아마 여기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슴 아픈 사건 후의 회복, 그리고 새로운 출발에 대한 희망, 메시지를 주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상상을 해 본다.
이 영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톱스타 정우성과 막 떠오르던 중국의 고원원이 출연하고 한중 연합 제작이라는 것으로도 이슈가 되었던 영화였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은 상해를 떠나 서울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였다.
중국 국적기 비행기는 단거리 노선일수록 한국 국적기에 비해 서비스 차이가 많다. 기내식의 수준도 그렇고, 지금은 보편화된 개인 엔터테인먼트 기기(좌석별 스크린 및 VOD) 조차도 없었다. 그렇기에 기내에서 모두가 시청해야 하는 모니터 (크기도 작고 캐빈 천장 쪽이라 고개를 들어야 볼 수 있다.)를 1시간 30분 남짓의 비행시간 동안 볼 생각을 잘 안 한다. 그런데, 그날은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아마 한국 배우가 출연하고 자막 없이 음성 만으로도 영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내리네
바람 따라 몰래 들어와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만 불빛 비치네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好雨知时节,当春乃发生。
随风潜入夜,润物细无声。
野径云俱黑,江船火独明。
晓看红湿处,花重锦官城。
두보, 춘야희우(春夜喜雨),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
영화 제목인 '호우시절(好雨时节)'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영화는 동하(정우성)이 쓰촨성 성도로 출장을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공항에 마중을 나온 회사 직원(김상호)과 같이 식사를 하고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간 곳이 당나라 시인 두보초당(일종의 두보 시인의 기념관)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여주인공 메이(고원원)를 만나게 된다.
고원원은 그 두보초당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직원이었다. 둘은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동창이었다. 긴 시간 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지만 보자마자 서로에게 연민의 정을 갖게 된다.
그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여느 로맨스 드라마와 같이 두 남녀 간의 사랑을 잔잔하게 풀어나간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여러 번의 순간이 있었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에 여주인공 고원원은 남자의 사랑 고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자신에게는 결혼한 남편이 있음을 정우성에게 토로한다.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게 된 정우성과 고원원은 감정을 추스르고 같이 공항으로 가던 중 작은 교통사고를 겪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고원원이 쓰러지게 된다. 병원 응급실로 찾아온 같은 직장 동료를 통해서 정우성은 고원원의 남편이 실은 2008년 쓰촨성 대지진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자기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드는 그 복잡한 감정과 심리를 아름다운 영상을 잘 표현한 영화다. 한국으로 돌아간 정우성은 여주인공에게 자전거를 보내주고 그때까지 자전거를 탈 줄 몰랐던 여주인공은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관객들 모두가 이후의 전개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으로 끝을 맺게 된다.
(정우성과 고원원이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 해피엔딩의 분위기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가 개봉된 시점은 2008년 대지진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던 2009년이었다.
몇 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참사였기 때문에 아직 그 상흔이 다 치유되지 않았을 때였다. 영화 속의 여주인공도 사랑하는 남편을 지진으로 잃고 아직 그 충격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남편에 대한 마음, 그리움 등이 배어져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것이었다.
슬픔과 비탄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 다시 시작해 보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허진호 씨다. 최근에 '천문: 하늘에 묻는다'라는 영화도 맡았고, 이전에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멜로물의, 사랑을 주제로 한 연출에서는 탁월함을 인정받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감독이 연출한 멜로물 중 해피엔딩의 결말은 이 영화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이 영화를 스스로 소개하며 '전작에 대한 화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그런데, 흥행 결과는 좋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여주인공 메이(고원원 역)가 자신의 집에 남편의 영전과 향을 피워 놓는 장면이었다. 그전까지 영화 중간에 여주인공의 집에서 마치 누군가 그녀와 같이 사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 때문에 남편의 죽음을 알기 전까지는 여주인공에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긴장감을 주었었다.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종교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원인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버리는 상황 속에서는 더더욱이 그렇다. 이전에도 몇 번 큰 대형사고들로 인해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뉴스가 나올 때, 주위의 중국 사람들의 반응이 이해하기 힘든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많은 희생자의 숫자에도 그렇게 크게 놀라지 않는 모습. 그때에는 아마도 중국 사람들에게 큰 재난이 여러 번 있었기에 이 정도 규모, 이 정도의 사건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가 보다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런 중국인들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고 중국인들에게 생명경시의 경향이 있는 게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된다.
중국은 사건 사고가 참 많은 곳이다. 인구도 많고 땅덩어리도 넓으니 한국과는 비교 안되게 매일매일 사건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다. 그러기에 재난과 사고를 대하는 중국인들의 관점을 보면, 어떤 면에서 운명론, 또는 결정론 같은 것이 느껴진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억울하기보다는 그냥 담담히 받아들인다.
4-5년 전쯤 회사의 직원이 시골집에 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두 부부(부인이 회사의 직원이었다.)가 같이 죽고 동승했던 아이와 할머니만 살아난 일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회사 동료들이 모두 상가집으로 찾아가 조문하게 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나 상가집의 분위기가 우리의 풍습, 관습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골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좀 더 이전의 전통적인 관습도 보였다.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하면서 두 부부가 쓰던 물건들, 입었던 옷들을 같이 태우는 풍습도 볼 수 있었다.
그때, 젊은 중국 직원들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어떤 직원은 자신들이 학교에서 공산주의 사상과 유물론에 대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죽음도 그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유기체, 생명의 종말 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있지만, 현세의 삶에 한정되어 있을 뿐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은 많지 않다. 불교 사상의 영향으로 이 생이 아닌 다른 생에 대한 윤회론적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현재, 여기에서의 삶이 중요하다. 한국인들의 제사라는 풍습, 일본인들의 신주, 위패를 모시는 풍습들과 대비해 본다면 현대 중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죽은 자들을 고려한 풍습은 찾기 힘들다. 이 또한 문화대혁명의 영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의 신종 코로나로 인한 상황을 보면 나와의 관계,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민감도는 높지만 '망(亡)'자에 대한 어떤 보도나 뉴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게다가 어떤 언론에서도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사는 볼 수 없다. 한국 같으면 신문이나 언론 보도의 상당수는 희생자들에 대해서, 유족들의 상황, 반응 등이 채워질 텐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정서, 여론 등을 감안한 언론 통제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다. 원래 이런 재난과 사고를 대하는 중국 사람들의 태도가 그렇다.
이전에도 그래 왔지만 아마 중국인들은 어느 다른 민족, 나라들보다 빠르게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할 정도로 앞을 보고 달려 나갈 것이다. 빠른 사회적 안정 회복, 경제의 부활이라는 관점에서는 최선의 방식이겠지만, 죽은 자 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호우시절의 여자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아파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메이(여주인공)의 말처럼 사랑이 왔기에 꽃도 피고 봄도 왔음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경제 숫자로만 평가되는 회복이 아니라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진정한 회복이 있기를 바란다.
봄이 오니까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피니까 봄이 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