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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항재 Jun 14. 2020

용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두 사업부의 책임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회사의 전체 사업부 중에 소위 Bottom 2에 해당하는 사업부 책임자들이고 모두 그렇게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 GM들에 해당되었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 상황, 시장의 변화, 브랜드의 경쟁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되는 결과이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사업의 건전성의 유지와 신임 GM들의 관리와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인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우선 HR을 책임지고 있는 나에게 이 두 사업부의 책임자들에 대한 면담과 필요한 지원에 대해서 알아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런 경우 대부분 2가지의 목적을 갖고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표면적으로는 '지원과 도움'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다분히 '평가와 감독'의 의도가 있게 된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이처럼 다분히 양면적일 경우가 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경영은 어떻게 "모순"을 다루는 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련 경우가 그렇다. 


리더의 육성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실적은 단기에 내야 하고, 대부분의 리더는 그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경우 노동법 상 기본 전제가 한국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그중의 하나가 계약기간과 종료에 대한 부분인데 한국의 경우 근로자 신분과 사용자(통상 임원 또는 경영자) 신분을 구분하고 근로자의 경우 노동법상 여러 가지 보호 장치가 있는 것에 비해 중국의 경우에는 레벨에 따른 구분 없이 단일한 구조에서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대신에 근로기간의 정함이 있는 계약을 2차례까지 할 수 있고 3번째 동일 법인과 노동 계약을 맺을 시에는 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맺도록 되어 있다. 즉, 2차례 계약 갱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회사와 직원 간의 헤어질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최종 3번째 계약 시에는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신중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후 계약 해지는 일방적으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경우에는 이런 계약 기간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수습기간(Probation) 평가를 통해서 검증을 하게 된다. 수습 기간은 계약기간에 비례해서 정하게 되는데 3년 계약을 하는 경우 6개월 내에 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새로운 리더를 외부에서 영입한 경우 6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드러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채용 자체가 잘못되어 맞지 않는 인재를 영입한 경우에는 수습 기간에는 즉시 계약 해지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채용 프로세스와 절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위에서 언급한 사업부 책임자들의 경우에는 이미 회사 내에서는 다년간 근무해온 자들이고 작년에 새롭게 GM으로 승진한 케이스다. 이런 신임 경영자들의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신임 경영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지원이 작동하게 되는데 때로는 교육 프로그램이고 때로는 별도의 코칭이나 컨설팅이 주어질 수 있다. 


교육이든 코칭이든 결국 한 사람을 키워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끔 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경영자를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가 실적이기 때문에 그 실적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실적이라는 것이 거의 매일, 매주, 매월 단위로 리포팅되고 평가된다는 것이 어쩌면 인재경영 상황에서 직면하는 현실적인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평가와 관련해서 가치관, 잠재성 등등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결국 사업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숫자(실적)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사실을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경영자들은 없을 것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쉽지 않죠.."

"GM으로서 어떤 부분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나요? 가장 큰 도전이 되는 상황이 뭐죠?"

"일단, 실적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사업부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요. 일단, 경영계획상의 목표를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이를 위해 세웠던 여러 가지 계획들도 실행 중에 있지만 아직 결과가 나올 단계가 아니라서요..."

"HR 관점에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요? 조직이나 사람 관리에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글쎄요, 내부적으로는 충분히 전략이나 계획에 대해서는 소통을 해 왔고, 어느 정도 조직도 안정화되어 있어서, 특별히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은 충분하다고 보시나요? 조직의 가장 밑 단계까지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지요?"

"일단 제 직속의 핵심 관리자들하고는 충분히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밑의 직원들에게 충분히 공유하고 있을 거라고 보고 있고요..."

"핵심 관리자들을 언급하셨는데, 어떤가요? 그들이 현 사업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역할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고 보시나요?"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단, 몇몇 프로젝트에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어려운 사업부일수록 경영자의 마음은 조급해지고 초조해 지기 마련이다. 긍정적인 사고도 필요하지만 어려움이나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게 된다. 더욱이 그 문제가 사람이나 조직, 문화 등 추상적인 것일수록,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거나,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려울수록 더더욱이 그렇다. 


HR 부문에서 이런 경영자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우선 경영자가 명확하게 현실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위의 대화에서도 나타나듯이 사람들은 누군가의 평가, 누군가의 시선을 불편해한다. 

초급 경영자들에게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상황에 대한 막연한 긍정적 기대 또는 반대로 불필요한 과도한 걱정이다. 무엇이 되었든 모두 정확한 사실(Fact)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무엇을 관리하고 무엇이 중요한지는 알고 있으나 현재 나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보지 못하는(많은 경우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조직의 상태가 건강한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간략한 조사를 진행하면 어떨까요? 일단 온라인 설문을 통해서 핵심인력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혹시 어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추가적인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흠...글쎄요. 제 조직에 대해서는 제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굳이 이런 조사를 하는 게 필요할지..."

"물론 충분히 조직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시겠죠. 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면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테고, 혹시라도 문제가 있다고 나오면 더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조치할 수 있으니, 어떻게 해도 다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계획이죠?"

 

이렇게라도 대화가 진행된다면 정말 이상적이다. 

현실에서는 많은 경우 이런 유의 진단을 마치 감사(Auditing)나 평가로 생각해서 거부감을 보이거나 암묵적 또는 노골적으로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성을 갖고 경영자가 자발적으로 이러한 진단에 참여하고 지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또한 HR이 초급 경영자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회사별로 HR이 주기적으로 직원만족도나 성과몰입도 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서 경영상황을 진단, 평가하는 제도를 갖고 있는데, 공감대 형성 없이 규정과 프로세스로 몰아붙여서 진행하는 것은 자칫 경영자의 사고의 전환, 성장의 기회를 빼앗고 HR이 관료적, 권위적이라는 평가를 갖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HR이 해야 할 것은 이 '초짜' 경영자가 작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이다. 

마치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에게 우선 체중계에 올라서서 자신의 몸무게를 숫자로 확인한 뒤 빼야 하는 몸무게 목표를 세우게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의 연출이다.


"건강검진받아 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가 건강한지 아니면 어디가 아픈지 직관적으로 알 수도 있지만 병원에 가면 이런저런 검사를 통해서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이런 진단도 조직에 대한 종합 건강검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검사받는 게 유쾌하지는 않네요. 뭐, 말씀하신 대로 이번에 한번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한동안 회자되었던 "조직의 안전감"은 기업문화라는 관점에서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리더가 현실을 어떻게 직시하고 비판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에 달려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리더, 경영자의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이며, 리더를 선발하는 주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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