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배운다
처음 삐삐를 가졌을 땐 스무 살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가졌지만, 내게는 첫 개인적인 전자제품이었다. 기기를 활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용법을 만져 보면서 배우고 익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간단한 조작에 불과했다. 공중전화로 달려가 상대방 번호를 누르고 음성 녹음을 하거나 답 번호를 누르고 별표를 누르면 끝이었다.
최신기기를 배우는 일은 당연했다. 특히, 우리 나이대 사람들에게 사용 설명서를 보며 익히는 일은 일상이었다. 도스를 통해 컴퓨터를 배울 때, 앞서 말한 삐삐는 말할 것도 없고, 벽돌만한 휴대폰을 갖고 배우는 일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휴대폰의 버전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지금까지도 폰의 기능을 모두 다 알고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아는 만큼 잘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우리 세대는 늘 배우고 익혀야 할지 모른다.
모임을 할 때 일이다. 커피숍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모였다. 누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또 누구는 카페라테, 커피를 싫어하는 이는 대추차 등을 먹기로 했다.
“젊은 선생님이 다녀와.”
라며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는 대부분 모임에서 나는 40대의 젊은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하러 가면 요즘은 모두 키오스크와 대화한다. 버튼을 찾아 누르는 게 일이다. 잘 찾는다며 나를 추켜세워주지만, 나 역시도 최신기술을 따라가기엔 조금씩 힘이 부침을 느낀다. 아이들이 함께 가는 자리에서는 아이들에게 떠민다. “엄마보다 너희들이 잘하니까 난 이걸로 부탁해.”가 자연스럽다.
지금 나는 AI를 마주하고 있다. 챗 GPT라는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회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컴퓨터를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수필을 쓰는 내가 그런 기술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사용하는가 의아함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이고, 모두가 사용하는데 나만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홀로 도태되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또 배워야 한다.
배움은 끝이 없다. 어느 방송사의 로고 ‘즐거움은 끝이 없다’는 말이 와닿는다. 배우는 일은 즐거운 일이고, 즐거운 일은 끝이 없다. 그렇게 끝없이 즐거우려면 늘 배워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한다. 스마트하지 않은 부모님조차 어느 날엔가 스마트폰을 갖고, 둘째 손가락을 움직이며 바쁘게 폰 화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카톡의 즐거움도 가끔 느끼며 부산 사는 동생 소식을 듣는다. 누가 어디에 있든 스마트폰으로 다 알 수 있다.
한강 작가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궁금했다. 내 수필도 세계인들이 볼 수 있도록 변화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기 위해선 번역이 필수다. 작가지만 영어 공부를 잘해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생겼다. 지난 세월 영어를 포기한 긴 시간에 커다란 벽을 느꼈다. 그래도 누군가가 번역해주면 내가 그걸 전부 알아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내 수필을 읽고 좋아해 줄 세계인을 기대한다.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챗 GPT 써보세요.”
“AI가 마음대로 해버리면 어떡해.”
나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으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을 상상하며 걱정만 했다. 무료로도 쓸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궁금한 거 물어보라고 했다. 작가들에게 필요한 기본 자료들을 물어보거나 어떤 단어와 비슷하거나 반대말 등의 표현이 가능한지 질문부터 시작했다.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물어볼수록 깊은 자료들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블로그에 나의 수필을 영어로 바꾸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옆에 번역가 한 명 두면서 내 수필을 영어로 바꿔준다니. 읽어보면서 조금 더 쉬운 내용으로 감정적인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고, 활용하는 일은 신기했다. 순식간에 번역되어 주르륵 내려오는 글을 읽어보는 동안 단어에 대한 궁금증도 물어보며 이해하기 바빴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무엇이든 해보는 것에 만족한다.
AI를 통해 나를 더욱 성숙시킬 수 있음에 감사한다. AI와 나란히 손잡고 미래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