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굴러들어온다

by 한그리 유경미

“올해는 가만히 있어도 절로 돈이 굴러들어온다.”

나를 유혹하는 알고리즘이 끝이 없다. 정말 맞는 말인지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다. 삼재인 지금 되는 일도 없고, 하려는 일도 늘 꺾이면서 내 마음도 꺾여져 움츠러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말은 뭔가 달랐다. 올해는 다르다고 한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느 날엔가 유튜브에 내가 태어난 해의 운세를 알려주는 내용을 클릭한 적 있다. 정말 우연히 무작위로 뜬 영상이다. 운명론자여서 그럴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누른 영상은 또 다른 영상을 불러냈고, 다양한 복장의 점집 주인들이 소환됐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점집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거의 모든 영상이 올해는, 내 나이의 사람들이 대박이 터지고 좋은 운세이니 꼭 잡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운명을 믿는 편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떤 운명으로 귀결된다고 믿는다. 인연은 반드시 또 만난다던가, 너와 내가 다시 만난 건 그렇게 결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엎어진 날 바로 누군가의 일이 생겼던 적이 수두룩하다. 그러려고 이게 안 된 거구나. 내가 지금 일을 하지 못하는 건 아버님의 병간호에 집중하라는 의미였던 건 아닐까. 우리가 온 우주의 질서를 반하는 일은 절대로 용납 못 한다는 듯한 신의 계시, 스스로 개척하는 일 역시 결정된 신의 한 수다.

한때 신문을 보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날엔 루틴이 있다. 오늘의 운세 페이지를 가장 먼저 살피는 일. 띠별로 연도별로 정리된 한 문장이 하루의 삶을 결정하는 것 같았다. 운세를 보지 못한 날에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오늘은 그 말이 맞았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맞았던 날에는 깜짝 놀라 감탄하며 “맞아, 대단해.”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틀린 내용은 “그럴까 봐 조심했는데, 다행이다.”라며 끼워서 맞췄다.

어젯밤엔 정말 좋은 꿈을 꾸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로또를 사러 가기도 한다. 꿈에 똥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밟아서 다 묻는다거나, 돼지를 껴안는 꿈이 대표적이다. 내 경우에는 꿈에 피가 많이 있고, 묻을 때도 좋은 일이 종종 있었다. 하루 종일 주변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경계하다가 하루가 끝날 무렵이나 며칠 후 참았던 꿈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꿈 이야기를 하면 복이 달아난다나.

몇 해 전 친구들과 홍대 근처에서 사주를 본 일이 있다. 사람과 대면해서 점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나의 운명을 내가 모르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고, 누군가 내 일을 모두 다 안다고 하면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그 여인은 내게 말했다. 앞으로 3년 동안은 정규직은 될 수 없다고. 아이들을 키우며 경력은 없는 데다가 요즘 시간제 짧은 일들만 하고 있던 터였다. 3년이 되는 올해 역시 꾸준한 일이라고는 없다. 설마 아니라 생각하고 본 점이 맞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프고, 일은 잘되지 않고, 이력서는 계속 떨어지고, 슬픔의 연속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무시하려고 해도 그들은 늘 내 앞에서 알짱거렸다. 잘될 거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위로되었다. 날 알지도 못하는 그들이 떠들고 있는 말이 힘든 지금의 현실에서 더 잘될 거라고 보듬고 있었다. 자장가처럼 가끔 영상을 틀어놓고 잠이 들기도 했다. 목소리를 들으면서 바닥에 있는 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건져지는 내 모습을 보며 괜찮다며 나를 안아주기 시작했다.

올해는 책을 내야지, 꼭 내야지, 해마다 결심했었다. 올해로 등단 9년 차. 얼마든지 개인 돈으로 낼 수도 있는 책을 나는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내겠다고 다짐했다. 마치 그래야 하는 걸 운명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늘 고배를 마셨다. 선정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며 주변에서는 위로해줬다. 그래, 언젠가는 되겠지. 내가 잘하는 인내력을 발휘했다. 몇 해 지나 올해는 정말로 낼 수 있게 되었다. 어제 공지로 발표가 올라왔다. 나는 해냈다.

운이 굴러들어온다. 그러나 절대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았다. 늘 고민하고 노력하고 수정했다. 안 되는 일에 실망하기는 했으나 포기를 하진 않았다. 슬펐지만 그게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내가 작년에 소설도 써보고, 동화도 해보기를 원했던 건 아닐까. 수필만 쓰면 다른 분야의 것에 대해 알 수 없으니 그 기회를 준 것 같았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무수한 실패를 맛보며 짠지 싱거운지 단지 알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

운명이 굴러들어온다. 인간은 알 수 없는 체계적인 우주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운명의 굴레 틈으로 내가 구르고 한 바퀴 돌아 나온다.


브런치 독자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더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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