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몇십 년 후엔 그렇게 늙어갈까
#1
빈자리가 거의 없는 버스 안이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사람은 타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예전엔 모르는 사람 옆자리라면 서 있자,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빈자리면 어디든 "오케이"로 바뀐 걸 보면 나도 이제 젊지는 않은가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시장 앞 정류장에서 멈춰 선 버스에 "두 명이요."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카드단말기를 조작하는 소리와 함께 금세 할아버지 한 분이 탄다. 카드를 기계에 대고서는 슬쩍 뒤쪽 계단을 향해 뒤돌아보고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동승자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 기척이 없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버스 기사는 그냥 그대로 있다. 무심히 쳐다보던 장면에 주변의 사람들 눈이 집중되고 관심이 생긴다.
그냥 기다리지는 않을 테니 누가 오는가 살핀다. 기다림이 지칠 무렵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계단을 오른다. 무릎이 좋지 않으시나 생각하며 어르신의 하체에 시선을 돌린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냈어."라며 커다랗게 시원스레 말하고 돌아선다. 사람이 몇 명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할머니는 불편하게 서 있었나 보다. 할아버지는 버스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내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저쪽에 가. 자리 있어."라고 말한다. 순간 뜨끔해진 나는 엉덩이가 들썩이며 조마조마한다. 느릿느릿 걸어오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순간 어찌할 바 모를 때, 할머니는 내 자리를 지나친 후 바로 뒷자리에 앉는다.
할머니가 자리에 가서 앉든 말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할머니를 본 척 만 척 할아버지가 신기하다. 요즘 흔히 말하는 츤데레 아닌가. 겉으로는 잘해주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써가며 할머니를 챙기는 모습에 요즘 할아버지 세대 같지 않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2.
대형병원 대기실이다. 사람들 가득한 복도에 시장통처럼 혼란스럽다. 특히 호흡기 관련 과(科)는 나이 많은 사람들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을 상대해서인가 병원 관계자들의 목소리도 크다. 예약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아직 대기가 한참 남았다. 환절기이기도 하거니와 코로나 후유증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탓인가 싶다.
혼잡한 복도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키가 훤칠한 그는 오랜만의 외출에 힘을 준 듯 단정한 옷매무새가 인상적이다. 가을빛의 겨울 양복은 춥지만, 할아버지의 멋진 외모를 살려주기 충분하다. 양복 위 코트로 점잖은 노신사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하다. 게다가 성큼성큼 걷는 속도가 젊은이들 못지않아 보였는데 뒤돌아보는 어르신의 표정이 뭔가 못마땅한 듯하다.
"뭘 따라온다고 그려."
한참 뒤 복도 끝에서 기척이 들린다. 꽃 달린 단정한 모자를 쓴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으며 절뚝거리며 오고 있다. 지팡이 반대쪽 손에는 신경 쓴 핸드백이 할머니 손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할아버지를 향해 "이것 좀 들어봐요." 하며 들고 있던 가방을 들어 보인다. "왜 와서는." 작은 목소리로 투정하는 할아버지의 뒷말이 들리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혼잣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는 등 굽은 허리를 최대한 치켜들고는 팔을 들어 그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준다.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구부러진 할머니는 전혀 닿지 않는 할아버지의 어깨 위 접힌 카라를 펴줄 수 없어 소리 지른다. "거, 여 위에 좀 잘 좀 해봐요! 아니 거기 위로!"
상황을 보아하니 진료는 할아버지의 일정이었나보다. 홀로 볼일을 보는 것이 편리하고 수월했으리라. 함께 따라온 불편한 할머니는 걸리적거릴 수밖에 없을 터다. 그런데도 잘 들리지 않는 귀에 불편한 몸을 한 할머니의 소리 지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함께 늙어간 생애 동안 할아버지를 챙겼을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까지 함께 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못해 놀라울 정도다.
#3
부모님은 항상 싸운다. 목소리가 커진다. 자세히 보니 그렇지 않다. 얼핏 싸우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귀가 들리지 않는 서로를 위한 배려일터다.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살짝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목소리는 우렁차고 화를 내고 만다.
나이가 들면 점점 어린아이로 변한다. 고집쟁이가 된다. 평생을 살아온 고집이 바뀔 리 만무하지만 서로 맞춰온 일생의 여유로움이 이제는 사라져가기 때문은 아닐까. 나이를 먹어 몸은 힘들고 제 한 몸 지탱하기도 힘들다. 인생은 육십부터라지만 육십부터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하고 뒷방 늙은이 신세로 자식들로부터 홀대받을 두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함께 있는 배우자에게만이라도 다만 자기의 자존심을 내세우고 떵떵거리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짝이 있으면 아직 다행이다. 현재 70대 이상 노인인구는 20대 인구를 돌파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홀로 사는 노인 역시 만만치 않게 많으리라. 젊은 사람이 홀로 지내기 어려운 만큼 나이 많은 사람도 외로운 삶은 쉽지 않으리라. 몸은 늙어도 정신은 젊었을 때와 같다고 하지 않은가.
함께 지지고 볶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 우리 부모님은 아직,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