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들렀다. 혼자 방문했기에 제일 안쪽인 1인 좌석으로 향했다. 곳곳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손님이 왔으니 주인이 나오지 않나 주방 안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누군가 앉아 있기는 한데, 도통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 식당 곳곳을 훑었다. 역시나 입구 오른쪽에 기계가 하나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 앞으로 갔다. 키오스크였다. 1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라 어지러울 정도로 배가 고팠다. 매장에서 먹을지 포장할지 선택 단추가 나왔다. 매장 단추를 눌렀더니 이곳저곳 메뉴가 많았다. 찾아보다가 가장 싼 우동을 골랐다. 기본이 원래 제일 빨리 나오니까. 카드를 꽂고 잠깐 기다리니 영수증과 접수번호가 긁혀 나왔다. 카드를 꺼내어 아까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띵똥, 소리에 주인은 몸을 움직여 우동을 만들었다.
나는 엉거주춤 앉으려다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하려고 폼 잡는데, 주인은 하던 것을 마저 한다. 머쓱해진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더니 금방 우동이 나왔다. 주인은 “맛있게 드세요.”라며 내 앞 높은 자리에 올려두었다. 주인과 나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었다. “감사합니다.”하고 우동을 받아 들고 내 앞으로 내려놓았다. 곁에 있던 수저통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꺼내고 단무지는 셀프라니 접시를 꺼내놓고 먹을 만큼 담았다. 주인과의 대화는 마땅치 않아 어색해도, 스스로 하는 상 차리기는 익숙하다.
키오스크라는 기계가 있으니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눈이 마주쳐도 서로 원하는 게 없고 이미 기계로 말했으니 무시한다. 우리는 어느 날 엔가부터 기계를 누르기 시작했고, 인사말을 자주 하지 않고, 음식과 마주했다. 코로나를 지나온 이후 더욱 심해진 듯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세균이 번식조차 하지 못하게 아무런 말도 없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손님은 물론 주인장조차 기계가 된 듯하다.
서류를 뽑을 일이 있어 무인 인쇄소를 찾았다. 역 한편에 마련된 24시간 프린트 샵은 스캐너가 필요하거나 컬러 인쇄물을 집에서 뽑지 못할 때 종종 필요하다. 오늘같이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날 지하철 역사에 자리한 이곳은 잠시 몸을 피할 수도 있다. 무인 인쇄소는 복사, 인쇄, 스캔, 팩스까지 가능하며 건 별로 카드 결제를 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특히,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혼자 뽑아갈 수도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사람이 많아 뒤에서 기다렸다.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중년 남녀와 대화하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기다리기만 했는데, 나이 든 두 명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귀를 더 활짝 열었다.
“제가 동전밖에 없는데요, 여기는 카드만 쓸 수 있어서요.”
“저희는 어떻게 하는 시스템인지 모르겠어요.”
“돈을 드릴 테니 카드로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주인이 아니라서요.”
별일 아니기에 내가 나섰다.
“제가 해 드릴게요.”
나는 간단한 업무만 보면 되므로 사용할 카드를 기다리면서 이미 꺼내놓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금방 할게요.”
“괜찮아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
하루 종일 밖에 있었던 터라 몸을 더 녹이고 싶었던 차였다. 젊은 여성이 USB를 꽂고, 파일을 열었다. 컴퓨터를 조작하는 손길이 제법 빨랐다. 파일이 열려 보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였다. 아, 지금 구직 중이구나. 젊은 여성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도 지금 구직 중이지만, 20대와 40대는 차이가 있다. 한없이 어리게만 보이지만, 그저 대단해 보이는 그 사람이 내 딸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홀로 생존하려는 모습에 한 걸음이라도 보탬이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계는 종이를 내뱉었다. 모니터 화면에 비친 이력서가 원하는 회사에 덜컥 붙기를 바랐다. 조그마한 여자의 손에는 500원 하나와 100원 하나 총 600원이 있었고, 내 손으로 옮겨지는 찰나였다. 카드에 결제된 금액은 140원. 흑백 프린트 두 장 가격이었다. 나는 다시 동전을 그녀의 손에 넘겼다. 얼마 되지도 않고, 잘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괜찮다고 넣어두라고 했다. 고마워하는 그녀에게 한 마디 건넸다.
“꼭 합격하세요.”
환한 그녀의 미소가 앞으로 잘될 것 같았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시 연결된다. 기계로 가득한 곳이지만, 사람의 향기는 언제나 향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