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의 선물

올해의 크리스마스 산타는 너였구나!

by 한그리 유경미

크리스마스 선물을 처음 받아본 때를 기억하는가.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산타할아버지가 있기를 바라면서 안마당에 이쁘게 손질해둔 화분에 탈지면 솜을 뜯어 장식했던 적 있다. 물론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들었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이 시골 촌구석에도 올 거라고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든 기억이 있다. 평소에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선물을 받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머리맡에는 오백 원짜리 ‘빠다코코낫’ 과자가 있었다. 당시 오백 원은 엄청 큰돈이었고, 선물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받아서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다.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듬직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으리라. 어찌 됐든 산타가 선물을 준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불교를 믿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산타는 없다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산타는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으러 출근한다. 오늘따라 딱 하루만 일을 해야 했고, 단 하루의 대체 근무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낯선 장소에서의 하루 근무, 당황도 하고 아이들의 얼굴을 익힐 새도 없는 틈에 하루는 스르륵 지나갈 터였다. 알고는 있지만, 긴장을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나 스스로 잘할 수 있을 거라 다독이며 긴장을 풀었다. 내겐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선물은 여러 개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그 자체가 첫 번째 선물이었다. 특히나 이브 날이 아니던가. 24일에 단 하루, 일할 기회는 또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일이 정해진 것은 거의 한두 달 전 일이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이제야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선물은 교통체증이 없던 것이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탁 트인 길이 나를 맞이했다. 일을 끝내고 퇴근하는 길의 길은 차가 좀 많았지만, 높은 빌딩들 사이의 불빛들이 나를 크리스마스트리 안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동네 하나가 반짝이는 조명들로 가득했다. 라디오에서는 캐럴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에만 있었다면 절대 누리지 못했을 상황들이 멋지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학교의 위치는 내게 세 번째 선물을 주고 있었다. 강 조망이 보이는 학교의 2층 교실은 내가 가본 곳 중 단연 으뜸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챙기다가도 조금의 여유가 보이기라도 하면 창문 밖의 물을 응시했다. 고요에 찬 물살이 어딘가로 흐르고 있으리라. 사람들의 바쁜 연말을 꾹 닫고 흐르는 강물의 모습에 반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내가 굳이 가장 마지막에 하려고 참고 있던 마지막 선물 이야기다. 오늘 내가 일한 돌봄교실에는 열아홉 명의 아이가 있다. 하루에 많은 아이를 익히기는 물론 어렵다. 그렇지만, 누구누구는 방과 후 수업을 들으러 가고, 맞춤형 수업을 듣고, 몇 명이 교실에 남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름을 외워야 수월하겠지만, 엄두를 내지는 못한다. 명단이 적혀 있는 종이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자리의 아이들을 익힌다. 한 아이가 눈에 띄게 말을 잘한다.

처음 보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친다. 각자의 생각이 다른 아이들의 모습과 바쁜 아이들의 행동을 알아채 보려 한다. 수업이 끝나고 간식을 나누어준다. 많이 먹으라고 이야기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간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한 번 더 권해보고, 먹지 않겠다고 하면 강요할 수도 없다. 몇 명 친구들이 화장실을 간다. 화장실 갈 때 눈에 띄던 아이 이름을 불러주었다. 놀랐는지 아이는 “제 이름을 벌써 외우셨네요.”라는 1학년이 쓰지 않을 법한 말을 사용한다. 나도 놀랐다.

3시부터는 10분 단위로 가야 할 친구들을 파악해야 한다. 방과 후 수업에서 만들어온 물건들을 잘 챙겨갈 수 있도록 언급해줘야 한다. 미리 이름을 불러보고, 빠진 친구들이 없나 확인한다. 4시까지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조금 숨 좀 돌려도 괜찮다. 이제 교실에는 몇 명 남지 않았다. 내가 이름을 외운 그 아이는 4시 30분에 교실을 나간다.

친해질 시간은 단 하루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내게 수업에서 만들어온 초콜릿 과자 로봇을 내게 주었다. 처음엔 거절했다. 집에 가서 부모님 드리고 같이 먹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집에 다 있는 재료라서 엄마에게는 다시 만들어드리면 된다고 했다. 1학년이 맞는가. 그러니 고마운 선생님 드시란다. 그래, 그럼 고맙게 받을게.

아이는 산타가 분명했다. 빨간 옷을 입고, 수염이 달린 할아버지가 아니었지만, 내게 선물을 건넬 수 있던 건 그가 산타였기 때문이다. 올 한 해 나는 슬프고 힘들어도 울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울면 안 된다고 어려서부터 배웠지만, 올해는 조금 울고 싶은 일도 있었다. 아이에게 선물을 받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나는 산타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받았다.”라고 자랑했다.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준 것밖엔 없었지만, 아이는 그게 선물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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