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호
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유연하지 못함이다. 몸도 마음도 모두 그렇다. 남들은 키도 크고 인물도 그만하면 어떠냐고 한다. 그런데도 주눅이 든다.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을뿐더러 고치기도 쉽지 않다.
청소년 시절의 나는 엎드린 채로 손이 발에 닿지 않았다. 아기를 낳은 지금에서야 발이 닿는다면 믿겠는가. 십 대의 나보다 사십 대의 내가 그나마 더 유연하다. 자유자재로 요가를 하는 연예인을 보며 부러워 요가를 배워볼까도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금방 접었다. 요가를 할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도 않았고 돈도 문제였다. 한 달에 1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니 돈 안 드는 운동을 찾았다. 그렇지만 혼자 운동하며 유연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늘 뻣뻣한 사람이었다. 몸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마음도 언제나 꼿꼿하게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준비해서 계획대로 해야 했다. 내 뇌 안에는 정해진 틀이 있어서 같은 시스템대로 진행이 되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진정됐다. 급작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곧바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후엔 곧 ‘정지’였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직선처럼 내 몸은 곡선을 원하지 않았다.
직선은 한 점에서 다른 점까지 곧게 뻗은 선을 말한다. 반대로 곡선은 이리저리 마음대로 움직이고 도착한 선이다. 직선은 많은 선 가운데 가장 최단 거리다. 이를테면 지름길이다. 나아가기 위한 최선의 빠른 길이다. 반면 곡선은 선을 긋는 사람 마음대로 나아간다. 점에서 멀어져 동그라미 모양을 그릴 수도 있고, 점보다 더 먼 곳으로 나갈 수도 있다. 창의적인 사람이 유연함이 있다고 했으니 곡선을 그리는 사람은 창의적이지 않을까.
직선형 인물은 한 가지에 목표가 정해져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정해져 있으며 한 곳에 집중한다. 앞이 가로막혀 있어도 막힌 부분을 뚫고, 터널을 만들면서도 반드시 해결해 나아간다. 하지만 곡선형 인물은 하나의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 정해져 있는 방향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기도 한다. 앞이 가로막혀 있다면 옆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다른 방향도 살펴본다.
가족과 함께 얼마 전 산행을 했다. 예상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내려오려면 약간 빠듯했다. 밥은 꼭 먹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우리는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산을 좋아하는 남편과 빠른 걸음인 아이들에 비해 내 걸음은 한없이 느렸다. 머릿속은 온통 ‘목적지는 정상’이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날다람쥐 같은 남편은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도 여유 있게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볼 새가 없었다. 빨간 단풍이 어쨌는지, 노란 이파리가 인사를 하고 있는지 보지도 못했다.
겨우 정상에 다다랐다.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주변은 온통 민둥산에다 흙투성이였다. 사람들이 올라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웃고 있었다. 잡초조차 자라지 않는 정상이 뭐가 그리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남편은 풍경을 보지 못한 채 올라온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내려갈 때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자고 했다. 여유롭게 옆을 바라보면서 내려가자 다짐했지만, 결국은 또 직선형 인간이라 앞만 보고 달렸다. 달리지는 않았으되 내 목표는 ‘하산해서 점심 먹기’였다. 굳이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목표를 정했으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게 내 성격이다.
이제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은 최종목표인 수능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최종목표라니, 그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인가. 백세시대라는 말처럼 백 살까지 산다면 이제 겨우 스물이 되는 청소년들의 수능이 마지막이라 할 수 없으리라. 이제 시작인 학생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꼴이다. 수능이 이미 ‘끝’이라는 생각에 점점 더 무력해지고 남은 인생을 향해 전진하는 학생은 없을 듯하다. 안타깝게도 수능이 끝난 후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포기하는 예도 있으니, 이런 현실이 슬프다. 수능도 중요하지만, 시험을 잘 보지 못한들 어떠한가. 그 앞에 또 다른 흥밋거리와 재능을 찾아낼 수도 있으니 시험 걱정하고 고민만 하는 일은 미래를 위해 조금 미뤄두어도 좋다.
최근 미국으로 수출까지 된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칠십 대가 넘어서도 세계 여행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어르신들의 여행기다. 늦었다고 생각한 이들의 행보에 웃음과 박수를 선사한다. 곡선과 같이 많은 경험을 직접 느끼며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나이를 불문한다는 뜻이다. 우리 인생에 최종의,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걸맞지 않다.
유연하게 곡선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융통성도 있고 재치 있게 넘길 수 있는 재주도 있길 바랐다. 하지만 나쁜 일이라고 하지 말라는 일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대학만을 목표로 살았던 일이 약간의 후회로 남았다. 고집불통 직선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직선은 나를 지름길로 안내한다. 단지 직선뿐 아니라 곡선도 필요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그조차 내 결정이다. 그래서 지금 이제야 내가 해보고 싶었던 국문학도 배운다.
곡선처럼 다양하고 유연한 경험들이 나를 살찌게 한다. 목표를 갖되 여러 방면에서 접하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직접 부딪쳐보아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나 역시 실패해가며 또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직선적이다. 그래도 예전보다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능력은 생겨난 듯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연륜이 아니던가. 연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나는 아직 젊다. 아니, 젊다고 생각하고 있다. 등단한 수필세계에서는 80, 90세의 나이로 활동하는 분들도 많으니 그 사람들에게서 듣는 젊어서 좋겠다는 말은 어쩌면 앞으로 수필을 더 오래 쓸 수 있다는 긍정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른 등단은 더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방송대 국문학과에 문을 두드렸다. 국문학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꽤 받았다. 여타의 사회복지학이나 다른 학문을 배워서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과를 선택해야지, 쓸모도 없는 국문학을 왜 배우냐는 식의 질문이 대다수였다. 나의 답변은 심플했다. 20대에 가고 싶었던 과였고, 지금도 배우고 싶은 학문이었노라고. 국문학을 하면서 배움은 끝이 없음을 절실히 느꼈다. 대학 못간 서러움을 이곳에서 풀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보았기 떄문이기도 하고, 나이는 중요하지 않음을 또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공부하는 동안 함께 배우는 학우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스터디에서 주도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졸업하는 때에 다른 해보다도 많은 분들이 졸업을 했다. 그 후에 다른 과로 재입학이나 편입하는 분들도 있었고,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분들도 있었다. 배움의 기쁨이 이어져 더 깊은 학문을 접하려고 하는 분들이었다. 나는 국문학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이를 완수했다는 기쁨에 더이상 학교를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위해 학점은행제를 하고 아동학을 이수했다. 내가 세 아이들을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그럴 지도 모르겠다.
당시 이 글을 쓸 때는 방송대 국문과 4학년일 때다. 전국 방송통신대에서 주최하는 스터디 대회에서도 입상했다. 스터디 모임들 중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보여주는 대회였다. 스터디하는 모습을 사진과 자료 등으로 입증하여 보여주는 등 접수를 하는 방식이었다. 확실히 이런 일들은 접수부터 파일을 보내는 등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니, 나이가 젊을수록 유리하다. 공부 의욕을 높여줄 수 있는 계기였고, 이를 통해 우리는 바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동기님들과 스터디할 때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배움, 특히 함께 배울 때 기쁨은 배가된다.
내가 그때는 직선길로만 가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요즘 새삼 깨닫는다. 나조차도 곡선의 길로 돌아서 돌아서 가고 있음을. 7년 전의 그때도 실패해가며, 지금도 마찬가지로 실패하지만 또 시도한다. 지금도 여전히 늦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실패해가며 또 시도하고 있다. 아직은 그래도 괜찮다.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