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호
발걸음은 송내역을 향했다. 서창보다 송내가 더 만나기 수월하다는 의견이 있어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이라도 안부를 묻기로 했다. 이제는 함께 할 날들이 짧다는 것에 모두 아쉬워했다. ‘안녕安寧’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오늘도 길을 나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 6개월의 시간 앞에 우리도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다.
우리 집부터 송내역은 멀지 않다. 사실 전에 다니던 서창 글쓰기 수업 교실에 비해서 가깝다. 버스를 타고 주안역까지 간 후 전철로 송내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우리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다. 먼저 앱으로 검색했다. 갈아타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40분에서 45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서창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족히 한 시간을 갔다. 일주일에 한 번 가까운 나들이를 가는 서창보다 수월한 거리다.
처음 송내로 가기로 한 날이었다. 내 평생 송내에서는 한 번도 내려 본 일이 없었다. 송내가 어떤 동네인지도 몰랐고, 그저 서울로 가는 전철 안에 노선 중 한 곳이라고만 느끼고 있는 터였다. 지도 앱에 40분이라고는 나와 있으나 초행길이 걱정이었다. 빠듯하면 안 될 듯하여 20분여 시간을 여유로 잡고 집을 나섰다. 성격이 성격인지라 미리미리 준비하는 아버지를 닮은 나 자신을 보며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아파트 단지 안을 지나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늘상 자주 오던 버스는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정류장의 나무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이가 나 홀로이니 분명히 좀 전에 지나간 듯했다. 5분 정도가 지나 정류장 안내표시창에 ‘11분 후’라는 버스의 도착 소식이 떴다. 휴대폰을 꼭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가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두 발은 저절로 앞서나갈 듯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버스를 부르는 내 발의 외침에 대답하기라도 한 듯 로터리를 지나는 버스가 느릿하게 시야에 보였다.
버스를 타고서도 휴대폰을 눌러 시계를 재차 확인했다. ‘늦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불안하기만 했다.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오직 나만이 사는 세상은 아니기에 다른 사람의 삶도 중요하다. 늦을까 봐 벌써 미안했다. 내 마음을 아는 듯 신호등 앞에 선 버스는 초록 불로 바뀌자마자 엑셀을 밟아 속력을 냈다. 그래 빨리 가자.
주안역 앞에 선 버스는 나를 두 갈래 길에 내려주었다. 지상으로 올라가서 탈 것인지, 아니면 바로 앞 지하상가를 통해 갈 것인지 정하라 했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지상으로 향했을 것이다. 지하는 좋아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상가는 질색이었다. 평소 백화점이나 아웃렛도 필요한 것만 사고는 얼른 빠져나온다. 그렇지만 오늘은 내리자마자 지하상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빠른 걸음으로 전철역에 들어섰다. 오전 시간이라 이미 출근하는 이들은 없었고, 발걸음이 여유로운 사람들이 많았다. 교통카드를 찍는 순간 전철이 들어오는 알림이 들려왔다. 서울행 전철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한숨이 내 앞을 막아섰다. 반대편에서 열차가 촐랑대며 도착하고 있었다. 나를 놀려대듯 입을 벌리며 웃어댔다. 숨을 이제야 몰아쉬며 급행열차가 온다는 말을 들으며 안심했다. 전철역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였는지, 초행길이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길기만 했다.
오늘도 몇 주 전과 마찬가지로 길을 나섰다. 마지막 모임 날인 오늘, 그때의 설렘보다는 어떤 말로 위로를 하며 헤어져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평상시대로 늘 그렇듯이 인사를 한다는 일이 쉽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자주 만나자고 이야기해도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며, 일정을 맞추며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지금도 그때처럼 버스를 기다렸고, 지하상가를 통했고, 급행열차를 탔지만 그날 만큼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짧게 느껴졌다.
식당에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셨어요?”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사정이 있어 지난주에는 참석하지 못해, 인사는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정답게 나누면서도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제 앞으로는 고정적인 만남이 사라지므로 각자 다른 어느 위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어둡게 했다. 전화만 하면 바로 만날 수 있고 마음만 있으면 연락이 가능한 시대에 살면서도 헤어짐, 이별은 그저 아프다. 고가의 맛있는 점심이었음에도 자리에 일어설 때는 맛이 되뇌어지지 않는 것은 슬픔의 맛이 차오르기 때문이었으리라. 또 만나자는 다짐으로 웃는 안녕을 고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던 특급열차가 나를 반기며 10분 만에 주안역에 데려다 주었다.
만남은 길고 헤어짐은 그렇게 짧다. 다시 만날 것을 알면서도 편안한지 안부를 묻기는 그리도 어렵다. 여러분 모두 안녕安寧하시지요.
인천의 지역 중 서창이라는 동네는 도심권에서 좀 멀어서 자주 갈 일이 없다. 그런데, 내가 등단하기 전후로 그곳에서 수필수업을 했다. 어릴 적의 신기루 같은 글쓰기 수업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글을 쓰는 기초를 단단히 할 수 있는 기회여서 얼른 참여했다. 일주일에 한 번 서창을 가는 일은 즐거웠다. 매주 나들이하는 기분이었고, 점점 친해지는 사람들과의 글쓰기 합평 시간은 행복했다. 그러다가 일정이 끝나는 때가 오게 되었다.
안녕을 말하러 가는 기분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쓴 글이다. 짧다면 짧지만 누군가와 정을 나누기에는 충분한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이 성장했다. 처음 가는 길처럼 설레는 일은 없지만, 헤어짐을 염두해두고 가는 길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앞으로의 일정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마지막 만남은 아쉬움이 크다. 어찌저찌하여 글쓰기 수업은 5년 정도 더 이어졌다. 끝남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다시 만들고, 유지시키는 노력을 했다.
지금은 글을 혼자 쓰고 있기는 하지만, 나의 글을 읽어주는 이가 있음을 행복하게 여긴다. 나를 아는 누구에게든 편안한 하루하루가 되도록 안녕하세요, 라는 평범한 인사를 보내본다.
안녕하시지요? 전 잘 있습니다. 날도 추워지는데, 감기걸리지 않도록 건강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