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支持臺

2019년 가을호

by 한그리 유경미

위로 향한다. 해가 내려가도 줄기는 지지대支持臺를 꼭 붙잡고 위로 나아간다.

또 한 번의 봄 시작과 함께 우리 집 작은 텃밭은 바글댔다. 지난겨울에 아는 이로부터 받은 더덕 선물이 반가워 한 뿌리를 시험 삼아 흙속에 묻었다. 누군가는 더덕향이 온 집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체 대화방에서 사진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식물은 만만해 보이는 녀석이 아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왠지 물을 자주 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번 볼 일을 두세 번은 더 바라볼 것만 같은 느낌에 새로웠다.

일주일쯤 지나자 더덕은 팔을 뻗어 나를 쳐다보았다. 귀여운 첫 잎들은 나에게 봄을 알려왔다. 여린 것들은 나를 베란다 창으로 유혹했다. 봄이면 연둣빛은 늘 좋았다. 유혹에 못 이겨 시간이 날 때마다 더덕을 보러 갔다. 주변의 화분들은 여린 잎사귀의 덤으로 한 번 더 보았다. 메마르게 키워 볼품없었던 선인장과 겨우내 얼었지만 분갈이를 채 해 주지 못했던 산세베리아에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기회가 생겼다. 모두 더덕의 덕德이다.

어린 시절 도라지는 밭 끄트머리에 늘 심어져 있었다. 하지만 더덕은 먹기도 귀한 식물이라 처음 먹어본 건 아마 결혼해서 몇 년 되지 않을 때였다. 그러고 보면 도라지꽃을 자주 보면서도 먹어본 일은 몇 번 없다. 잔칫날이나 생신 때 올리는 귀한 반찬이기도 했고 어릴 때는 씁쓸한 도라지 무침을 좋아할 리 없었다. 쓴 맛을 싫어하는 어린 입맛에 도라지는 그저 상을 채우는 반찬 하나에 불과했다. 더덕을 처음 먹어 본 기억은 이십 대 중반 즈음이었던가. 다른 이의 결혼식에 빨갛게 펼쳐져 있던 놈이 있었다. 귀한 음식 더덕이라고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더랬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님의 밭자락 끝에 5년 이상의 더덕이 묻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봄이 되기 전 단단하게 언 흙을 삽으로 깨치고 아버님은 며느리들을 위해 손수 흙속의 보물을 꺼내셨다. 한참을 꺼내보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다는 어머님은 노심초사였다. 잘 키워내지 못해서 자식들에게 더덕 본연의 맛을 보여주지 못할까 봐 그러실 게다. 흙속에서 진주는 빛났다. 흙을 털어 바구니 한가득, 산삼보다도 진한 마음을 담아 밭에서 내려왔다. 쓴 맛이 전혀 없었다. 더덕에 대한 편견이었겠지. 도라지만 먹어 본 나로선 신선한 더덕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고 말았다.

지금은 도라지도 맛있고, 역시 더덕도 맛있다. 나이 탓인가. 하얗게 볶아도 맛있고, 두들겨 빨갛게 구워도 맛있다. 오이랑 새콤달콤하게 무친 것은 술을 부른다. 쌉싸름하지만 달큼한 맛 속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요리를 할 줄 알면서 맛이라는 녀석에 흥미가 생겼다. 궁금해졌다. 더덕에게 관심이 갔다. 키워보고 싶었다. 작은 화단에 쏙 박혀 그는 지금 쑥쑥 성장하고 있다.


도라지와 더덕이 비슷한 형태의 식물일 거라는 오해를 떨쳐버렸다. 더덕은 하나의 줄기가 흙에서 나오면서 주변의 것들을 칭칭 감고 올라간다. 반면에 도라지는 곧게 뻗어 새싹 하나가 곧장 하늘로 솟구친다. 더덕이 자라는 모습은 실제로 처음 보았다. 지인으로부터 더덕을 받고 나서 먹을 생각만 했지, 키워봐야 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sns에 누군가의 자랑컷을 보고 나서야 ‘나도 한 번?’ 했으니 질투는 어찌 보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떡잎이 나오자마자 순은 쑥쑥 컸다. 손 정도의 길이가 되었을 때 지지대支持臺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에서 굴러다니던 아들의 나무 막대기를 이용했다. 시골 갔을 때 칼싸움하려고 구해온 거라나. 아들의 방 안에서 언제 치우나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허락을 받고 화분에 꽂아두니 딱 좋았다. 잘 어울렸다. 받쳐주는 기둥이 생기니 한 달 새에 두 자 길이의 막대기를 죄다 잡고 올라왔다. 더 높은 지지대로 무얼 해주나 고민하다 피자를 먹고 남은 빨간 끈으로 베란다 천정과 연결했다. 처음에는 피자끈을 발견하지 못하고 들어오는 바람에 휘청휘청했다. 끈을 묶은 지 닷새쯤 되었을 때 지지할 곳이 있음을 인지하고 안심하는 눈치였다.

내 결혼은 내 남편은 지지대支持臺였다. 스무 살, 대학을 위해 둥지에서 벗어났다. 1,2년은 좋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그럼에도 나의 고민과 걱정을 풀어줄 누군가는 없었다. 인생은 혼자라고 누가 그랬지만 역시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부모님께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죄송했다. 어렵게 농사지어 번 돈으로 대학 유학까지 가서 힘들다고 투덜댈 여유가 없었다. 그때 지금의 남편이 있었다. 함께 좋은 것을 이야기하고 아픈 것을 털어놓고, 결국 많은 반대에도 결혼했다.

위로 향한다. 인생의 해가 지고 있을지라도 그를 꼭 붙들고 위를 올려다본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자니 쓸 말이 많은데, 생각을 역시 많이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지금 쓴다면 훨씬 더 잘 쓸 텐데 하는 아쉬움이 꼬리를 문다. 더덕의 지지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더덕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주제를 흩트리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딘가에 떨군 내 한 조각의 글을 보듬고, 이렇게나마 하고픈 이야기를 해본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더덕을 본 기억이 없다. 얼마나 귀한 식재료였는가.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세 며느리를 위해 꽁꽁 언 땅에 삽을 찍었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성장하다가 겨울이 되면 성장을 잠시 쉬고 숨을 고르는 동안 우리를 위해 캐내시는 거였다. 더군다나 5년은 넘게 묵은 더덕이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더덕이었는가. 제대로 된 더덕을 그때 처음 본 걸로 기억한다. 아마 이전에 더덕을 봤다 한들 나에게 잘 모르는 식재료라 의미가 별로 없었기에 아마 기억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그 더덕을 캐내 바로 씻어 초고추장에 그대로 찍어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보들보들한 감촉과 은은한 더덕의 향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느 산이라도 유명한 곳을 가면 길목에 더덕을 깎아서 파는 어르신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최근까지도 어느 산자락 입구에서 파는 더덕 한 봉지를 꼭 사야만 집에 오곤 했다.

더덕의 지지대로 사용된 나무는 둘째가 어릴 때 시골 가서 가져왔던 막대기다. 완전히 일자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른 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된 성인 허리까지 오는 정도의 길이로 되어 있다. 칼싸움을 좋아하던 둘째가 우리 부부 몰래 제 방에 가져다 놓았으니, 나름 도시인 집에서 구할리 없었던 나무가 방 안에서 발견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겠는가.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좋아하던 나무였고, 방 안에는 의젓한 플라스틱 장난감 칼도 두세 개가 꽂혀 있었다. 아마도 그 칼이 생겼기 때문에 나무칼은 버려도 되었을 듯싶다. 마침 뻗어나가는 줄기를 지탱할 수 있는 나무로 사용했으니 얼마나 요긴했나 모른다.

나의 버팀목이고 지지대가 되어준 남편 이야기는 종종 내 수필에 나온다. 수필 쓰는 사람 중 기억력이 제일 안 좋은 사람이 내가 아닐까 싶다. 메모를 하라는데도, 그때뿐이고 어린 시절 기억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래서 수필에 등장인물 중 최다출연이 남편이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아껴볼까 한다. 서로의 지지대로 살아온 지 올해로 22년째다. 남들보다는 일찍 결혼한 셈이지만, 어쩌면 잘 모를 때 결혼을 해서 일찍 자유로워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의 자존감은 많이 떨어지고, 사회로 나갈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짧게나마 돈을 벌고, 국문과를 다니고, 수필을 배워 쓰는 것들 모두 지지대의 힘이 컸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해라 마라 할 위치는 아니지만, 홀로 성숙할 수 있다면 굳이 결혼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결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신 육아와 살림을 하는 동안 떨어지는 자존감을 남편이 잘 살펴서 올려줘야 한다. 아직까지도 빠지지 않는 뱃살로 마음 다치게 말하지 않아야 하고,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봐 걱정할 때 배우자는 용기를 북돋우고, 사랑받을 수 있는 충분한 사람임을 되새겨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함께 육아를 끝내고 손잡고 노후를 신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라면 평생을 같이 심심하지 않게 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서로 지지해 주는 부부로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큰 축복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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