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장尋牛莊

2019년 겨울호

by 한그리 유경미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고자 이곳을 찾았습니다.


님이여, 당신을 보았습니다.

서울을 가끔 가면서도 당신을 만날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주어야 하며 여러 의견을 종합하다 보니 이제껏 모른 체하고 있었죠. 몇 달 전 당신의 발자취를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였지요. 마침 3·1 운동 백 주년이기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당신의 옅은 미소가 내 마음을 그렇게 요동치게 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 난 당신에게 푹 빠졌습니다.

님이여, 나의 길.

결국 홀로 시간을 내고 당신을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올라오는 태풍에 흔들리는 바람과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 어둡게 내려앉은 구름으로 가는 길을 망설이기도 했죠. 가도 될까라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내 발길은 버스 정류장과 전철을 향했습니다. 4호선 한성대 입구 역 5번 출구를 오르는 계단에서부터 당신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당신의 향기에 취해 마을버스를 향해 얼른 뛰어올랐죠. 처음 타 보는 작은 마을버스에 놀라 버스카드인식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둥대다 기사님께 어디에 카드를 찍어야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저 참 바보 같죠. 이십여 년 전 나의 인연을 만나러 갈 적에도 이러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절실히 그리워하던 옛 연인을 만나는 그 느낌에 벅차기만 했습니다.

님이여, 당신은.

마을버스를 타고 바라보는 풍광은 아름다웠어요. 성외곽이 동네라 저 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늘 보던 서울은 아니더군요. 성벽이 보이는 산 밑 아기자기한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니까요. 성벽을 타고 언덕을 숨 가쁘게 오르는 버스를 밀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언덕 끝에 버스가 섰습니다. 당신을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표지판이 보입니다. 당신을 보기 위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1930년대의 당신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산비탈을 올라 집을 지은 당신은 어떠했을까요. 지금이야 마을버스도 있으니 오르지 쉽지만, 굽이굽이 펼쳐진 골짜기의 산속에 걸어가는 느낌을 알까요. 당신의 그 시간을 내가 알까요.

님이여, 오셔요.

버스에서 내려 집과 집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안내판이 그곳을 향하더군요. 이웃들이 늦은 아침을 먹는지 냄비를 두드리는 소리도 들렸고, 텔레비전 소리도 났습니다. 실례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더 숨죽여 살짝 발을 디뎠습니다. 작은 갈래 길 앞에서는 어느 쪽일까 당황도 했지요. 비도 잠시 주춤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분홍 무궁화가 당신의 집 앞임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심우장尋牛莊, 바로 당신의 마음과 몸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급하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대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제야 당신을 만납니다.

님이여, 알 수 없어요.

당신을 보러 오는 이들을 위한 배려로 마당 앞에 벤치가 있습니다.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당신의 집을 바라봅니다. 편히 쉬다 가라는 의미였는지 한줄기 햇빛이 비쳤습니다. 관리자 외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남쪽의 뒷산이 태풍에 흩날립니다. 바람결에 이마의 땀도 가시고 시원합니다. 집이 아늑해 보입니다. 총독부 건물을 보지 않겠다는 의미로 북향으로 지었다죠. 당신의 의지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벤치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언덕 아래로 수많은 집들이 빼곡하게 보입니다. 그때도 그랬겠지요. 일제의 총칼에 휘둘리는 백성들을 돌보고자 하는 마음도 들어 있지 않았을까요. 난 당신을 잘 몰랐습니다. 지금도 잘 모릅니다. 여기 와서 당신의 자취를 느끼며 더욱 알고 싶어 집니다.

님이여, 당신은 모르겠죠.

한 달 전 시댁 근처에 있던 홍성의 생가지를 다녀왔습니다. 당신께서 140년 전 태어난 그곳을 말이죠. 서대문형무소에서 당신의 출생연도를 보면서 참으로 기뻐했습니다. 1879년, 바로 내가 태어난 해는 1979년이었거든요. 내가 태어나기 백 년 전 같은 해에 당신은 홍성에서 태어났구나 생각하며 집 안팎을 보았습니다. 시골의 냄새가 납니다. 산을 벗하며 있는 촌에서 태어난 집에 당신이 뛰놀고 있을 때를 상상했습니다. 지금과 달랐겠죠. 나처럼 당신은 아마 맘 편히 놀지 못했겠죠. 당신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심우장尋牛莊에 와서야 눈물이 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홍성에서는 해가 너무 따가워 오래 있지 못했어요. 남편이 빨리 가자는 통에 더욱 아쉬웠습니다. 홀로 나선 오늘, 흐리고 간간히 비 내리는 좋은 날 와서 오래도록 당신을 느낄 수 있었네요.

님이여, 가지 마셔요.

당신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어요. 한참을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어깨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당신의 손길 같았습니다. 괜찮다고, 나를 알아주니 고맙다고 하는 듯했어요.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나 봐요. 당신의 손에 떠밀려 우산을 쓰고 대문을 나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걸어가야 할까 봐요. 당신이 걸었던 그 길 속에 나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수없이 오르내렸을 가파른 언덕길에 당신의 짐을 덜어주고 싶습니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얼른 집에 가라 재촉합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당신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지만, 나는 그 침묵 속의 외침을 찾아 또 가겠습니다.


<창작노트>

우리나라에 한용운 시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시인을 만나고 싶어서였습니다. 죽은 사람을 어찌 만나느냐고 묻겠지만 나는 이미 만나고 왔습니다.

한용운 시인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인의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국문학을 하면서 와닿았습니다. 우연히 가게 된 서대문 형무소에서도 그를 만났습니다. 그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벼르다가 시댁 근처에 있는 충남 홍성 한용운 생가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생가와 가까워지면서 시인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잠깐의 시간으로, 시인과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을 새도 없이 돌아와 아쉬움이 컸습니다. 결국 홀로 심우장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느꼈던 ‘님’과 40대가 되어 느끼는 ‘님’은 분명 다릅니다. 어쩌면 내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 달라졌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각 문단마다 앞에 제목을 둔 것은 한용운 시인의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된 시 가운데 마음 가는 제목을 덧붙여 시인의 마음을 조금 엿보려 하였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만 그를 향한 마음을 그는 알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서울 성북구에 한성대역입구에서 나와 산중턱으로 올라가면 '심우장'이라는 곳이 있다. 한용운 시인이 노년기에 항일활동을 하면서 생활하던 곳이라 했다. 일부로 북으로 창을 내어 조선총독부를 등지고 지었다는 이곳 심우장은 그의 결의를 느끼는 공간이다. '심우장'은 불교용어로 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하며 깨달음과 연관이 있다. 태풍이 오기 이틀 전쯤 찾아간 내가 본 심우장은 태풍 같은 커다란 바람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당 한쪽 긴 의자에 앉아 그가 앉아 있고, 생각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멍하니 있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근처에는 길상사라고 절도 있어 그쪽으로 여행 갈 기회가 있다면 함께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나의 글 곳곳에 '님이여'라고 외치는 곳 오른쪽에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의 길, 당신은, 오셔요, 알 수 없어요, 당신은 모르겠죠, 가지 마셔요.' 등의 문장들을 적었다. 아는 이들은 알지 모르겠다. 한용운 시인의 시 제목들을 찾아 나열하였는데, 시인을 만나러 가면서의 감정들을 그에 맞는 제목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통해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홍성에 한용운 생가는 얼마 전에도 다시 찾아간 적 있었다. 예전에 갔을 때보다 더 넓고 부드럽게 펼쳐져 있었다. 처음 갔을 때는 조성이 이제 시작이었나 보다. 그리고, 몇 해 전에 인제에 자작나무 숲을 보러 가자고 해서 간 일이 있었는데, 근처 백담사에서도 한용운 시인의 자취를 느끼고 왔다. 당시 한용운 시인에 대해 쓰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수필의 형식을 연인에 대한 편지로 잡았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통해 시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자 한 의도가 있다. 결혼 전 연애 시절, 남편에게 몇 통의 편지를 한 일이 있다. 연애편지라는 것이 나의 사사로운 일상까지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구구절절 별 이야기를 다하기도 한다. 소소한 일을 하면서도 그대의 모습이 떠오르고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한다. 시인의 생가를 갈 때의 마음은 그때와 같았다. 늘 그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배우고 싶은 시인이었다. 남성임에도 한없이 여성스러운 시가 돋보인 시인의 말투를 보면서 시대의 상황에 얼마나 아픔을 느끼고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동감했다. 시는 한없이 연약하게 표현하여 상황에 대한 아픔을 그리지만, 그의 운동에는 끝없이 투쟁해 오는 삶이 역설적이면서도 당연해야 했던 시인의 결단력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마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앞에는 바람 앞의 등불만이 있었겠으나 그 등불을 유지하기 위해 싸워나갔으리라. 가끔, 내가 그 시대의 문학가였다면 그렇게 항일운동을 병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인제에서 보았던 의연한 그의 동상과 마주한다. '나룻배와 행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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