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뜯으며

2023에세이포레 창간 40주년 대표작 선집

by 한그리 유경미

크기가 작아진 청바지 뭉치를 내놓는다. 그냥 버리기도 아깝거니와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아들딸이 가져온 청바지가 제법 된다. 재봉틀을 조금씩 시작하면서 옷감들을 그냥 버릴 수 없다. 청바지의 시접들을 쪽 가위로 뜯어낸다. 집게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청바지 사이의 실밥들을 잘라내면 다시 사용할 정도의 청바지 분량이 산더미다.

재봉질을 시작한 지 1년이나 되었을까. 아는 분이 재봉틀로 작은 소품들을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고 팔기도 하는 걸 보았다. 멋진 취미구나 생각하면서 나도 다시 할 수 있을지 그분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쓰던 천을 한 가방 주면서 일직선으로 박음질 먼저 연습해보라 했다. 기초를 배워야 무엇이든 늘고 할 수 있다나. 발로 밟으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바늘이 무서워 손절했던 재봉틀이었다. 결혼 초 남편이 큰맘을 먹고 사준 재봉틀이 15년 만에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홈쇼핑에서 방송하는 재봉틀을 보고 있었다.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남편에게 재봉틀의 좋은 점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용기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남편은 내 말을 귀담아듣고는 어느 날 부라더 미싱과 수납함을 양손에 들고 퇴근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비싼 재봉틀이고 이름이 있어 좋았다. 동시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난감했다. 남편은 근처 재봉틀 수업을 알아보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얼마 후 남편은 왜 하지 않느냐며 재봉틀 사용을 재촉했다. 사 온 지 며칠이 지나도 방 한구석을 차지하며 먼지를 맞고 있는 재봉틀이 남편 눈에는 의아했을 듯싶다. 내가 재봉을 하겠다고 말해서 사 온 것인데, 말을 하지 않았으면 구매하지 않았을 일이다. 하고 싶어 하면 배워야 하는 것이 맞다. 배우려는 의지가 없었나 모르겠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잘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가. 배우려는 노력이 없고 끈기도 없다고 생각했을까. 괜히 사 왔나, 돈만 쓰고 아깝다. 어쩌면 남편은 이렇게 사다 준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에는 아이러니가 가득했다. 아이들이 어려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당시였다. 젖먹이들이 있었고, 늘 피곤했다. 육아 이외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했다. 무언가 해 나갈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재봉을 할 여력은 없었다. 천을 살 돈도 없었다. 그저 아이들의 파자마나 원피스를 만들고 싶었다. 직접 만들어 입히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나 역시 답답했다. 사용하고 싶었다. 하고는 싶은데 경험치가 없었다.

그러구러 15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제 일은 본인이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나 역시 손 글씨를 배웠다. 아동학을 배웠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국어국문학을 수학했고, 수필을 쓰기 시작했으며, 수필가가 되었다. 무언가 끊임없이 배우는 일은 나를 더욱더 배움 속에서 허덕이게 했다. 배워야 삶이 더 완성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 배워나갔다. 배우면서 집중하고 더 많은 것을 해내는 동안 나는 더욱 성숙해진다고 느꼈다.

국문학을 함께 한 지인은 재봉틀의 시선 속으로 집중하게 했다. 유튜브는 재봉틀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남은 자투리 천을 연결해서 처음 박음질을 시작했을 때는 재봉틀 자체에 공포감을 버리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응원은 중요했다. 그렇게 배워가는 거야, 라며 지지해 주는 지인은 든든했다. 컵 받침을 먼저 만들어보라는 지인의 도움은 적중했다. 열 개가 넘는 컵 받침으로 조금씩 두려움이 사라졌다. 미세한 발동작으로 바늘 움직임의 빠르기를 조작할 수 있을 무렵에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거운 재단 가위를 하나 샀다. 천을 자르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가위가 있어야 한다며 좋은 걸 사라고 추천해 준 지인이 고마웠다. 가위로 천을 자르는 느낌이 신기했다. 무거운 가위가 전혀 무겁지 않았고, 슥슥 잘려나가는 천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뉘어 무언가 만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위질이 잘 되지 않았다면 삐끗 다른 방향으로 잘렸을 천들이다. 섬세하지만 투박한 재단 가위는 방향의 끝이 확실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직접 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느꼈다.

유튜브 동영상에는 재봉틀 동영상이 많았다. 특히, 다양한 가방을 만드는 영상들은 나를 빠지게 했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부터 다양한 디자인의 가방 혹은 복잡한 모양의 영상도 있었다. 천천히 영상을 보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정지하고 다시 만들고 또 재생하면서 함께 가방을 만들었다. 영상에서 만든 가방을 똑같이 만들면서 창작의 기쁨을 느꼈다. 비록 모방한 작품이지만 내가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니, 왜 가방이나 건축 디자인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참 좋은 세상이다.

청바지 조각조각을 이어서 천의 한 면을 만들었다. 천과 천이 연결된 곳에는 청바지의 결이 살아있도록 송곳으로 세세하게 뜯어주기도 한다. 청바지의 멋을 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다. 안감과 겉감을 따로 재단해 연결한다. 힘이 없는 곳은 하얀색 속지를 넣어 단단하게 만든다. 사용하기 편하도록 가방 안쪽 주머니를 만들고 지퍼를 붙인다. 가방의 형체가 될 즈음 겉면에 지퍼를 달고, 적당한 길이로 가방끈을 만들어 붙인다. 예쁘진 않아도 완성된 가방에 뿌듯하다. 이걸 내가 만들었다니.

무언가 만든다는 것은 그 물건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누군가 만들어놓았던 청바지의 남은 천을 다시 뜯으며 또 다른 자기 모습을 들여다본다.


처음으로 재단가위를 사서 자를 때가 생각납니다. 서걱서걱 잘도 잘려나가는 천은 쥐도새도 모르게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가위는 그 무게감으로 올곧게 나아갑니다.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의 나는 핑계가 산더미였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올곧게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무게감을 가져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을 때여서일까요. 그땐 나를 존중하는 마음도 부족했었나 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거라는 생각에 아이나 열심히 키우자,라며 다독이곤 했거든요.

남편은 본인이 더 위축되어 있고,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하겠지만 전 그 반대였습니다. 내가 할줄 아는 것이라고는 남편과 만나 아이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고, 그저 돌보는 것뿐이니까요. 그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남편은 늘 날 다독였습니다. 본인이 육아를 함께 하지 못했다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학원 등에 의지하지 않고 얼마나 잘 키워냈냐며 날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해줬습니다. 말은 결국 씨가 되어 정말 그렇게 믿게 되었고요.

현재 내가 일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도 너무 재촉하지 않는 남편이 정말 고맙습니다. 외벌이로 살기에 정말 더 아껴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나도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뛰어드는 용기조차 만들어준 사람이니까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곁에서 응원한 남편에게 늘 감사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수필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재봉틀은 그렇게 잘하지 못합니다. 요즘 또 소홀한 일 중 하나입니다. 가끔 남편의 바지를 살 때 단 줄일때 사용하곤 합니다. 그 정도면 실력은 많이 향상된 편일 수 있겠네요. 밟으면 자동으로 바늘이 움직일 때 빠르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니까요. 만드는 일은 다방면에서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천들을 붙이며 나름의 무언가가 창조되어지는 그 형태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여전히 무얼 만들면서 나는 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방이든, 수필이든, 밥이든 말이죠. 에세이포레 수필연재를 통해 나는 무언가를 잘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독자님들에게도 제가 아이도 잘 만들고, 요리도 잘 하고 수필도 일취월장하는 게 느껴지셨길 바라며 연재를 마칩니다. 나를 알아주는 좋은 연재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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