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국수필 7월호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도 정면으로 마주 볼 수가 없다. 감출 것도 없고 당당한 데도 그에게만은 똑바로 바라보기 어렵다. 그와 마주보기, 무엇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오래전부터 그랬다. 어느 절이고 만나는 부처상을 바라볼 때면 몰래 슬쩍 바라만 보고 돌아왔다. 부처님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힐끔 보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부모님이 불교를 믿으시고 절을 다니니 어려서 절에 다니는 건 익숙했다. 법당 안에 들어가 인사라도 드리고 나오는 건 어떠냐고 가족들은 말한다. 못할 건 없지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싫다고 한다.
공(空)의 상태를 좋아한다. 절간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집이 조용한 상태가 되면 편안할 때가 있다. 텔레비전 소리도, 가전제품 소리도 교통체증인 양 답답하여 조용히 TV를 끈다. 번뇌(煩惱) 없이 바라보는 베란다 화분에 시선이 향한다. 말없이 들어주는 식물들과 속마음으로 공유하며 잡념은 사라진다. 마음을 정리하거나 할 때 불교의 참선처럼 조용한 상태를 만드는 게 나에게는 맞는다.
여행 갈 때 사찰 하나 정도는 여행지에 포함한다. 그만큼 절을 좋아하는 무신론자라고나 할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불자일지도 모른다. 결혼 초 경주에서 살 때 통도사를 처음 갔던 기억은 잊지 못한다. 아이들과 돌무더기가 마구 쌓여있던 마이산 탑사 갔던 때는 또 어떠한가. 고향인 강화의 전등사는 말할 것도 없고, 여행을 통해 전국의 절을 섭렵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것이 즐겁다.
문제는 불상과 마주하는 일이 어렵다. 몇 년 전 낙산사의 넓은 곳에 어마어마한 해수관음상과 만나 올려다볼 때 오묘했다. 불상들의 표정은 모든 것을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너의 마음을 알고 있노라, 그러니 너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함에 있어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라는 듯이. 물론 나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지 않다. 그런데도 고개는 절로 숙어지고 눈을 마주하기 어렵다. 내 시선과 너무 멀리 있는 불상에 압도된다.
법당 건물 내부에 있는 부처님은 더욱 쳐다보기 어렵다.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둠과 함께 있는 불상들의 모습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와서일까. 경찰서 안에서의 취조실 같은 공간도 아닌데, 죄인인 양 앞을 바라보고 올려다보며 웃음을 짓는 일은 없었다. 무언가 아련하고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나의 죄를 발가벗듯이 따질 것만 같은 불상에 나의 어리석은 죄를 고하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서울 조계사에 갔다. 국화꽃이 만발한 상태에서 법당 곳곳을 구경했다. 꽃 잔치의 절은 처음 본 데다 꽃꽂이처럼 인공적인 미를 가미한 느낌은 새로웠다. 곳곳에 부처님상이 있었는데 자연스레 있는 얼굴과는 마주치기 수월했다. 달라진 나의 변화에 새삼 놀랐다. 조계사 위치 자체도 산속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과 같은 높이에 있는 절이라 그런지 위화감도 없었다. 친근하게 친숙하게 있다 보면 마주 보는 것 자체도 조금은 쉬워지는 것은 아닐까.
며칠 전 근처의 청학사를 들렀다. 문학산 자락의 연수구 쪽 조그만 절이다. 문학산 등산을 하던 중 청학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눈여겨보다 남편과 함께 발길을 향했다. 문학터널 위쪽의 길이 신선했다. 절 입구는 산속 깊은 암자의 느낌을 가져온 듯 포근했다. 조그맣지만 아늑함에 편안했다. 초파일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태여서 마당에는 연등이 색색이 매달려 있었다.
만원으로 남편의 이름을 연등에 달았다. 남편은 내 이름으로 연등을 달아주었다. 복권 하나씩 구매한 것처럼 가족의 행복과 부자를 빌었다. 붉은 연등 아래에 붙은 우리 이름이 자연스레 흩날렸다. 스님이 “등도 달았으니 법당 가서 절이나 세 번 하고 가시오.”라는 말씀에 마음을 다잡고 법당으로 향했다. 각자의 연등에 자신의 번뇌와 고민을 담아서였는지 우리 눈빛은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섯 부처가 나란히 내려다보고 있다. 잠시 마주 본다. 아무 생각 없이 세 번의 절을 했다. 머리를 숙이는 동안 내 등을 토닥여주는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천천히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친근해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아는 누군가가 나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봐주는 듯 편안했다. 이상했다.
불가에서는 현재의 삶이 내세와 이어져 있다고 믿는다. 그 삶이 수직적으로만 이어져 있다고 생각진 않는다. 지난 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우리에게 이토록 힘든 고난을 겪도록 했을까.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다음 생을 더욱 기름지게 살 수 있을까. 그러는 동안 나와 주변 인연의 끈을 당기고 놓을 수 있는가. 지금 나는 주변의 인연(因緣)과 어떻게 마주 보며 살고 있는가. 수평적으로 연속적으로 연(緣)의 다리를 만들고 똑바로 앞을 바라볼 수 있는가.
마음과 마음이 한 수평선에서 만나 마주 본다. 청학사를 뒤로하고 오는 길에 허공(虛空)의 바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 글을 쓴 이후에도 가끔 절에 갑니다. 그때마다 마주볼 수 있나 나 자신을 시험하곤 하지요.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냥 시선을 피할 때가 많았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걸까요,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게 있는 걸까요? 이유를 말하려 해도 선뜻 내뱉어지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전생에 내가 그의 시선에 따박따박 대꾸를 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전생에 원수였던 사람들이 만나 부부가 된다는 설정처럼요.
집안이 절간같다는 느낌을 좋아합니다. 반대로 남편은 조용하면 텔레비전이라도 켜두죠. 참 반대입니다. 무슨 소리가 나면 집중이 잘 되지 않는데, 남편은 왜 그렇게 시끄러운 걸 좋아하는지 말입니다. 언젠가 왜 틀어놓는지 물었더니, 너무 조용하면 그게 더 답답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있는 날에는 조금 시끄럽더라도 텔레비전을 틀어두는 편입니다. 제가 가끔 생각을 안하고, 집중 안하면 되니까요. 아니 텔레비전을 켜면 그것에 집중을 하게 되니까요.
언젠가 남편과 백담사에 간 적 있습니다. 좁은 길을 버스로도 한참을 올라갔는데, 산속으로 둘러 쌓여 바깥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습니다. 산중 깊은 곳에 널따란 장소였고, 게다가 커다란 물길에 다리를 놓고 지나가게 되어 있었죠.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런 강원도 산골에서는 모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우리나라의 절이 그래도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참 포근한 장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 어느 절에서든 템플 스테이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조용히 그냥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니고요. 열심히 돈 벌어야 하는 우리는 조금 시끄럽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글도 쓰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