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하늘

문학미디어 2021년 여름호

by 한그리 유경미

바다가 좋았다. 차르르 쏟아져 오는 하얀 파도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바람 향에 다가오는 누군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물을 머금은 모래가 뽀글뽀글 숨을 쉬며 바다를 밀어낸다. 멀고 먼 태평양 어딘가로부터 다가오는 생명이 꼭 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 끝 수평선은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모험을 하고 싶게, 배를 타고 싶게, 파도를 타고 싶게 말이다.

현실은 바다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아기 때부터 멀미는 나의 동반자다. 차를 타보지 않고 자란 시골 촌년이 수학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비닐봉지 두세 개씩은 챙겨야 한다. 수학여행의 악몽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강릉을 가는데 터널 몇 개면 무사통과다. 3시간 30분이면 강원도 바닷가 어디든 갈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지는 설악산이었다. 2박 3일의 일정에 반 친구들은 신났다. 반면 나의 표정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었다. 멀미를 하지 않기 위해서 약도 먹고 귀 뒤에 약도 붙였지만 소용없었다. 설악산까지 대관령을 거쳐 꼬불꼬불한 고속도로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고개를 넘자 보이는 바다경관이 멋있어 바라보는 아이들 사이로 어질어질 아득해진 머릿속을 다잡기 위해 눈을 감았다.

설악산에 도착하기 전에 잠시 경포대에 들렀다. 당시 경포대 앞에서 찍은 사진은 내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바다와 더 멀어지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산 넘는 도로가 원망스럽다. 경포바다는 속도 좋지 않은데 왜 여기까지 왔느냐며 성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하늘이 좋았다. 어느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에 눈이 크게 떠졌다. 움직이는 불빛에 인공위성과 대화하는 듯했고, 미지의 어느 곳에선가 연락해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별똥별 하나 떨어지면 소설 속 주인공이 된 양 낭만이 가득해졌다. 하늘 속을 떠도는 허블망원경으로 들어가 더 바깥의 우주를 여행하고 싶게, 과학자가 되고 싶게, 천문학자가 되고 싶게 말이다.

현실 속 하늘은 만져볼 수 없다. 직접 다가갈 수도 없다. 허블망원경에 가보고 싶었던 어릴적 꿈wish은 꿈dream에 불과했다. 그래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신화 속 이야기가 떠오르고 백조자리가 넓게 날개를 뻗어 여름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가고, 백조 위에 나를 태우고 우주를 향한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천문학과는 상관도 없는 채로 살고 있지만, 하늘을 보면 어릴 적 꿈을 키우던 고향으로 돌아간다.

1997년의 헤일밥 혜성을 아는가. 수십 년의 기록 가운데 지구를 왔다 간 혜성 중 가장 밝은 혜성이다. 역사적인 순간에 앞마당에서 고요히 홀로 올려다보며 정적을 즐겼던 그 시절의 혜성이 다시금 그리워진다. 사진을 찍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저 사춘기 소녀는 혜성의 경이로움에 한 시간이 넘도록 하늘만 바라보다 들어갔다.

밤하늘만 좋은 게 아니다. 땅만 바라보며 걷다가 파랗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도 때도 없는 미세먼지에 황사가 있어도 광활한 하늘은 내 마음속 위로로 다가온다. 흐린 하늘은 나를 걱정해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구름 속에서 쉼 없이 위로해주는 이의 어깨로 보이기도 했다. 하늘은 언제나 나를 바라봤다. 한숨이 나올 때, 힘들어 허리를 펼 때, 결심을 할 때 늘 하늘은 응원해주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바다와 하늘은 닮았다. 파랗고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파랑이 짙어진다. 하지만 바다는 손으로 만질 수 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함께 할 수 있다. 같이 뒤섞여 어우러질 수도 있다. 반대로 하늘은 손을 뻗는다고 닿을 수 없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도 스카이다이빙을 해도 우주인이 되어 하늘을 향해 나아갈지라도 하늘과 나 사이에는 만질 수 없는 거리가 있다. 내 생활과 달려들어 엮이면 현실이 된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늘은 여전히 나의 꿈wish이다. 너와 나의 거리 속에서 또 다른 운명을 찾아내리라. 하늘은 아파트 사이로 부끄러워 붉게 고개를 숙인다.


얼마 전 고향집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여전히 오리온 자리와 쌍둥이 자리가 있었다. 여름 밤하늘의 대표가 백조자리였다면 겨울 밤하늘에는 이들이 있다. 조용히 반짝이며 나를 부르는 곳을 바라보면 황소자리가 나도 끼워달라며 돌진하고 있고, 북쪽의 북두칠성이 카시오페아와 함께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여름밤도 좋지만, 겨울밤이 특히 좋았다. 얼굴이 얼얼해질만큼 차가운 바람이 볼에 닿아도 반짝이는 위로를 포기할 순 없었다. 까마득히 펼쳐진 하늘에는 언젠가 함께 하고픈 미래의 꿈이 들어 있었다. 무얼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도 그렇다.

바다는 곁에 있어도 아득하다. 어느 날엔가 여름 바다를 놀러갔다. 나 잡아봐라 게임이라도 할 기세로 바다를 향해 갔으나, 날짜를 잘못 선택해 구름낀 성난 바다를 만났다. 가까이 가려고 해도 무서워보였다. 발만 좀 담가볼까 하고 마음을 다잡고 해도 선뜻 갈 수 없었다. 그렇게도 평온해 보이기만 한 바다가 그날은 소름돋을 정도로 살벌했다. 내게 너무 많은 죄가 있었나 반성을 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수평선의 바다를 좋아한다. 너무 가깝지 않은, 그렇다고 아주 멀리 있지도 않은 어느 경계에서 바다를 본다. 그 중심을 만들 수 있는 바다가 존경스럽다.

하늘이 흐려진 날에는 내 마음도 흐려진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니 적어도 내 마음을 가지고 노는 하늘이 어느 날에는 아프기도 하다. T인 나도 어느 날에는 F이고 싶지만 그런 날엔 아니다. 그냥 날씨 변화 때문에 그런 걸 왜 감정이입을 하고 난리야,라며 치부해버리고 싶다. 그런데 꼭 하늘이 변할 땐 F가 된다. 그래서 하늘은 변화무쌍한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늘 파란 가을하늘처럼 있었으면, 엄마처럼 그대로 있었으면 싶다.

하늘은 알까.

바다는 알까.

알 턱이 없겠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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