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현대수필 2020년 여름호

by 한그리 유경미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오전 열시다. 아이들과 남편을 학교와 회사로 보내고 느지막이 씻으러 욕실로 간다. 멍하니 치약 묻힌 칫솔을 입에 넣고 한 손으로 의미 없이 움직인다. 반대편 손으로는 때가 낀 이곳저곳을 살핀 후 샤워기를 붙잡고 물을 튼다.

변기에 튄 누런 소변이 눈에 들어온다. 아유, 이런 건 본인이 좀 닦으면 좀 안되나. 갑자기 짜증이 난다. 변기솔로 마구마구 비비고 물을 뿌려댄다. 오른손으로 화를 담아 물고 있던 칫솔을 사정없이 비빈다. 하수구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워놓은 게 보인다. 옆으로 치웠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넣지, 옆으로 치워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람. 손으로 머리뭉치를 들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또 한 번 오른손이 칫솔로 입속에 대고 마구 호통 친다.

입이 매울 때쯤 무심결에 거울을 본다. 내가 맞았던가. 그럴 리가. 내가 아니라 분명 다른 사람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친다. 부스스한 머리카락 중간에 삐죽이 뻗친 머리가 눈에 띈다. 손으로 결을 만져 쓱 정리해 본다. 머리 감을 건데 뭘. 괜찮다고 중얼거리며 입을 헹군다.

다시 한 번 시선은 거울을 향한다. 누리끼리한 눈곱이 눈가에 인사하며 삐죽 얼굴을 내보인다. 깜짝 놀라 누가 볼까 바로 떼어낸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이러고 아침을 챙기고 애들을 보냈다니, 조금 충격이다. 하필 오늘 늦잠을 잤다. 밥을 급하게 해서 가족들을 보내느라 화장실을 갈 시간이 없었다. 세수도 하지 않고 얼굴이 번들번들한 내가 추레하게 그 안에 있다.

씻는 건 잊은 채 거울을 유심히 바라본다. 연휴동안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왼쪽 입술 아래에 여드름이 생겼군. 하얀 끝부분이 올라와 조금 있으면 터질 수도 있겠어. 건드리지 말아야지. 거울 속의 내 볼을 천천히 만졌다. 학창시절 생겼던 여드름 자국이다. 볼 곳곳에 커다란 분화구들이 달 표면처럼 거칠기만 하다. 자주 씻기만 해도 이 흉터들은 없었을 텐데. 나도 그렇게 안 씻었던가. 문득 오늘 아침에도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에게 자주 씻으라고 잔소리 한 게 미안하다.

세수한 후 거울을 다시 본다. 뽀득한 피부가 살아나 좀 나아졌는지 살핀다. 번들번들한 기름기는 걷히고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럴 나이였던가. 양 볼에 팔자주름이 생겼다. 자주 웃어야 좋다는 어른들의 얘기에 힘입어 열심히 웃으려 노력한 결과다. 웃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슨 일 있느냐고, 화났느냐고 물어보는 이가 적지 않았다. 딱히 그런 일은 없었으리라. 단지 내 웃음기 없는 얼굴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냈으니 열심히 웃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나쁘지는 않지만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또 다른 주름이다. 눈썹 사이의 미간에 세로로 길게 11자의 자국이 보인다. 진하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무시할 주름은 아니다. 마흔이 넘어 챙겨야 하는 내 얼굴의 오점. 분명 나의 좋지 못한 습관에서 나온 결과물일 게다. 여러 번의 지적에도 내 인상은 늘 그랬다.

어린 시절 사진들을 보면 백일사진부터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옛날 집 앞에서 책상 의자에 나를 올려놓고 하얀 때때옷을 입은 백일 사진이 있다. 햇빛이 그리 강해서 찡그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앉기 싫은데 억지로 앉혀서 그랬을까. 언제나 그리운 엄마와 떼놓아 그랬을까.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산후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후 여자로서의 기능을 잃고 한평생을 살았다. 난 성인이 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의 몸 속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것은 내가 태어났기 때문인 것만 같은 자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어머니는 대학병원의 20년이 넘는 출근도장 속에 지금까지도 함께 하고 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기였지만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백일사진에 담긴 건 아닌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말한다. 눈썹에 힘 좀 풀어볼래? 거울 밖의 내가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야. 거울 밖의 내가 미간의 주름 자국을 마구 눌러 본다. 거울 안의 내가 웃는다. 다시 거울 밖의 내가 팔자주름을 마구 눌러대며 웃는다. 거울 안의 내가 행복해 한다. 이상은 시 <거울>에서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어 섭섭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 위로해 준다. 네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 상황이 그리 되었을 뿐이다.

거울의 나와 현실의 나가 하나가 된다. 화장대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의 얼굴과 마음을 꽃단장 해야지.


얼마 전, 다이소에서 미간주름을 펴는 T자형 패치를 발견하여 하나 샀습니다. 텔레비전 속 한 연예인이 붙이는 걸 보고는 '아, 이걸 꼭 사야겠구나.'라고 다짐을 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지요. 천 원인 한 세트를 사들고 와서는 당일에 붙였는데, 효과가 나쁘지 않은 겁니다. 열심히 붙여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2주일이 지났나? 지금 와서 따져보니 총 3개밖에 사용하지 못했네요. 잘 때는 잘 씻고 붙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붙이면 될 것을 어느 날은 너무 늦게 자니 8시간 붙여야 하는 건데 일찍 떼어서 못붙인다나요. 그런 날은 패스. 어떤 날은 까마득하게 패치 붙이는 걸 잊어버리고는 다음날 아침에서야 생각이 나니 또 못 붙이기도 했죠. 핑계는 끝도 없습니다. 그렇게 아직 반이나 남은 패치를 그래도 열심히 붙이고, 효과가 좋으니 더 사와야겠네요.

저는 저를 꾸미는데 상당히 인색한 편입니다. 그냥 깨끗이 씻고 깔끔하게 하고 다니면 된다고 생각하죠. 남편은 화장도 이쁘게 하고 예쁜 옷도 사라고 하지만, 평상시에 집에서 생활하면서 무슨 옷과 화장품이 필요하느냐고 저는 손사래를 칠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특히 더했죠. 그래도 요즘은 대체 근무를 가끔 한다고 단정한 옷을 가끔 삽니다. 40이 넘어가니 이제 염색을 해야 할 일도 생기고요.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인색함 속에서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들이 있어서 거울 속의 나와 자주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더 잘 할거야. 너의 그 미소가 오늘의 아이들에게 더욱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거야.'라고 말이죠. 그렇게 사람은 조금씩 변해가나 봅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는 점점 작아집니다. 여럿이 함께 있어도 이제는 각자의 바운더리가 있는 걸 이해하면서도 조금은 슬퍼집니다. 그래서 나의 삶을 가꾸라고 했나 보죠?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름 열심히 가꿔왔다고 자부했는데, 사실 돈벌이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조금 경제적으로 힘든 면이 있습니다. 점점 작아지는 나의 섬이 무인도가 되지 않도록 많이 심었고, 그 중 하나가 수필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은 끝까지 손을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나의 섬으로 놀러오는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쓰는 걸 잊지 않으려 이렇게 브런치에 흔적을 남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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