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로 살아가다

2024년 가을호

by 한그리 유경미

텅 빈 가슴이다. 까맣게 타 들어간 마음이 보인다. 속은 그렇게 없어지고 잎은 푸르다.

초록 잎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5월이다. 속리산 국립공원 내 숲길이 아름답다. 누구든 다시 새로운 시기를 보낼 거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 파랗게 올라온다. 가끔 풀 사이로 하얀 꽃들이 반겨 휴대폰 속 카메라를 켜기 바쁘다. 기억이란 필요할 때만 중요하고 금세 시든다.

재잘대던 사이로 검은 나무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관광객들은 특이하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연둣빛 여린 잎들 사이에 다 죽어가는 듯 보이는 나무라 사연이 있어 보인다. 해설사의 말대로라면 나무는 40여 년 전에 번개를 맞았다. 큰 나무줄기는 반쪽만 남아 지금껏 살아있다. 일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는 나무가 고맙다. 게다가 머리 위쪽으로 작은 가지들은 다른 나무 못지않게 푸르르고 쭉 뻗었다. 위만 보면 전혀 아프지 않다. 어쩐지 누군가를 닮았다.

여인은 스물넷에 시집왔다. 네 살이나 어린 신랑을 바라보면서 세상 다부진 미래를 꿈꾸었다. 시할머니까지 계신 층층시하 어른들에,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은 줄줄이, 맏며느리로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첫째를 낳고 걱정은 지워지기 시작했다. 여인을 두고 남편은 훌쩍 군대를 가버렸다.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를 업고 큰 살림을 해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으리라. 요즘이야 군대가 1년 6개월이지만 당시 군대는 3년을 거뜬히 넘겼다. 그때는 누구나 다 그랬다,라는 말로 위로할 수 없다. 배우자 없는 공간에 홀로 뚝 떨어진 외로운 신세가 애처로웠다.

남편의 휴가 이후에 둘째가 생겼다. 당시엔 자식이 재산이라 많아도 좋았다. 특히나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의 자식은 농사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자원이었다. 셋째가 생기고, 넷째가 생겼다. 막내아들까지 총 다섯의 가지를 만들었다. 시할머니의 병간호와 시어머니의 매운 살이는 오래도록 계속됐지만, 시집살이를 아무 말 없이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자식들이었다. 아이들이 크면서는 살림과 동시에 마늘밭, 냉이밭, 생강밭, 달래밭을 쫓아다녔다. 남의 집 일을 하며 돈을 벌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조금 큰 자식들에게 저녁 살림을 맡겨두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칭얼댈 새 없이 성장했고, 엄마 손을 타지 않은 채 그렇게 자라났다. 세상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여인의 손에서 점차 벗어났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수십 년의 생활은 여인의 몸이 모두 망가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체력이 되니 이 정도 버텼다. 검게 타 들어간 나무의 속 같다. 텅 비어 자식들은 품을 벗어나고, 여인에게도 병은 찾아왔다. 지금까지 살아온 건 나의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냥 그렇게 살아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간혹 죽을 수 없어 살기도 했다. 누가 살아보라고 한 것도 아니었으리라. 그저 자연스레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면서 지금까지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각난 마음은 쉬이 아물어지지 않았다. 40년이 되어도 텅 빈 가슴을 품고 살았다.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단순히 번개를 맞았다는 사실만으로 큰 눈을 뜨고 카메라를 찾는다. 어떠한 시간을 보내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무도 그걸 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무에게 입이 있다고 하면 오랜 시간을 거슬러 쉼 없이 이야기할 것인가. 내가 나무였다면 아픔을 굳이 이야기할 것인가. 그럴 리 없다. 큰 아픔도 작은 슬픔도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처지가 하나도 쓰리지 않다.

나무는 스스로 아물며 성장하고 있다. 수피로 살고 있는 나무는 사람들이 건들지 않았다면 바깥쪽에서 안으로 껍질을 말아 하나의 기둥을 완성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람들의 사진 찍으려는 욕심이 껍질을 밟고 그만 부러졌다. 그것만이라도 지켜냈어야 했는데, 울타리를 만들어 놓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타인의 방해가 이번 한 번뿐이었겠는가. 당하고 또 당하고 그렇게 몇 해를 거쳐 줄기는, 계속 사라지고도 다시 살 수있는 방법을 연구한 건 아닌가 싶다.

자연은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해설사는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국립 공원의 기본이라고 한다. 어느 죽어가는 나무 속에 시멘트를 잔뜩 발라놓은 사진을 본 일이 있다. 스스로 치유하는 나무의 의지를 믿지 않은 사람의 배려심 없는 도움 같다. ‘자연 그대로’ 두는 걸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속하려 한다. 인간의 욕심은 어쩔 수 없이 자연을 망친다.

수피로 살아남아 일상을 느낀다. 자연의 순리 그대로 살아남아 초록을 맞이한다.


그저 나는 괜찮다, 라고 말한다. 본인이 아프니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자식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면 언제나 세웠던 허리를 다시 굽혀 이리저리 뭐 줄 것 없나 찾으러 다닌다. 이제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필요도 없을 수 있으나 자식 입장에서는 살아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 존재의 위대함이랄까. 자신의 슬픔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이해한다고 섣불리 말하려다가도 온전히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을텐데, 그러면 안 될 것이다.

나도 내 삶이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느꼈을 감정을 누구한테 표현하는 일도 쉽지 않다. 거 뭐 힘들어서 그랬느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내게 닥친 상황에서는 나도 힘들었다. 몸이 힘들지 않고 마음이 힘들었다고 덜 힘든가. 그건 그렇지 않다. 조금 더 잘 살고 싶고, 아프지 않게 하루를 견뎌가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못하면 어려운 것 아닌가. 나를 이해해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사는 하루는 각자 마음에 따라 다른 사건이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후회없이 사랑해보며 살라고 한다. 우리의 어른들이 연애시절 없이 결혼만 했다면 우리는 스스로 짝을 찾아 사랑하며 살았다. 먹고살기 바빠 사랑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겨를도 있기는 했지만, 함께 살아가며 인생의 맛을 음미한다. 온몸이 진빠지고, 살이 녹아내려 수피로 살아가더라도, 초록을 맞이할 인생의 맛은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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