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봄호
어려서 슈퍼맨의 주먹이 얼마나 멋졌는지 모른다. 두 손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슈퍼맨이 태양을 바라보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을 기억한다. 그의 주먹 속에 모든 힘이 들어 있을 거라고 상상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적의 공격을 주먹으로 막아서는 로봇 태권브이는 어린이들의 로망이었다. 내 주먹을 강하게 키워 적을 물리치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봄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살며시 내게 다가와 있다. 곁에 서서 그냥 그렇게 나의 옷이 얇아지기만을 기다린다. 어느샌가 하늘은 서슬 퍼런 파란색이 아니라 따스함의 파랑이다. 대지는 입김을 후후 불어 넣어 봄바람을 유혹하고, 유혹에 넘어간 땅속 싹이 부끄럽게 웃으며 잇몸을 내보인다. 그 와중에도 주먹을 쥐며 준비하는 녀석이 있다.
거칠고 거친 나무 등걸을 방패 삼아 뾰족이 창을 꺼내 든다. 끄트머리는 순해 보이는 연두색이지만, 손잡이는 등걸과 비슷한 갈색이다. 모든 살아 있는 생물체를 찔러 보기라도 하는 듯 하지만 이내 거둬들인다. 이제 주먹이다. 벚나무의 새로 나온 꽃잎의 싹이 꽃을 틔우기 직전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주먹을 쥔다. 폭발이라도 할까 봐 달아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주먹질에 탄성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이제 펼쳐질 앞자리 다툼 준비를 하는 거다. 누가 먼저 꽃을 피워내는지, 얼마나 더 향긋함을 뽐내는지, 언제까지 꽃을 유지하며 사랑받을지. 사람들이 볼 땐 그저 봄눈이다. 축복을 받는 꽃 색종이다. 하얀 꽃 솜뭉치에 즐거워하며 데이트하는 코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자연은 늘 치열하고 봄은 새로운 전환기다.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십의 자리 수가 바뀌어도 별다른 감흥이나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40은 좀 다르다.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가. 이·삼십 대를 혹사해 가면서도 즐거워했는가. 땀나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참아내던 게 언제였던가. 나는 늘 치열했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 살아왔다.
내 인생의 전환기는 결혼이었다. 친정에서는 남편을 외모든 성격이든 모든 면을 변변치 않게 오판하고 반대했다. 그런 결혼을 나는 두 주먹 불끈 쥐고 이겨냈다. 경주까지 내려가 살아도 외로웠으나 나름 잘 지냈다. 집이 없어 친정에서 애를 낳고 7개월 동안 지내는 동안 남편은 언니네 집에 더부살이하며 출근해도 행복했다. 10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아이 셋을 키워내 여기까지 왔다. 모든 것이 편안해져서일까. 남편은 최근 우울을 겪고 있다.
의욕도 없고 표정도 어두운 남편이 어느 날 과음하며 현관문에 들어섰다. 꼬부라진 목소리로 “내가 자기 때문에 화내고 힘들어한 건 아니야. 알지?” 라며 정신 멀쩡한 나를 혼미하게 흔들어놓았다. 그날 아침에 남편은 애들도 어느 정도 컸으니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고, 왜 애들을 감싸기만 하느냐고 화를 내며 나갔었다. 하루 온종일 좋지 않은 기분에 집안일도 제쳐둔 채로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던 차였다. 가족을 위해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남편의 지난 시간이 애처롭게만 느껴졌다. 당신도 이제 전환기를 맞이해야 할 때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한 오후의 한 편에 버스를 타고 오는 길, 익숙한 음성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질러 나 아직 살아있다고 소리 질러 나 아직 꿈이 있다고
이 세상이 나의 발목을 잡아도 가끔씩은 이렇게 소리 질러 나 살아있음을
원로가수라 할 정도로 내게는 오래된 가수 원미연의 노래 ‘소리 질러’가 가슴 한 귀퉁이를 촉촉이 적셔준다. 당신도 한번 외쳐보라고, 나도 아직 살아 있다고, 나도 아직 꿈이 있다고 소리 질러 본다. 누구든 지금, 현재는 내 인생의 봄이고 전환기니까 주먹 쥐고 다시 일어서서 버텨 보자고 말하고 싶다.
덤빌 테면 덤벼 보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미래를 준비한다. 겨울의 회색빛 공간에서 태어나 따뜻함을 무기 삼아 색을 만들어내는 벚꽃 주먹에 희망의 싹을 느껴본다.
마흔이 넘은 무렵에 쓰고 23년 겨울에 수정을 거듭하여 발표한 작품입니다. 마흔은 불혹의 나이라고 하지만, 불혹에 견디기 가장 힘든 나이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삶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가장이 어느 날인가는 애처롭게 보일 떄가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점점 작아지고 있는 순간, 남편은 오죽했을까요. 그래서 산들산들한 봄의 전령인 벚꽃이 피어날 때 주먹을 불끈 쥐고 봄을 맞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집앞의 벚꽃은 이사오는 날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 이사온 지는 벌써 올해로 14년차에 이릅니다. 벚꽃이 흩날리던 날 이사짐 트럭과 함께 단지로 들어왔죠. 나도 봄에 태어났다고 봄꽃이나 새싹만 봐도 마음이 동할 지경인데, 꽃잎이 우리를 축하하는 웨딩 퍼레이드 같았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냐고요. 10년도 넘게 우리는 정말 이곳에서 잘 살았고,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둘 성인이 되어가고 막내만 졸업시키면 미성년자는 이제 없습니다.
우리는 늘 살아있습니다만, 간혹 죽은듯이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나의 능력이 꽤 괜찮음에도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어요. 제가 요즘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어쩌면 내 능력이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자책에 자꾸만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정말 힘든 시기가 40, 50대 인가 봅니다. 어디든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인식시키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브런치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브런치에는 멋진 작가님들이 정말 많습니다. (구독이라는 말에서 팔로우라고 이름이 바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구독하는 작가님의 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은 사유를 통해 우리는 아직도 글을 쓰고 있고, 써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가장 좋았던 일이 바로 작가로 인정받는다는 겁니다. 아직 출간을 하지는 않았으나 온라인 상의 브런치북이 있어서 몇 권은 출간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함께 상생하며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작가님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작가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