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번째 여행일기, 지나면 아름답다.

by 지승유 아빠

삶도 여행도 지나면 아름답다.


지난 명절에는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부모님 집으로 갔다. 정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탄 아이들은 잔뜩 들떠서 자리에 앉으라고 아무리 성화를 해도, 일어서고, 손잡이도 잡아보고 하다가 그만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양보한 듯 자연스럽게 된 일이니, 빼앗겼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지만.

기둥에도 매달려보고, 그냥 캄캄하기만 한 밖도 바라보고, 지하철을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 지하철 칸 안에서 한강을 보며 신기해한 것은 우리 아이들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슬슬 답답해하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을 갈아타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이들조차 앉을자리는 없었고, 아이들은 너무 지쳐서 결국 짐가방 위에 앉게 했고, 나는 짐 가방 두 개가 넘어지지 않도록 잡고 있어야 했다. 아빠가 기둥이 된 상황. 부모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다들 너무 지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아버지는 손자에게 준다고 블록을 꺼내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노블록. 아이가 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종류였다. 그냥 조립 전 상태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아주 신기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큰아이의 주특기는 역할놀이와 독서였다. 그래서 큰아이가 집에 찾아오면 부모님은 인형이나 책을 준비해두곤 하셨다. 책의 수준이 아이의 능력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지만, 큰아이는 이해하든 못하든 책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였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다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이와 놀아준다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기는 힘들었다. 아이는 집안 어딘가에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런 아이를 주로 바라보는 장면만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랬었기에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앉아 블록을 조립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아주면 아이가 꾹 눌러 고정시키는 단순한 장면이었는데도 묘하게 가슴을 찡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아내도 나도 그 장면을 찍기 위에 서둘렀다. 30분 정도 지난 다음, 아이는 누나를 찾아 떠났고, 결국 아버지는 혼자 블록을 완성하셨지만 나는 이따금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찾아서 보곤 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처음 해외여행을 간 곳은 말레이시아였는데, 가끔 소름이 끼칠 정도록 고생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다시는 이 곳으로 여행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상당한 추억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여행 스케줄에 아이들을 맞췄더라면 그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아이들의 리듬에 여행을 맞추려고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아이들의 리듬을 수긍하기까지 우리는 정말 고생했다. 비행기에서부터 아내는 아이들이 영상물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보는 영상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소품을 챙겨야 했다. 그래서 작은 아이는 비행기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빠에게 안겨서 낮잠을 잤고, 결과적으로 나는 집에 있을 때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작년 여름에는 큰아이의 첫여름 방학을 기념해서 2주간의 국내여행을 계획했다. 배에 우리 갈리미(딸이 붙여준 차의 이름으로 공룡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공룡)를 싣고, 전라도에서 시작해 서울, 대구를 거쳐 다시 전라도로 돌아오는 대장정이었다. 나는 그 기간 동안 하루에 몇 시간씩 운전했고, 아이들이 다칠까 봐 노심초사했으며, 아이들 목마를 태우다가 목이 졸려 죽을 뻔했다. 그 여행이 계획뿐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여행 기간 동안 아이들은 아프지 않았고, 잘 먹었으며 낮잠도 잘 자주어서 운전하는데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물론 엄마와 아빠는 여기저기가 아팠지만.

하지만 신기한 것은 아내와 앉아서 지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장면은 항상 아름답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어려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늘 지난 것들은 아름답게 느껴지고 지금 삶의 동력이 되곤 한다.


아이들은 벌써 지하철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잊었다. 그래서 다음 명절에도 지하철이나 버스 타기를 고대하고 있다. 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무엇을 할지 연구하고 있으며, 우리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말레이시아나 우리가 신혼여행을 다녀온 발리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 한다. 아마 그때는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올해 여름 방학이 짧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다시 갈리미를 싣고 전라도로 가려고 했었다.


다음 여행이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고, 다음 명절에 우리가 또 지하철을 탈지 알 수는 없지만 다음에 우리 가족이 함께 어딘가를 간다면, 지나고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지금 아름다운 곳'이 되어야 한다고 아내와 이야기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아마 잊었을 우리 아이를 위해, 도대체 무엇이 지나고 아름다웠던 것인지 기록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상도 우리에게는 너무 소중한 것이지만, 여행도 일상만큼 우리에게 특별한 것이기에.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기록을 보고 '사실무근'에 '과장'을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에 대한 기록의 특권은 우리 부모에게 있는 것이므로.


그리고 이 기록이 우리 부모에게는 먼 훗날, 충분히 가슴 시린 아름다움의 근거가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