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까지 나는 여행을 그렇게 많이 다녀본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결혼 후에도 그랬지만. 그래서 신혼여행을 발리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패키지여행을 알아본 후, 다시 자유여행으로 전환했을 때까지도 사실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텔 예약부터 비행기 예약까지 아내가 모든 일을 도맡아 했고,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여행을 가도 딱히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은 별로 없었다. 사실 아이가 없는 여행이란 얼마나 단출하고 충동적이며 즉흥적인가.
한 번은 한밤중에 아내가 울고 있었다. 아무리 이유를 물어봐도 들을 수가 없었는데, 한참을 어르고 달래자 비로소 아내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결혼하고 얼마 후, 나는 아내에게 바다를 보여주러 인천 앞바다에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인천 앞바다는 아내가 상상했던 바다와는 너무 다른 것이었고, 우리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할 우울감에 쌓인 채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바다가 보고 싶다는 아내에게 가슴이 시원해지는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날 우리는 퇴근과 동시에 강원도로 출발했다. 짐도 대충 싸고, 숙소도 가면서 전화로 예약했다. 고맙게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우리를 맞이해주는 민박집에 있었다.
어느 날은 문득 꼬막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면도구만 챙겨서 전라도로 향했다. 역시 늦은 시간이었고, 그 날은 숙소를 아무리 해도 구할 수 없어서, 우리는 전라도의 아무 식당에 가서 꼬막정식을 먹고, 눈에 보이는 모텔에 들어갔다. 정수기는 의심스러워서 물을 먹을 수 없었고, 아내는 이불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맘에 안 들어 차에 있는 담요를 가져온 다음에야 잘 수 있었지만 우리는 꼬막을 한 가득 사서 집에 와서 배가 터지게 먹었고, 정말 행복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후, 그렇게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고맙게도 둘째는 모유수유만으로 성장해서 뜨거운 물이나 분유를 챙기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외에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차고 넘쳤고 그런 것들을 챙기다 보면 여행의 충동은 사그라들기 마련이므로.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 지를 사실 잘 알 수가 없었다. 별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나중에 정말 소중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자리만 차지하기도 하니, 아내의 현명함 앞에서 감히 나의 주장을 펼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적당한 출발 시간이나 도착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괜찮다고 생각한 시간은 어김없이 아이에게 무리가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나는 짐을 싸고 예약하는 일에 소극적이 되어 갔다.
처음에 가족여행 장소로 계획한 곳은 베트남이었다. 비행기까지 예약을 해 놓고, 아내는 여행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가지도 않은 여행지를 간 사람보다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아내는 여행을 취소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비용'이었겠지만, 겨울방학 베트남은 수영을 하기 힘들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취소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아내를 보며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여행을 다 취소하고 나서 삶의 동력을 잃은 듯한 아내의 모습이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남았다.
큰아이를 낳고 한 번도, 멀리 떠나보지 못했다는 것과, 아내는 나와는 다르게 자유롭게 떠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는 것.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다음에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일 년 후, 주저하는 아내 대신 결재 버튼을 눌렀다.
출발하기 전날, 아내는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와 소형 가방 한 개를 들고 씨름 중이었다. 가방을 싸고 정리하고, 무게를 달고. 다시 나에게 들어보게 하고 가방을 풀고 다시 싸고를 반복하는 아내의 손놀림이 차분하지만 즐거워 보였다. 문제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고 있지만 도무지 가방에 무엇이 들었고, 어떤 체계를 가진 짐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짐에서 물건을 꺼내면 정리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제자리에 둬.
아내는 몇 차례 나의 지혜와 정리에 대한 생각을 테스트해보고는 짐과 나의 관계를 한 마디로 정리해주었다. 정리하려 하지 말 것. 그냥 꺼낸 자리에 그대로 둘 것. 나를 그러마 큰 소리를 쳤지만 솔직히 여행기간 내내 혼나지 않을 자신은 없었다.
짐 싸는 일을 매우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가족여행 계획도 스스로 마무리하고 아이들 짐도 혼자 싼다는데, 계획을 세우고 짐 정리하는 일이 좋다는 그 친구가 존경스러운 순간이었다.
가방 하나는 아이들 옷이 들어있는 것 같았고, 작은 가방에는 우리 옷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아직 밤 기저귀를 다 떼지 못한 작은 아이의 기저귀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고 물놀이 도구나 간단한 먹거리까지도 이해가 될 듯했다. 그런데 한 편에 놓인 아이들 클레이나 색칠놀이, 퍼즐, 큰아이의 책은 솔직히 부피만 차지하고 별 쓸모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결혼 9년 차였고, 성급하게 반론하거나 반대한 결과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 정도로 현명함을 갖춘 사람이었으므로 모든 의심은 일단 의식 저편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아내가 시키는 데로 가방을 닫고, 현관 앞에 가져놓았다. 이렇게 많은 짐이 필요하냐는 등의 반론도 일절 하지 않았다.
머리는 아내가, 힘은 내가. 그걸로 만족이었다.
큰아이는 그래도 어딘가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걸 아는 것 같았는데, 작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그래도 누나가 잔뜩 들떠 있는 모습에 작은 아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날뛰고 들뜨고 행복했다.
다음 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다음날 아이들이 씻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아이들을 꼼꼼하게 씻겼다. 냉장고에 상할 만한 음식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아내는 계획적으로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우리에게 먹였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올 때까지도 아내는 집안 정리에 한참이었다. 냉장고는 다음날 먹을 음식만을 남긴 채 깨끗하게 비워졌고 다음날 해야 하는 문단속, 가스 잠그기, 곰팡이 예방책 등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다음 날 비행기와 공항에서 필요한 일들과 도구들이 따로 담겨 있었고, 아내는 그대로 늦은 시간까지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마치 여행은 준비하는 것이라는 철칙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물건을 챙기고 준비를 마친 아내에게 나는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느냐'는 말 대신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여행은 준비하는 것이고, 준비할 줄 모르는 사람이 꼼꼼하게 준비하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내의 현명함을 몸소 체험해 본 사람이기 때문에.
준비를 마치자 아내는 천진하게 웃을 수 있었고, 잠들 수 있었다. 아내가 잠든 후 산더미 같은 짐을 보며 다시금 아내에 대한 존경심과 나의 육체적 강건함을 믿고 있는 아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많은 짐을 과연 잘 가지고 다닐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아내는 내가 할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시킨다는 굳은 믿음을 떠올리며 나는 어마어마한 짐과 두 아이 운반에 대한 부담을 뒤로하고 모처럼의 여행 전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