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년 전쯤, 우리는 공항이나 휴게소 가는 걸 좋아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혹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할 때, 물론 가장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부부 서로이겠지만, 둘 다 알 수 없는 무기력에 사로잡혀 서로 위로해주기 조금 힘든 날, 그때 우리는 휴게소에 자주 가곤 했었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도권에 있는 휴게소에 가서 호두과자도 사 먹고, 당시에는 포인트 적립도 할인도 되지 않는 휴게소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예전의 삶에 대해 여행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현실적인 혹은 정말 당치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이상하게 우리 둘인 것 같은 이상한 감각 속에서 우리는 막연하게 그런 삶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그런 삶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큰아이는 2012년 연말에 태어났다. 딸아이는 오후에 태어났는데, 그 직후부터 눈이 오기 시작했다. 정확한 양은 모르겠지만 고속국도에 눈이 쌓여서 시속 20~30km로 집과 산부인과를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있다. 눈은 며칠 동안 내려서 아내와 아이가 퇴원하는 날에야 해를 볼 수 있었다. 그때, 농담으로 장난이 아닌 아이가 태어난 거라며 웃었는데, 그 농담은 지금 생각해보면 예언에 가깝지 않았을까.
우리의 여행 첫 일정은 공항으로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제주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서 다시 랑카위로 가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큰아이는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자기 몫의, 결국 나의 몫이 될 여행가방을 안고 출발을 종용하고 있었다. 아무리 비행기가 오후 늦은 비행기라고 이야기를 해도, 수긍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를 설득해서 아침을 먹고, 오전에는 집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사용했다. 짐은 미리 차에 실어두었고, 아이들이 먹을 간식과 물 등은 따로 쇼핑백에 담아 두었다. 내친김에 점심까지 꼼꼼하게 먹이고 시간이 넉넉하게 출발한 것은 그동안 우리 부부의 내공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갈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이동'이다. 당연한 소리를 한다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노력이 든다. 일단 짐의 양과 질이 다르다. 여행지에 가면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으므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하다.
아이를 낳고 처음에는 이런 경우의 수를 예상하는 일이 힘들었다. 그래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특히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처음 알았다. 이상하게 항상 넉넉하게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빠듯하거나 조금 늦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육지에 갈 때마다 아내는 면세점에서 화장품 구입을 꿈꾸지만 항상 짐을 부치고, 수속을 마치고 나면 탑승시간이 되어 대기실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기가 막히게 바로 탑승해야 했으므로 안타깝게도 면세점을 멀리서만 바라보고 지나가야 했다.
그리고 항상 문제를 야기하는 아이들의 돌발행동, 그래서 정말 이번만은 모든 돌발행동을 대비하고 시간을 넉넉히 하여 아무런 문제 없이 여행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드디어 점심시간쯤 집에서 출발했다. 집에서 공항까지는 약 한 시간 거리. 비행기에서 잠들어야 하는 둘째가 잠들지 않도록 평소에 신나 하는 음악을 선곡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약간의 간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미리 큰아이를 시켜 동생이 잠들지 않도록 큰소리로 노래하라고 지시했다.
출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아내가 현금을 두고 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지만 출발한 지 1분 만에 있었던 일이고, 시간을 넉넉히 대비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출발.
아무 사고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점심을 먹이고 짐을 부친 다음에도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처음에 긴장했던 우리는 점점 편안해지기 시작했고,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후 처음으로 여유 있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까지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갑자기 발생했다.
짐을 모두 보내고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기 위해 대기실에 있었다. 아직 신분증 검사를 하고 대기실로 가기 전이었지만, 짐도 모두 보냈고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간식을 먹이고 탑승 예정 시간에 맞춰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신분증과 여권 검사에서 갑자기 막혀버렸다. 비행기 티켓에 있는 둘째의 이름이 여권의 이름과 달랐던 것. 'eu'가 'ue'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즉시 아이들을 안고 다시 항공사 프런트로 달려갔다. 항공사 직원은 괜찮다고 안심하라고 말해주었지만, 항공권을 회수한 후 다시 발권하는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졌고, 실제로도 여유는 크게 없었다. 아내는 비행기표를 예매한 사람을 탓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이 초조하게 여행사 직원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행기표를 예매한 사람이 나였으므로.
결과적으로 우리는 무사히 출국장으로 갈 수 있었고, 비행기도 탑승할 수 있었다. 물론 비행기가 보이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단 십 분이라도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희망은 깨졌지만. 우리는 출국장에 들어가자마자 비행기 탑승을 해야 했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완벽하게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늦은 오후까지 낮잠을 자지 못한 둘째 아이는 매우 흥분한 상태가 되어 뛰어다녔고, 나는 그런 아이를 여러 번 잡아와야 했지만 우리의 큰 계획에는 차질이 없었다.
'스릴 있고 좋잖아'의 은근한 눈빛을 아내에게 발사했지만 아내는 냉정한 표정을 눈빛을 반사했다.
큰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가는 해외여행에서도 역시 여유는 없었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 예전에 여유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이른 기대였던 것 같았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확실히 성장한 것도 같았다.
아이들은 안전벨트를 하고 앉았다. 큰아이는 평소 비행기를 탔을 때처럼 면세품 안내 책자와 안전책자를 꺼내어 다 성장한 여성의 포스를 뽐내며 읽기 시작했고, 작은 아이는 정신없이 창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륙 전까지는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괜히 여행을 계획했나'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도하지 않게 서둘렀고,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간식이 담긴 쇼핑백은 분실했으며 아내의 어깨 통증은 재발했지만. 아내는 아직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보다 많은 준비와 대비를 했고, 면세품 안내책자를 보는 큰아이는 훌쩍 성장했고, 무엇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밖을 내다보는 둘째 아이의 뒤통수는 동그랗고 아주 예뻤다.
비행기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무사한 비행이 되기를 기도하며 둘째 아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정신없이 밖을 내다보느라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