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여행일기, 찍는 자와 찍히는 자.

by 지승유 아빠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참 다를 수 있다.


대개의 경우는 결혼 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는 일은 중요하고 도움도 되는 것이다.

결혼생활이란 연애와는 다르게, 차츰 나를 다 보여주는 일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도, 보여줘서는 안 되는 것도 다 보여주게 되는 동안 부부는 서로 더욱 신뢰하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며 환상이 깨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것들 중 다툼을 유발하는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참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부부들이 큰 일을 대화와 협력으로 지혜롭게 넘어가는 것과는 다르게, 정말 사소한 것들 때문에 다투고, 사소한 것들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결혼 초에 아내는 서운한 일이 있어도 말 수가 조금 줄어들 뿐, 본격적으로 싸움을 거는 일이 드물었다. 나도 역시 다투는 분위기를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아내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가 신혼여행 때, 다툰 일이 있었는데, 이유는 '사진'이었다.


발리에서 아내는 갑자기 토라졌다. 그건 화를 냈다거나 분노했다는 종류가 아닌 아주 분명히 토라진 태도였고, 대부분의 남편이나 남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영문을 알지 못했다. 사람은 모르는 일을 접하면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기 마련이므로, 지금의 나였다면 두려워했겠지만, 어리석은 그때의 나는 아내에게 화를 냈다.


한 사람은 알아주지 않아서, 한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다투다가, 아내는 급기야 길을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때마침 스콜이 내리고 우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동네 구멍가게 처마 아래로 들어갔고 아내는 자신이 화를 내는 이유를 그 때야 말했다.

자신의 사진을 찍어주지 않고, 풍경사진만 찍는 나에게 몹시 서운했다고.

그때, 나는 좀 많이 억울하기는 했지만, 서운함을 느끼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이해했고, 자기 입으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민망해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웃어버렸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메모리에 들어있는 아내의 사진, 수 천장을 보며 또 한 번 웃어버렸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사진의 주인공은 아내가 아닌, 아이들이 되었다. 외장형 하드에 들어있는 사진의 90%는 아이들, 5%는 아내, 그리고 나머지는 풍경사진이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주지 않아도 토라지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사진을 찍혀주지 않아서 우리가 서운할 뿐이다.


아주 아기 시절에 사진을 찍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아이들은 누워있었고 우리는 찍으면 그만이었으므로. 아이들이 조금 크면 사진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해진다. 아이들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하며 표정도 다채로워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아내는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저장공간이 없다고 해서 정리해주는 아내의 스마트폰에는 항상 아이들의 동영상이 가득이었다.

아이들이 더 성장하면 이제 사진 찍기는 더 힘들어진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아이들은 도망 다니기 시작한다.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찍기 위해 쫓아오는 모습이 재미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찍기 위해 여기저기 따라다니다 보면 금세 지쳐서 쓰러진다. 그럼 그제야 눈 앞에 서서 춤을 춘다.

하지만 지친 척하고 있지만, 이미 촬영하고 있는 것을 아이들은 모른다.


지난해에는 국내여행을 가기 전에 급히, 스마트폰을 바꾸고 추가 메모리를 장착했다. 아무리 찍어도, 동영상을 찍어도 용량의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찍고, 찍고, 또 찍고. 집에는 어느새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과 동영상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따금 열어보는 과거의 사진 속에서는 큰아이의 첫걸음마 모습도 담겨 있다. 서 있다가 강아지 인형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 걸어버린 것을 기가 막히게 동영상에 담았다. 큰아이와 아내가 똑같이 이상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사진도 있다. 돌 잔칫날, 머리숱이 너무 없어서 여자아이임을 알리기 위해 짧은 머리에 앙증맞은 핀을 단 큰아이의 사진도, 집에서 돌 상을 차리고 기가 막히게 엽전을 찾아 쥐던 둘째의 사진도 그 안에 머물러 있다. 작은 아이가 누나가 책 보는 곳으로 기어가서 마치 둘이 함께 독서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 사진도 있고, 지금 막 태어난,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지만 눈물 날 것 같은 예쁜 모습의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10여 년 전, 아직 아이가 태어나기 전 온전히 우리의 삶을 살던 아내와 나의 모습도 있다. 카메라를 향해 해맑게 웃는 얼굴로, 짧은 머리를 한, 경제적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아내의 눈부신 모습도 있다. 지금은 많이 변해버린, 생생하게 빛이 나는 주름 하나 없는 피부의 우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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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을 시작할 무렵에도 나와 아내는 무작정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공항에서부터 비행기, 그리고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날에도. 현지 시간으로 10시가 훨씬 넘어서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길고 긴 입국심사가 끝나자마자 넓디넓은 공항을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아내는 아이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격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평소와는 다르게 단호하게 주의를 주었고, 다행히도 아이들은 우리가 입국심사를 끝내고 짐을 찾고, 환전을 하고 유심칩을 구입할 때까지도 짐가방 위에 얌전히 앉아 있어 주었다.


우리는 다음날 오전에 랑카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공항에 있는 호텔에 묵어야 했고, 아내가 체크인을 하는 동안 아이 둘은 온전히 나에게 맡겨졌다. 우리는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공항 2층을 마음껏 탐험했고, 그곳을 완전히 점령했을 때쯤, 아내는 체크인을 끝냈다. 호텔방은 깔끔했지만 창문이 없었다. 사방이 트인 곳에 살던 우리는 창문이 없는 곳에서의 답답함을 느껴야 했지만, 아이들은 침대에서 뛰어다니고, 땀을 흘리는 사이 그런 답답함 정도는 잊은 눈치였다.


늦은 시간에 잠들었음에도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가자고 성화였고, 아내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아이들은 다시 공항 2층을 점령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동전을 바꿔 게임을 하도록 해 주고, 음료수를 사서 먹이고 남는 시간에 온통 아이들을 찍었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했고, 가슴이 시리게 웃었다. 그래서 실내였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아이들의 사진을 얻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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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가족 안에서 철저히 사진을 찍는 자다. 그리고 아이들은 찍히는 자이고. 우리가 찍은 사진을 아이들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이 사진들은 지금 내가 이따금 그러듯, 아이들이 그리울 때 우리 부부를 위로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의 예전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을 글썽인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아기, 그 시절을 가슴속으로 재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아내의 모습 또한 사진 속에 많이 담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내 카메라의 원조 모델은 아내였으므로. 이제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고, 우리가 예전 아이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순간이 올 때처럼 우리도 우리의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는 순간이 올 것이므로.


우리는 아침을 먹고, 준비를 마친 후 다시 비행을 하러 공항으로 올라갔다. 국제선에 줄 서 있다가 다시 국내선 쪽으로 급히 뛰어가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말레이시아 국내선은 한산했고 짐과 아이들을 태운 카트는 잘 달렸으므로 우리는 늦지 않았다. 그리고 실수로 줄을 선 덕에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국제선을 타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기내에서도 나와 아내는 연신 아이들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소란스럽지 않게 얌전히 노는 아이들의 손짓과 표정 하나하나가, 나중에 소중하게 다가올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나는 아내도 찍어 주었다. 스마트폰 액정 사이로 보이는 아내의 얼굴은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과 아내를 한 화면에 담아내는 일은 즐겁고 아주 보람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