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배를 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동수단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하게 이용하는 수단은 물론 자동차.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다음으로 우리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수단은 비행기이다. 우리는 늘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간다. 그리고 아이들의 외가까지 고속열차를 이용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비행기를 탑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가끔 비행 중에 여러 이유로 울어버리는 아이들을 보며 '왜 우는 걸까'를 오히려 묻기도 한다. 아무튼 아이들에게 비행이나 공항은 일상적인 장소였다.
나 배는 안 타봤어.
시작은 이러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배를 안 타봤다는 큰아이의 의견에 내가 동조하면서였다.
여름철 비행기 비용은 결코 싸지 않다. 그리고 아이들 때문에 차를 빌려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그리고 강원도와 경상도 여행을 자주 했던 우리에게 전라도는 미지의 땅이기도 했다. 미지의 땅에서 우리 차를 타고 가는 여행.
미지의 땅. 이상하게도 매력적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완도에 도착하는 배와 숙소를 예약했다. 전라도를 거쳐, 서울로, 다시 대구로, 다시 전라도로 돌아오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차를 타본 적이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일주를 한다니. 아이들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여행 일정은 아이들이 낮잠 잘 때 이동하고,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다시 낮잠 자는 시간에 이동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숙소는 5개월 전에, 배는 3개월 전에 예약하고 솔직히 중간에는 잊고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번은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장모님의 기차표를 예매해 드린 적이 있다. 하지만 장모님은 그 시간에 대구로 가실 수 없었다. 내가 날짜를 잘못 입력한 탓이었다.
한 번은 서울에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아내에게 싸게 예매했다며 의기양양 자랑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예매내역을 살펴보더니 바로 최소를 눌렀다. 제주-서울, 서울-제주 왕복표가 아닌, 서울-제주, 제주-서울 왕복표로 예매한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지 않고 아내도 이 분야에서는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 집 여행의 기획 및 예약은 아내가 맡아서 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이 막 지난봄, 아내는 피로함을 호소했다. 솔직히 아내는 사소한 것 하나를 결재하더라도 한참 알아보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내에게 2주가 넘는 여행기간의 예약과 기획을 무조건 맡기는 것은 좀 가혹한 일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많은 남편들이 그러하듯이 큰소리를 쳤다. 무모하게도.
배를 예약하고 내역을 아내에게 보내, 몇 번이나 확인했다. 숙소도 예약을 하고 몇 번이나 아내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하루 일정을 작성하고 아이들이 갈만한 관광지를 검색했다. 만약 아내였다면 근처에 식사할만한 곳까지 모두 정해두었겠지만 솔직히 거기까지 여력이 닿지는 않았다. 아내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내는 정말 믿어지지 않게도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렇게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아내의 꼼꼼한 행동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리고 나에게는 역시 아내에게 의탁하는 수동적인 삶이 어울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차에 배를 싣고, 탑승했다. 제주에게 완도까지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배였다. 매점 할머니께서 파도가 높다고 멀미약을 강매하셨지만, 파도는 높지 않았고 다행히 멀미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전라도로 출발하는 날은 정말이지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탄 배가 신기했고, 너무 심하게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나는 신기했다. 아내는 멀미를 걱정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배에서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흔들림 속에서도 사방으로 돌아다녔고, 아이들이 넘어질까 봐 걱정인 나도 사방으로 아이들을 쫓아다녔다. 그리고 아이들은 매점을 발견했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려주자 비로소 차분해졌다.
우리가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 배를 타고 온 건, 내 차뿐이었다. 혼자 운전을 하고 인천항까지 가서 차를 배에 실어 보냈는데 차를 커다란 배 앞에 줄 세워놓고는 한참 차와 배를 바라보았다. 차에는 미처 다 보내지 못한 이삿짐과 이사 당일 사용해야 하는 이부자리가 실려있었고, 그때 둘째 아이는 아직 없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는 길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버스를 잘못 탔는지 버스는 인천시내를 돌고 돌았는데 아는 길과 모르는 길을 거쳐 한참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렇게 육지에서 마지막 날 밤을 우리 세 가족은 작은 방에서 함께 보냈다.
아침 일찍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왔는데 사람들은 친절했지만 큰아이는 무서워했다. 대충 짐을 정리할 때까지도 큰아이는 무슨 일인지 몰랐는데, 막상 짐이 포장되고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자 이사를 가지 않겠다고 울었다. 새로운 곳으로 가는 설렘과 익숙한 곳을 떠나는 씁쓸함이 함께한 아침이었다. 그때 우리가 차와 함께 배를 타고 갔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덜 낯설었을까. 큰아이는 덜 슬펐을까.
배를 타고 육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배는 두 시간 만에 우리를 완도에 내려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첫날 목적지는 해남. 아이들의 이를 닦이고 해남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긴 길을 지나 해양자연사박물관에 도착했는데, 가는 길 한 편으로 바다가 보였고, 남쪽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사방을 덮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제주도와 맞닿아있는 바다가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 가본 곳에서 생선구이를 먹고 해양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작아 보였는데, 작지 않았고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볼 것은 많았다. 아이들은 박물관 문이 닫을 때까지 그곳을 나오지 않았고, 도자기로 만든 거북이 모형과 소라껍데기로 만든 기념품을 하나씩 손에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다시 차를 탔다. 예정에 없었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생전 처음 들어본 해수욕장에 도착했는데 발만 담그겠다는 약속을 역시 어기며 아이들은 몸에 떨릴 때까지 바다에서 놀았고,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바다에서 놀다가 숙소로 향했다.
사실 아이들이 그렇게 오래 차를 탄 것도 처음이었고, 배를 탄 것도 처음이었으며 낯선 곳에서 잠자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아플까 봐 몹시 겁이 났다. 그래서 불꽃놀이가 늦은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숙소로 가자고 이야기했지만 아이들에 대한 믿음은 역시 아내가 나를 훌쩍 앞서고 있었다. 아내는 믿었다. 아이들의 강건함을. 그리고 아내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사실 첫날 나는 겁이 나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줄 생각은 잘하지 못했다. 우리는 배를 타고 이제 막 도착했으며 아이들이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양박물관을 나서면서부터 줄곧 아이들을 쉬게 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현명함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이득인지 알고 있었다. 아내는 아이들의 강건함을 알고 있었으며 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좋은 일인지 분명히 구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내는 나와는 달리 늘 용감하다.
우리는 그 해 여름 딸아이의 바람대로 배를 타고 전라도에 도착했다. 늦은 밤, 잠든 둘째를 숙소에 눕히고 다 같이 한 방에 누웠다. 전라도에서의 첫여름밤은 그렇게 덥지 않았다. 우리는 창을 모두 닫고 에어컨을 틀지 않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벌레 우는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아이들과 아내는 푹 잠들었다. 낯선 곳이지만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우리는 가족은 함께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