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약 40분, 혹은 한 시간.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우리는 늘 이곳을 '제주도'라고 지칭하지만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전혀 다른 곳이다. 가끔은 우리가 제주시에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주택 매물이 나왔을 때도, 제주시에 산다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두 개의 시는 모두 바다를 인접하고 남으로 북으로 한라산을 배경하고 있다. 하지만 공항도 가깝고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는, 제주시와는 다르게 서귀포시는 처음 보는 사람을 그렇게 친근하게 맞이해주지 않는다. 서귀포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조금은 시원하다. 바다에서부터 바람이 늘 불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에서 오는 바람은 늘 습도를 잔뜩 머금고 있으므로 장마철 서귀포는 영화에서 혹은 소설 '무진기행'에서 나오는 배경처럼 자신의 본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해는 늘 습기에 가려져 있어서 빨래를 널어도 마르지 않는다. 더위 때문이 아니라 습기 때문에 에어컨을 사용해야 하는 서귀포의 날씨는 한 달 가까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해를 보기 위해 제주시 근교의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길고 긴 장마가 끝나면 바다는 태풍을 몰아오고 태풍이 끝나고 나면 눈부신 가을이 오지만, 곧이어 춥지는 않지만 바람을 몰아오는 겨울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창문을 굳게 닫고 하루 종일 귤을 까먹으며 바람이 불지 않는 어느 곳으로 나들이를 갈까 아이들과 궁리한다. 사실 서귀포의 사계절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바로 인접해 있는 제주시보다 그렇다.
우리가 처음 제주도에 온 날도 서귀포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제주항에 도착했다. 큰아이가 항구의 바다에 내려가서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동안 나는 여러 시간 배를 타고 온 차를 가지고 왔다. 차에는 당장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짐들과 나름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과 신기하게도 밥솥이 뒷좌석까지, 차를 온통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제주시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아내는 조수석에, 아이는 아내의 무릎에서 앉아서 서귀포를 향했다.
점점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고, 아마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빈 집뿐일 것이므로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그 집은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고, 적어도 아직 우리에게 진정한 집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나는 그냥 막연하게 밤늦은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어디론가 향해간다는 자각은 없었다. 그냥 길을 따라 달릴 뿐이었고, 도로 오른편으로 멀리 바다와 막 저물어가는 노을이 보였지만 아침부터 종종걸음 친 우리에게는 아직 어떤 감흥도 줄 수 없었다. 서귀포가 가까워 올 수록 알 수 없는 안개가 온통 자욱했고, 지금은 수 없이 오고 간 그 길이 그때는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는지. 그때 서귀포는 우리의 집은 아니었다.
완도에서 돌아오는 길은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파도는 높았고, 타자마자 곧 잠들어 버린 둘째와는 달리 큰아이와 아내는 뱃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차에 아이를 눕히고 제주항을 나서자 큰아이는 창문을 열고 바다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분명 바다 곁에서 잠들었다가 바다를 통해 돌아왔는데도 큰아이는 제주도의 바다향기를 아주 잘 구분해내고 있었다. 아직 해는 한참 남아 있었고, 아내와 큰아이는 지쳐 있었지만 다른 곳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서귀포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작은 아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는 다시 서귀포로 가는 도로로 올라갔다. 서귀포로 가는 길, 장마는 완전히 끝나 있었다. 하늘은 안개 없이 맑았고, 습도는 평균 이하였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지 않아도 우리는 집에 가는 길을 충분히 찾을 수 있었고, 그래서 좋았다. 낯선 길을 가는 긴장감도 시간에 쫓기는 일도 없이 우리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집에 가는 길에 자주 가는 마트를 들렀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저녁 식사를 위해 장을 보고, 간식을 몇 가지 사서 어느새 깨어난 둘째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 입에는 간식을 하나씩 물고 입을 우물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여전히 여행 가는 것처럼 즐거워 보여서 운전을 하고 다시 배를 타고 다시 운전을 한 것 같지 않게 몸도 마음도 편안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창문을 모두 열고 깨끗한 공기를 집안으로 들였다. 아이들은 모처럼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저마다 자신의 관심거리를 찾아 사라져 버리고 아내와 나는 가방을 풀고 저녁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익숙했고, 늘 편안했다. 집은 넓지 않지만 어디서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리모컨을 찾는 아이들의 소란도 아이들을 타이르는 아내의 목소리도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저녁은 보잘것없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 부부는 우리대로 할 말을 토해내며 저녁을 먹고 씻고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은 밤에 잠에서 깨었다. 빨래를 널고 멀리 바다를 보니 늘 그렇듯이 바다는 멀리, 고기 잡는 배는 환히 여행 가기 전처럼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몇 년째, 서귀포에서 생활하고 있다. 다녀가는 것도, 머무르는 것도 아닌 '생활'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후면 큰 아이는 다시 학교를 가야 하고,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나는 직장으로 출발해야 한다. 조금 눅눅한 서귀포의 여름 아침은 창문을 열고 달리는 출근길을 만들어 줄 것이고, 오래전 노래를 흥얼거리며 늘 익숙한 곳을 달리게 해 줄 것이다.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칠 것이고 웃으며 인사할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서귀포는 공항에서 먼 곳이다. 여름 내내 습기로 가득 차고 조금만 방심하면 곰팡이를 가져다주곤 한다. 작년에 아내는 지네에 두 번이나 물렸고, 관광지의 물가는 조금 비싸며, 늘 추가 배송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서귀포는 우리의 집이다.
우리는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도 결국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루는 늘 조용하고 바람은 희미하게 바다 내음을 실어온다. 먼 밤바다는 그림처럼 멀리 머물러 있고, 아이들은 늘 즐겁고 편안하다.
방학이 끝나기 전, 아이들은 또 물놀이를 하러 바다로 나갈 것이고, 우리는 검게 그을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을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집에서 시작해서 다시 집에서 끝났다. 그리고 아이들은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오늘 아이들의 편안한 잠이 다시 내일의 원동력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그리고 또 기도한다. 오늘 우리의 삶이 나중에 아이들이 아주 먼 곳에서 생활할 때 문득 아주 깊은 땅속에 묻어둔 자양분처럼 아이들을 무사히 살게 했으면 좋겠다고.